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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 됩니다.[기자말]
창백한 푸른 점*
- 박해람

얼굴을 뒤지면
저렇게 작은 지구 여러 개 있다
지금은 64억 km를 지나와서
내 얼굴에 있는 점을 본다

멀리서 나는 본다
까마득한 거리
내 얼굴의 검은 점 하나를 보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거리를 비행한 다음이어야 하나
흘러와서 점 하나쯤 남기고
우주 저편으로 떠도는 동안
내가 거울 앞에서 고개를 돌려 내 점을 언뜻 보는 순간이
64억 km의 거리를 지난 시간이라는 사실

적어도 내 점 하나에는
수천 명의 이름이 들어 있다
무거워, 얼굴을 나누며 오간다

그 먼 밖에서 나를 보고 있었으니
겨우 고작, 이라는 말 배워서 가끔 써먹고 있을 뿐이었지

거울을 보면
이미 오래전에 나는
나를 지나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둥둥 떠갈수록 나와는
영영 만날 수 없다는 사실

오늘은 눈이 내리고
지구는 여전히 헛바퀴를 돌고 있다

*칼 세이건, 보이저 1호가 64억 km 밖에서 찍은 지구 사진
- <여름밤위원회>, 시인의일요일, 2021, 14~15쪽


'창백한 푸른 점'은 보이저 1호가 1990년 2월 14일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서 지구의 크기는 0.12화소에 불과하며 아주 작은 점 하나로 찍혀있을 뿐입니다. 어찌 보면, 저것이 지구가 맞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점입니다.   '창백한 푸른 점'은 칼 세이건이 이 사진을 보고 감명을 받아 저술한 책입니다. 영문 제목은 <The Pale Blue Dot>입니다. 사실 보이저 1호의 사진도 칼 세이건의 주도로 촬영된 것입니다. 그는 저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지구가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고.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릴 계획을 세웠을 때 많은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습니다. 보이저 1호의 목적은 지구가 아니라 지구의 반대쪽에 있기 때문이었고, 지구의 방향으로 카메라를 돌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아무 의미 없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카메라를 돌리기 위해선 며칠의 시간도 필요했죠. 

그렇게 해서 찍힌 사진이 <가족사진>이라고 이름 붙여진 지구를 포함한 여러 행성 사진입니다. 어찌 보면 작은 점들이 나열된 사진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칼 세이먼은 이 사진의 진가를 알아봤습니다. 사진에 감격한 그는, 시적인 이름 하나를 붙였죠. 우리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행성의 또 다른 명칭, '창백한 푸른 점'
 
박해람 시인의 시집 『여름밤위원회』
 박해람 시인의 시집 『여름밤위원회』
ⓒ 시인의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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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시인들이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이름에 영감을 받아 시를 썼습니다. 박해람 시인도 그들 중의 한 명이죠. 김승일 시인은 그의 시, '창백한 파란 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희망은 배양되어 어둠 가운데
희망은 배양되어 희망 가운데

창백한 파란 점
당신이, 당신의 모든 것이, 담긴 저 작은 사진 한 장을 찍어
여기로 보내온 자는 누구인가
당신은 어떻게 거기까지 가
서 있는가
거짓과 죄악 속으로 투항하는 당신

- '창백한 파란 점'(파란) 중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다르지만, 김승일 시인의 시도 칼 세이먼이 바라본 우리별 지구에 영감을 받아 쓴 시입니다. 만약 칼 세이먼이 보이저 1호 카메라 방향을 돌리지 않았다면, 다른 목소리에 굴복하여 사진을 찍는 것을 포기했다면, 우리는 잔인할 정도로 작고, 초라한 지구라는 행성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창백한 푸른 점' 속에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박해람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태양계를 지배하는 절대자 얼굴에 찍힌 점 하나, 그 속에서 꾸물거리는 생명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 꾸물거림 속에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훨훨 타오르는 이상 빛을 잃어가는 푸른 점은 아닐 것입니다. 가장 높은 온도로 타는 불이 푸른 빛깔을 낸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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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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