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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마산에 있는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창원마산에 있는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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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의거 발원지 기념관이 아니라 '이승만 기념관'처럼 여겨진다. 3.15 의거의 역사적 현장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4.19 혁명 기념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만이 독재를 했지만 그래도 '건국의 아버지'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사진이 전시돼 있다. 전시물을 보니까 몹시 당황스럽고 불편하다."


지난 20일 '3.15 의거 발원지 기념관'을 둘러본 이춘 작가(현대사 유적지 문화해설사)가 밝힌 소감이다. 3.15 의거의 중요한 역사 현장 사진은 '구석'에 작게 취급돼 있거나 찾을 수 없게 돼 있었다. '독재자' 이승만과 '변절자' 허윤수(국회의원) 사진이 크게, 그것도 중심에 놓여 있다.

또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때 했던 연설 장면 사진이 '1960년 4월 26일 하야' 때로 표현돼 있고, '3.15 선거 부인 공고' 설명에 잘못된 표기가 있다. '김주열 열사'와 '2차 의거' 등 용어가 통일돼 있지 않다.

3.15의거발원지기념관은 창원시가 1960년 3월 15일 3.15 의거가 일어날 당시 민주당사 건물을 매입해 개조, 지난 10월 말 문을 열었다. 건물 3층에 걸쳐 전시물은 '깊은울림(1층)', '건강한울림(2층)', '힘있는울림(3층)'으로 구성돼 있다.

3.15 의거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정·부통령 선거 때 온갖 불법을 저지르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일이다. 시발은 시민들이 당시 마산 민주당사 앞에 모여들면서다.

3.15 의거 때 행방불명됐던 김주열 열사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그해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떠올랐고, 이에 시민들은 "김주열을 살려내라"면서 '4.11민주항쟁'을 벌였다. 이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이승만, 허윤수, 고무신이 중심 사진이라니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1층 중앙에 가장 큰 사진으로 허윤수, 고무신, 이승만 사진이 있고 그 옆에 '1960년 3월 15일 민주당사 앞에 민중들이 몰려든 모습'의 사진이 작게 배치되어 있다.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1층 중앙에 가장 큰 사진으로 허윤수, 고무신, 이승만 사진이 있고 그 옆에 "1960년 3월 15일 민주당사 앞에 민중들이 몰려든 모습"의 사진이 작게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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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중앙에는 큰 사진 3개가 걸려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고무신-돈 선거', 허윤수 전 의원 사진이다. 사진 아래에는 "이승만 독재정권과 장기 집권의 야욕", "부정선거 획책", "허윤수 의원 변절"이라는 제목으로 설명이 달렸다.

사진 설명 제목이나 내용은 크게 잘못이 없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사진 자체가 문제로 지적된다. 사진만 보면 이승만·허윤수가 '좋은 이미지'로 보인다는 것. 3개 사진이 마치 3.15 의거의 중심인 것처럼 전시돼 있다.

이승만 사진은 정부수립 연설 장면이고, 허윤수가 마이크를 앞에 놓고 뭔가 발표를 하는 장면이다. '고무신-돈 선거'는 공직선거법이 개정되기 이전인 1980년대까지 흔했다.

이곳이 3.15 의거 발원지를 증명하는 사진은 많다. 1층 이승만 사진 옆에 작게 있는 "1960년 3월 15일 옛 민주당사 앞에 민중들이 몰려든 모습"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곳이 발원지 기념관이 되려면 이 사진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이들 사진에 대해 이춘 작가는 "1층에 들어섰을 때 당황스러웠다. 중앙 벽면에 이승만, 변절한 국회의원 허윤수, 그리고 금권선거의 상징인 고무신이 있었다"며 "도대체 왜 이 사진이 3.15기념관의 중앙에 걸려 있어야 하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승만 사진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을 선언한 건국절 기념식 사진이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라 추앙할 때 자주 사용되는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또 "허윤수 사진이 왜 중앙에 있어야 하느냐. 그는 1958년 민주당으로 어렵게 당선한 뒤 1960년 1월 탈당해 자유당에 입당했다. 그에 대한 마산시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 사진이 왜 중심에 걸려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고무신 사진'에 대해 그는 "고무신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현혹시킨 부정선거에 분연히 일어선 마산시민의 의거를 말하고자 함일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고무신 선거는 그 이후에도 있었다. 그렇다면 3.15 의거가 일어나도록 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이 되는 거냐"고 되물었다.

이춘 작가는 "이곳이 발원지가 되려면, 3월 15일 당시 민주당사 앞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3.15 의거 때 시위와 경찰 충돌이 가장 컸던 3대 격전지 남성동파출소, 마산시청, 그날 밤 불타버린 북마산파출소가 돼야 한다"면서 "그런데 민주당사 앞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이승만 사진 옆에 작게 배치돼 있다. 3대 격전지 사진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승만 정부수립 연설 장면이 '하야' 사진으로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1층에 '이승만 하야'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때 연설 장면이다.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1층에 "이승만 하야"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때 연설 장면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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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1층에 '이승만 하야'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때 연설 장면이다.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1층에 "이승만 하야"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때 연설 장면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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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는 '이승만 하야'에 대해서 두 군데에 걸쳐 사진과 함께 설명을 해놨다. 사진 아래에는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하야",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선언"이라 표현돼 있다. 그밖에 이승만 사진은 기념관 중앙에 있는 이승만 사진이다. 기념관 안엔 총 3개의 이승만 사진이 걸려 있다.

그런데 두 사진은 같은 장면이다. 바로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일 연설 장면이다. 정부수립 연설 장면 사진이 '하야' 장면으로 표현이 돼 있는 것이다.

이 사진을 본 이춘 작가는 "이승만이 당당하게 하야 성명을 발표하는 이미지다. 이는 좀 심하게 말해 역사 왜곡이고, 이승만 미화"라며 "이승만 하야를 나타내는 사진이 되려면 당시 파고다공원에 있던 동상을 시민들이 무너뜨리는 장면이 가장 어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부인 공고' 설명 잘못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2층 '선거 부인 공고'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2층 "선거 부인 공고"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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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의거 시발을 잘 나타내는 사진은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선거 부인 공고'다. 당시 '민주당 정부통령 마산시선거대책위원회'가 내건 벽보를 말한다. 이 사진은 기념관 2층에 있다. 사진 밑에 해놓은 설명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민주당 마산시선거대책위원회는 자유당의 가진 불법과 무법으로 암흑선거를 자행함으로 이 이상 공명선거를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 사태에 처하였음에 3월 15일 상오 10시 30분을 기하여 만부득기 선거를 부인함을 자에 엄숙히 고함. 단기 4293년 3월 15일 민주당 정부통령 마산시선거대책위원회.
 
제대로 하려면 제목인 '선거부인공고'는 띄어쓰기를 해서 '선거 부인 공고'로 해야 하고, '가진'은 '갖은', '자행함으로'는 '자행하므로', '만부득기'는 '만부득이' 내지 '부득이'로 바로잡아야 한다.

'6월 항쟁' 설명은? ... '전두환 정권' 표기 없어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을 설명한 '6월 항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이 돼 있다.
 
6월 항쟁은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6월 29일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4.13 호헌 조치, 그리고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에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안 발표로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고, 1987년 12월 16일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6월 항쟁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큰 영향을 주었고, 사회운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에 해대 이춘 작가는 "설명만 보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당시가 '전두환 정권'이라는 표현이 없어 어느 정권이었는지 알 수 없도록 해놨다"며 "노태우 미화로 여겨질 수 있어 '노태우의 수습안 발표'가 아니라 그냥 '6.29 선언'으로만 표현해도 된다"고 했다.

김주열 열사... 김주열 군... 김주열... 용어 통일 안 돼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같은 곳인 ‘3·15의거 발원지’와 ‘당시 민주당 당사’가 마치 다른 위치인 것처럼 해놓았다.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같은 곳인 ‘3·15의거 발원지’와 ‘당시 민주당 당사’가 마치 다른 위치인 것처럼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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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2차 항쟁'이라 해놓았다.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2차 항쟁"이라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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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도 통일돼 있지 않다. 김주열 열사에 대해 설명마다 다르다. 그냥 '김주열'이라고 쓴 곳도 있고, '김주열 군'과 '김주열 열사'가 섞여 있다.

또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안치했던 마산의료원에 대해 '도립마산병원'과 '도립병원'으로 표현돼 있고, 김주열 열사 시신인양지도 '마산 중앙부두'와 '마산 앞바다'로 표현돼 있다.

'3.15 의거'도 통일돼 있지 않고 '3.15마산의거'로 표현해 놓기도 했으며,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오른 날에 일어난 항쟁도 '2차 의거', '제2차 마산의거'로 표현돼 있다.

또 '3.15 의거'에 대해 설명하면서 '1차 항쟁', '2차 항쟁'이라는 표현도 해놨다. '6월항쟁' 설명에는 '이한열 열사'가 아니라 '이한열'로 돼 있다.

또 지도에는 조례까지 통과된 공식 명칭인 '창원NC파크 마산구장'은 '창원NC파크'로만 표현돼 있다. 같은 곳인 '3.15 의거 발원지'와 '당시 민주당 당사'가 마치 다른 위치인 것처럼 해놨다.

표지판 관련 장면 사진은 없어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건물 3층에 있는 전시물로, 바닥에 있는 표지판을 찍은 사진이다.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건물 3층에 있는 전시물로, 바닥에 있는 표지판을 찍은 사진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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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15일, 민주당 당원들이 부정선거를 외치며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와 외치는 장면이다.
 1960년 3월 15일, 민주당 당원들이 부정선거를 외치며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와 외치는 장면이다.
ⓒ 3.15의거 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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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전시실에 '3.15 의거 발원지' 표지판(동판) 사진이 있다. 발원지 앞 바닥에 설치해 놓은 표지판이다. 3·15 의거 시발의 중심이 되는 사진에서 따온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당시 머리띠를 두른 남성이 두 팔을 벌려 외치는 장면이다. 이런 사진이 기념관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

당시 민주당사 앞에서 머리띠 두르고 두 팔을 벌려 외치는 장면의 사진을 포함해, 3대 격전지 사진은 이미 발행된 <4월 혁명 사료총집>이나 <3.15 의거 사진집>에 담겨 있다.

이춘 작가는 "왜 이 건물이 3.15 의거 발원지 기념관이 되었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은 없는가"라며 "당시 민주당사 앞에 시민들이 모여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장면의 사진은 구석에 있다. 상징적인 다른 사진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선한 창원시 행정과장은 "3.15의거 관련 단체의 의견을 받아서 기념관 전시물을 꾸몄다"며 "개관 이후 부족한 부분이 있어 다시 정비하려고 한다. 여러 지적에 대해서는 보완하겠다"라고 해명했다.
 
3.15의거 당시 남성동 파출소.
 3.15의거 당시 남성동 파출소.
ⓒ 3.15의거 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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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 당시 남성동 파출소 전소.
 3.15의거 당시 남성동 파출소 전소.
ⓒ 3.15의거 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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