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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필요한 집을 방문해 무료로 도배를 하고 있는 박상필씨.
 도움이 필요한 집을 방문해 무료로 도배를 하고 있는 박상필씨.
ⓒ 한림미디어랩 The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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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이셨는데 서툰 한글로 '감사하다'는 손편지를 써준 것이 제가 집수리 봉사를 이어나가는 데 큰 힘이 됐죠."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에는 소외 계층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맥가이버'가 있다. 25년째 무료 집수리 봉사를 하고 있다는 박상필(56)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부쩍 쌀쌀해진 가을의 어느 날, 서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사랑의 집수리 봉사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를 나눠 봤다.

'따뜻한 겨울' 보낼 수 있도록... "2000여 가구에 집수리 봉사" 

"홀로 한국에 돈을 벌러 오신 분이었어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셨는데 제가 구청으로부터 사연을 전해 듣고 장판을 모두 무료로 교체해 드렸죠"라며 인터뷰를 시작한 박씨는 "1주일 뒤에 집에 우편으로 편지가 왔더라고요. 뜯어보니 서툰 한글로 세 장에 걸쳐 빼곡하게 외로운 한국살이에서 너무나 큰 힘과 위로가 됐다는 말을 써 주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사정을 알고 나니 어려운 분들에게 더욱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라고 덧붙였다. 

무료 집 수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묻자 "집 장판이 갈라지고 물이 새서 벽에 곰팡이가 생겼다는 소외 계층분들의 소식을 들으면 현장에 달려가서 바로 수리 날짜를 잡죠"라며 이어 "가장 편안해야 할 공간에 불편함이 생기면 그것만큼 힘든 일이 없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장판 시공에서부터 도배 및 단열재 시공, 싱크대와 세면대 교체 등 안 하는 수리가 없다"는 박씨는 그동안 고쳐준 집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한 달에 7~8채 정도씩 25년간 했으니 지금까지 대략 2천여 가구 정도를 수리하지 않았나 싶네요"라고 일러준다. "웬만한 수리는 다 해주니까 어느 순간부터 도움을 받은 이들이 절 보고 무엇이든 다 고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맥가이버'라고 부르기 시작하더라고요"라며 수줍게 웃어 보인다.

그렇다면 저소득층에 대한 집 수리 지원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먼저 서울 금천구청에서 '수리가 필요한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 가정이 있다'라고 제게 알려옵니다"라며 설명을 시작한 그는 "그러면 대상 주택을 방문해 훑어보고 필요한 장비와 자재, 수리 인원을 대충 파악해 집 주인과 수리 날짜를 잡은 다음에 저를 도와주는 회원들과 함께 약속된 날짜에 방문해 집 수리를 한다"고 알려준다.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소년이 책상도 없이 공부한다는 사연을 듣고 아내(오른쪽)와 함께 소년의 집 베란다에서 책상을 만들어 주고 있는 박상필씨.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소년이 책상도 없이 공부한다는 사연을 듣고 아내(오른쪽)와 함께 소년의 집 베란다에서 책상을 만들어 주고 있는 박상필씨.
ⓒ 한림미디어랩 The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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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일교차가 심해져서 그런지 단열재 시공 요청이 자주 들어온다"는 박씨는 "제대로 된 난방 기구도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겐 단열재만 시공해줘도 이들이 훨씬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고 귀띔했다. 단열재 도배 외에도 현관문에 방범창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 오래된 세면대나 싱크대를 새로 교체해 주거나 물이 잘 나올 수 있도록 호스도 바꿔준다는 박씨다.

집 수리를 하게 되면 비용이 얼마나 드느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들었을 때는 150만 원까지 써봤다"는 박상필씨는 "제가 단장으로 있는 봉사 단체의 회원 40여 명이 매달 2만원씩 갹출한 돈으로 수리 비용을 대는지라 괜찮다"고 너스레를 떤다. 박씨는 혼자서 봉사 활동을 하다 힘에 부쳐 2012년에 주변의 지인들에게 봉사단 창단을 제의했으며 이후, 봉사단에 흔쾌히 합류해준 이들과 지금까지 동고동락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득 집수리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내 직업이 원래 인테리어 업자예요"라며 입을 뗀 그는 "25년 전 우연히 한 독거노인 분의 집 전기를 손봐 준 적이 있었다"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그 노인분은 하루에 한 끼도 못 드실 정도로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분이셨죠"라며 당시를 회상한 그는 이어 "문짝도 다 부서져 있었고, 벽에는 곰팡이가 번식해서 도저히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죠"라고 말했다. 바로 그 순간 "'이런 분들을 위해 내가 가진 재능을 기부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부터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렇게 요청이 오는 집들에 최선을 다해 한해 한해 '맥가이버' 노릇을 한 지도 어언 25년. 이러한 선행을 인정받아 박상필씨는 올해 서울 금천구청에서 수여하는 '제26회 금천구민상-미풍양속 부문'의 주인공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처음 봉사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주변인들의 반응은 어땠냐는 물음에 박씨는 "가족들이 많이 반대했죠. '제 앞가림도 못 하는데 무슨 봉사냐고' 하면서 말이죠"라고 말했다. 주변의 가까운 이들도 그의 봉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말들을 귀에 담고 가슴에 담으면 봉사활동을 못 하죠"라던 박씨는 "그래도 나중엔 제 뜻을 이해해 준 아내가 함께 봉사를 시작해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최고의 지지자가 됐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도 힘이 닿는 한, 내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재능 기부를 하고 싶다"고 언급한 박상필씨는 "그러기 위해선 몸이 건강해야 하는 게 가장 최우선이니까 건강 관리를 열심히 해야죠"라고 어떤 가을바람보다 상쾌하고 맑게 웃어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윤하은 대학생기자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인터뷰 실습> 과목의 결과물로,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한림미디어랩 The H(http://www.hallymmedialab.com/)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집 수리 봉사, #박상필, #금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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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는 한림대 미디어스쿨 <한림미디어랩>의 뉴스룸입니다.학생기자들의 취재 기사가 기자 출신 교수들의 데스킹을 거쳐 출고됩니다. 자체 사이트(http://www.hallymmedialab.com)에서 새로운 '미디어 패러다임'을 실험하는 대학생 기자들의 신선한 "지향"을 만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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