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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문에 '만화'로 창을 낸 시사만화가
 
대전현충원 김성환 화백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고바우 영감’
 대전현충원 김성환 화백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고바우 영감’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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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있는 김성환 화백은 한국 현대사의 기록을 시사만화로 남긴 인물이다. 특히 신문의 4칸 만화 '고바우 영감'을 45년간 신문에 연재함으로써 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김성환은 일제강점기였던 1932년에 태어나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 만주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8.15 해방 이후 서울로 와 경복중학교에 진학했다. 이때부터 학교 미술부장을 지내는 등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이 당시 '멍텅구리'라는 4칸 만화를 그려 연합신문에 보낸 일화가 있다. 후에 그는 외국신문에 있는 만화란이 한국의 신문에는 없는 것을 보고 "아무리 보아도 창문이 없는 집 같아 보였다"고 회고했다. 1949년 열일곱살에 만화계에 데뷔해 만화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한국전쟁 당시 주한미군 부대 바로 곁에 주둔한 부대에서 군복무를 했다. 1950년 12월 30일 전쟁 와중에 육군본부 '사병만화'에 '고바우 영감'을 처음 그렸으며 제대로 연재되지 못하다가 1955년 2월 1일부터 <동아일보>에서 '고바우 영감'이라는 이름으로 첫 연재를 시작했다. <조선일보>를 거쳐 <문화일보>에서 옮겨가면서 2000년 9월까지 총 1만4139회를 연재한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등록되어 있다. 

이 만화는 유신독재, 군사정권을 겪으며 사회에 대한 강도 높은 풍자로 여러 차례 탄압을 받았다. <동아일보> 1958년 1월 23일자에 실린 일명 '경무대 똥통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이승만과 측근의 권력과 위세가 극에 달했을 때 가짜 이강석 사건이 터지자 김성환은 이를 풍자한 만화를 그렸다. 이로 인해 김성환은 경찰청에 연행되어 4일간 문초를 당했으며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벌금형을 받았다. 탄압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이승만과 자유당 시절, 박정희 및 전두환 권위주의 시절에도 날카로운 만화를 계속 그렸다.  

 
1958년 1월 23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고바우 영감’. '경무대 똥통사건'으로 불리는 이 만화로 김성환 화백은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1958년 1월 23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고바우 영감’. "경무대 똥통사건"으로 불리는 이 만화로 김성환 화백은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근대 만화로는 최초로 김용환의 '토끼와 원숭이',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만리'와 함께 총 1만 743매의 원화(原畵)가 2013년 2월 등록문화재 제538호로 지정되었다.

김성환은 '고바우 영감' 뿐만 아니라 '소케트 군', '꺼꾸리군 장다리군' 등 어린이 만화도 그렸지만 고바우 영감이 워낙 오래 연재된 작품이어서 다른 작품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꺼꾸리군 장다리군'은 '고교얄개'를 연출한 석래명 감독에 의해 1977년 '고교 꺼꾸리군 장다리군'이란 하이틴 코미디 영화로 제작되었고 동양방송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고바우 영감의 연재가 종료되고 나서 한국만화가협회의 회장을 지냈다. 5.16 군사쿠데타 이전에는 '현대만화가협회'라는 단체에서 회장직을 맡았는데, 군사쿠데타 이후 강제해산당했다. 1968년에 한국만화가협회가 창설된 후 회장을 맡았다. 김성환은 2002년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하였고, 2019년 사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9년 9월 8일에 작고하였고, 장례식은 만화인장으로 치러졌다.
 
2019년 작고한 뒤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된 김성환의 묘와 묘비.
 2019년 작고한 뒤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된 김성환의 묘와 묘비.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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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창작과 보급에 일생 바친 아동문학가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치마끈에 딸랑딸랑 채워줬으면/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해 있는 아동문학가 석동(石童) 윤석중 선생이 지은 '낮에 나온 반달'의 1절이다. 윤석중 선생은 소파 방정환 선생의 뒤를 이어 어린이 운동을 지켜냈고, 일생을 동요, 동시 등 글짓기에 바쳤다.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난 선생은 1923년 교동보통학교에 재학하던 중 소년문예단체 '꽃밭사'를 결성하고 동인지 <꽃밭>을 발간했으며, 1924년에는 '글벗사'를 만들어 동인지 <굴렁쇠>를 발간하는 등 일찍부터 소년문예운동을 일으켰다.

13세 때인 1924년 <신소년>지에 동시 '봄'으로 등단했으며 1925년 <어린이>에 동요 '오뚜기'가 입선되었고 이듬해인 1926년 중앙번영회 공모의 '조선물산장려가'가 당선되면서 천재소년예술가로 불렸다. 그는 전통적 정형률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식의 동시와 동요를 썼다. 초기에는 반복과 대구를 사용한 정형화된 동요를 지었다가 점차 자유로운 형식의 동시를 개발하는 데 힘씀으로써 한국의 아동문학 발전에 이바지했다.  

 
조선일보는 1926년 9월 12일자에서 ‘조선물산장려가’에 당선된 윤석중을 ‘천재소년’으로 소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926년 9월 12일자에서 ‘조선물산장려가’에 당선된 윤석중을 ‘천재소년’으로 소개하고 있다.
 
1932년에 펴낸 <윤석중 동요집>은 한국 최초의 창작동요집이다. 여기에 실린 '낮에 나온 반달', '퐁당 퐁당', '도리도리 짝짝궁' 등은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다. 1933년에 펴낸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에는 기존의 3·4조나 7·5조의 음수율을 벗어난 동시가 여러 편 실려 있었는데, 그는 이 시집을 통해 글자 수를 맞춰 지은 것을 동요라 하고, 자유롭게 지은 것을 동시라 하여 동시의 문학적 성격을 규정했다. 해방 이전까지 동시집 <어깨동무>(1940), <새벽달>(1943), <초생달>(1946), <굴렁쇠>(1948), <아침까치>(1950) 등을 펴냈다.

1933년 방정환 선생의 후임으로 〈어린이〉 주간을 맡았으며, 1934년에는 <소년중앙> 주간, 1936년 <소년> 주간을 역임했다. 이후 1955년에 <조선일보> 편집고문, <소년조선일보> 고문, 서울시 문화위원, 한국문인협회 아동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중앙대학교·성신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대전현충원 보훈미래관 안에 윤석중 선생의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대전현충원 보훈미래관 안에 윤석중 선생의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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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에도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여 90년대 말까지 동시집 <노래동산>(1956), <노래선물>(1957), <엄마손>(1960), <해바라기 꽃시계>(1966), <카네이션 엄마꽃>(1967), <꽃길>(1968), <아기꿈>(1987), <여든 살 먹은 아이>(1990), <그 얼마나 고마우냐>(1994), <반갑구나 반가워>(1995),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1999) 등을 펴냈다. 동화집으로는 <바람과 연>(1966)와 <열 손가락 이야기>(1977) 등이 있다.

1956년 1월 3일 조풍연, 피천득 등과 함께 새싹회를 창립해 어린이문화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1957년 소파상, 1961년 장한어머니상, 1964년 마해송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해송문학상도 각각 제정하였다. 1974년 방송용어심의위원장과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1977년 <새싹문학>과 <한글나라> 주간을 지냈다.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1979년 방송윤리위원장,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초대 방송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61년 3·1문화상을 비롯해 문화훈장 국민장(1966), 외솔상(1973), 막사이사이상(1978), 대한민국 문학상(1982), 세종문화상(1983), 대한민국예술원상(1989), KBS동요대상(1990), 인촌상(1992) 등을 받았다. 
 
2003년 작고한 뒤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된 윤석중의 묘와 묘비
 2003년 작고한 뒤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된 윤석중의 묘와 묘비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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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의 창작과 보급에 일생을 바쳐 '한국 동요의 아버지'로 불렸고, 2003년 12월 작고한 뒤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봉헌자묘역에 안장되었다. 2005년부터 새싹회에서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윤석중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시민미디어마당 협동조합입니다.
태그:#국립대전현충원, #윤석중,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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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일간신문에서 사진기자로 활동, 2007년 <제1회 우희철 생태사진전>, <갑천의 새와 솟대>, 2008년 <대청호 생태사진>, 2008년 <하늘에서 본 금강> 사진전 동양일보 「꽃동네 사람들」, 기산 정명희 화가와 「금강편지 시화집」을 공동으로 발간. 2020년 3월 라오스 신(新)인문지리서 「알 수 없는 라오스, 몰라도 되는 라오스」를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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