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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능이라면 폐지하는 게 맞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수능이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을 검증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교육부나 대학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아이들은 수능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줄임말이라는 걸 잊어버렸다.

대입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 현재로선 수능이 최선이라는 주장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출제 경향과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고는 하나 1994년에 도입된 이래 27년째 시행 중인 수능의 수명은 이미 다했다고 본다. '학력고사화한 수능'이라며 조롱하는 이도 있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지는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지는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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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언제까지 수능일에 전국의 모든 중고등학교가 문을 닫고, 직장인의 출근 시간이 조정되며, 듣기평가 시간에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이 금지돼야 하나. 전국의 영험하다는 기도처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사찰과 교회, 성당조차 '특수'를 누리는 현실은 이제 뉴스조차 되지 못한다. 

수능일이 사실상 졸업식인 인문계고등학교의 현실은 또 어떤가. 수능을 앞두고 수험생의 '심기 경호'를 위해 학교는 숨을 죽인다. '출정식'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공식 행사를 여는 학교도 있다. 숫제 수능은 무찔러야 할 적과의 전쟁이고, 시험장을 전쟁터로 여기는 셈이다. 

수능은 수험생은 물론, 학부모, 교사 모두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블랙홀이다. "학창 시절 12년, 나아가 18년의 인생이 수능일 하루로 결판이 난다"고 말하는 교사가 부지기수다. 코로나 와중에도 시험장을 떠나지 못하는 부모의 모습을 본 수험생에게 수능은 절체절명의 순간일 테다.

이렇듯 그로테스크한 현실이 언론을 통해 마치 미담 사례인 양 소개된다. 한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산비탈에 오르는 '간절한 모정'을 대서특필한다. 이제 보물 제431호로 지정된 팔공산 갓바위는 그들을 위해 벼랑에 세운 큼지막한 건물이 더 유명한 '문화재'가 됐다. 

인생의 전부를 거는 학생들을 보다, 온종일

학생부종합전형과 학생부교과전형 등 대입 전형은 다양해졌다. 하지만 수능 시험장의 분위기는 해가 갈수록 되레 살벌해지는 듯하다. 수능 감독관으로서, 수능 당일 '인생의 전부를 걸고'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엾다. 시험이라기보다 차라리 '고문' 같아서다.

며칠 전 끝난 수능의 당일 시험장 풍경을 추억하듯 전한다. 1교시 국어 영역부터 5교시 제2외국어와 한문 영역까지, 종일 같은 교실의 같은 의자에 앉아 문제지와 씨름한 우리 아이들을 다독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느닷없이 수능 폐지를 외치며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전 7시 반. 시험장 관리자는 연신 여학생들이라 예민하니 특별히 조심해달라는 당부를 전했다. 감독관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핑곗거리가 될 수 있으니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는 것이다.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시험장에 들어선 아이들의 표정에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오전 8시 10분. 1교시 시작 전부터 시험장엔 긴장감이 흐른다. 24명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하다. 펜이 책상에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크게 들린다. 시험장 반입 금지 물품을 소개하자마자 아이들의 온갖 질문이 쏟아진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험 도중 초콜릿이나 사탕을 먹어도 되나요?" "물을 마실 수 있나요?" "개인 필기도구를 쓰면 안 되나요?" "귀마개를 써도 되나요?" "가채점용 종이를 책상 위에 올려둘 수 있나요?" "무릎 담요도 허용되나요?" "손수건 사용도 가능한가요?" "컴퓨터용 사인펜이 너무 연한데 괜찮나요?"

오전 8시 40분. 지침 대로 일일이 답변하다 보면 어느새 시작종이 울리고 시험실은 다시 깊은 정적에 빠져든다. 감독관은 그대로 목석이 된다. 시험실을 걸어 다닐 수 있는 건 응시자 본인 확인과 답안지에 감독관 서명을 할 때뿐이다. 재채기나 기침조차 죄가 되는 시간.

맨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유독 눈에 띈다. 손수건으로 연신 손을 닦고 있다. 시험 시간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얼핏 봐도 손수건은 이미 축축해져 버렸다. 긴장한 낯빛이 역력하다. 급기야 휴지를 구해달라고 한다. 사실 부탁하지 않아도 그에게 가져다줄 참이었다. 

한 아이는 몇 번이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손을 든 그의 얼굴에는 불안과 초조함이 가득하다. 아무래도 시험이 예상보다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해당 시험의 난이도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20년 넘게 수능 감독관으로 일했으니,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1교시 국어 영역이 끝나면 '멘탈이 털린' 아이들이 나타난다. 그런 경우 당장 2교시 수학 영역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 드물게는 응시 포기 각서를 쓰고 교문을 나서는 아이도 있다. 대개는 대학에 재학 중인 '반수생'들이다. 상위 학벌로 옮겨가겠다는 꿈은 거기서 끝난다. 

2교시 눈을 의심하는 일이 일어났다
 
2022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날인 18일 서울 용산고등학교에서 시험관들이 문제지를 들고 수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2022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날인 18일 서울 용산고등학교에서 시험관들이 문제지를 들고 수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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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30분, 2교시가 시작된다. 시험 시간만 100분이라 1교시에 연이어진 감독관에겐 무척 힘든 시간이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부담스럽진 않다. 수학 영역은 응시자의 태반이 시험 도중 책상 위에 쓰러지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대한민국 고등학생 절반 이상이 '수포자'(수학 포기자)다. 

그런데, 눈을 의심하는 일이 일어났다. 종료령이 울릴 때까지 단 한 명도 포기하는 아이가 없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다. 최상위권 아이들이 한데 모여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뜻이다. 언제부터인가 수능 시험장조차 성적에 따라 서열화한 모양새다. 

5교시 제2외국어와 한문 영역을 치르는 시험장엔 최상위권 아이들이 모이게 된다. 알다시피, 제2외국어 영역은 서울대 인문계열을 제외하곤 필수 과목이 아니다. 이 아이들 모두가 서울대 진학을 목표했을 리 없는데, 굳이 필요도 없는 5교시를 응시하겠다고 신청한 이유는 뭘까.

서울대를 목표로 한 아이들이 모여있는 시험장의 수험 분위기가 좋을 거라는 기대에서다. 하긴 2교시 수학 영역은 물론, 모든 시간 찍고 자는 아이들이 태반인 시험실 분위기에서 최선을 다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 흔한 '수포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점심시간에도 아이들은 자리를 뜰 수 없다. 엄격한 방역지침 탓이다. 책상 위에 종이로 된 칸막이를 펼쳐 세우고 그 안에서 챙겨온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 소화가 제대로 될 리도 없다. 언뜻 보니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코로나보다 긴장감 때문인 듯하다.

오후 1시 10분. 대한민국 전체를 침묵하게 만드는 듣기평가와 함께 3교시 영어 영역이 시작된다. 70분짜리지만 듣기평가가 포함된 까닭인지 감독관에겐 가장 짧게 느껴지는 시험이다. 이번엔 아이들도 턱없이 짧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시험이 무척 어려웠다는 뜻일 테다. 

학습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로 영어 영역이 절대평가로 전환됐지만, 그렇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그들은 1등급 비율이 10%만 돼도 변별력을 잃었다며 호들갑 떠는 모습에 기대를 접었다고 한다. 차라리 국어와 수학에 견줘 반영 비율이 낮다는 게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오후 2시 50분. 드디어 '쉬는 시간' 한국사 영역이다. 워낙 쉬운 데다 등급을 반영하는 대학도 거의 없으니, 비록 30분이라도 긴장의 끈을 풀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푹 쉬어야만 탐구 영역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할 수 있다. 한국사 영역과는 비교가 안 되는 중요한 시간이다. 

최상위권 아이들이어선지 채 10분도 안 돼 시험이 끝났다. 시험실에 눈 뜬 사람이라곤 두 명의 감독관뿐이다. 불편한 책상 위에서 쌔근쌔근 깊은 잠에 빠진 아이들도 더러 보인다. 여느 때라면, 다른 수험생에게 방해가 되니 깨우겠지만 모두가 잠든 교실에서 그럴 필요가 없다. 

한국사 교사로서, 솔직히 처음엔 전공과목이 조롱받는 느낌이 들어 속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서운하기는커녕 혹 너무 어렵게 출제되어 아이들을 괴롭히면 어쩌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시험 부담이 없으니, 수업에서도 문제 풀이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됐다.

오후 4시 37분. 탐구 영역 시험이 끝나니 이미 밖이 어둑해졌다. 분명 5교시가 남았는데도 시험실 안팎이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제2외국어와 한문 영역의 응시 포기 각서를 쓰기 위해 복도에 긴 줄이 생겼다. 5교시가 시작되는 5시 5분까지 모두 처리가 될 수 있을까 싶다. 

수능대박이란 말
 
2022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날인 18일 서울 용산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2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날인 18일 서울 용산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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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교시 시험실은 절반 가까운 응시생이 빠져나가 휑하다. 건너편 시험실은 총 24명 중 달랑 3명만 남았다. 무려 21명이 응시 포기 각서를 쓰고 나가버린 것이다. 최상위권이 모인 좋은 시험장 분위기에서 수능을 치르기 위해 5교시 응시 신청만 한 '허수'들이 그토록 많다. 

듣자니까, 도심 지역의 다른 남학생 시험장은 분위기가 전혀 딴판이었다고 한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은 물론, 복도까지 담배 연기로 자욱하고, 매시간 문제를 푸는 아이와 엎드려 잠이 든 아이의 숫자가 비슷했다고 한다. 그들 덕분에 감독하기가 한층 수월했다는 것이다.

한 동료 교사는 학교를 서열화한 '고교 다양화' 정책이 마침내 수능 시험장까지 서열화시켜 놨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오후 5시 45분. 마지막 시험인 5교시 종료령이 울렸지만, 수능이 끝난 건 아니다. 제출된 답안지의 오류 점검이 마무리돼야 비소로 끝나는 것이다.

캄캄해진 오후 6시 30분. 이른 아침 집을 나선 지 정확히 12시간 만에 길고 길었던 2022학년도 수능이 끝났다. 시험장을 나서려니 원인 모를 허탈감이 몰려온다. '인생의 전부를 건' 시험을 마친 아이들은 어떤 느낌일까. 시험을 망친 아이들은, 말 그대로, 인생이 끝났다고 여길까.

"학창 시절 12년, 나아가 18년의 인생이 수능일 하루로 결판이 난다"고 말하는 동료 교사에게 물어보고 싶다. 고3 교실마다 적혀있는 '수능 대박'이라는 네 글자가 '인생은 한 방'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하도 깨물어 문드러진 한 여학생의 손톱이 지난밤 꿈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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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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