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외침
 
"온몸으로 울부짖어도 그 몸짓과 소리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다." (고병권, <묵묵>(돌베개), 50쪽)
 
채효정은 <먼지의 말>에서 이들을 '먼지',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고 했다. 바로 '있어도 없는 사람들', '목소리 없는 사람들', '몫이 없는 사람들'이다. 랑시에르는 이들 '데모스'(demos)가 자신들의 몫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정치'라고 불렀다(<불화>(길), 39쪽). 이것이 민주주의다.
 
채효정이 펴낸 책 <먼지의 말>은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민주주의를 만드는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처절한 외침을 담고 있다.
▲ 채효정이 쓴 <먼지의 말> 표지 채효정이 펴낸 책 <먼지의 말>은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민주주의를 만드는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처절한 외침을 담고 있다.
ⓒ 포도밭출판사

관련사진보기

 
'목소리를 듣지 않는 자들'이 침묵을 강제로 만들 때, 기존 질서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 자기를 가두지 않고 '무엇'이라도 하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몫 없는 사람들의 몫을 내놓으라고 투쟁하는 데모스'이며, '없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다. 민주주의를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이들이다.

채효정이 펴낸 책 <먼지의 말>(포도밭출판사)은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이들 민주주의를 만드는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처절한 외침을 담고 있다. 책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온 힘을 다해 외치는 목소리, 하지만 권력을 가진 판관들은 애써 모른채 하는 외침을 소중하게 기록했다.
 
"한 노동자가 아파트 옥상 위로 올라갔다. / 거의 완공된 아파트는 외벽 도색을 앞두고 있다. / 하얗게 밑칠을 마친 외벽을 타고 내려오며 / 로프에 매달린 노동자는 한 자씩 글자를 써내려갔다 / … / 사 기 꾼 시 공 업 시 행 사 는 / 더 사 기 꾼 노 임 주 라 개 자 식 / … / 추석 연휴 전날까지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는 / 자신이 쓸 수 있는 유일한 공간 /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저 말을 쓰고 / 내려와 경찰에 '입건'되었다." (책 26쪽)
 
한 건설 노동자가 아파트 외벽에 쓴 21글자는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빼앗긴 곳'에서 권리를 되찾으려는 절규이다. 하지만 권력과 질서는 그의 몫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목소리를 없앤다. 대신 투박함과 거친 몸짓만을 문제 삼아 자유마저 빼앗는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물러서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이고, 더 물러설 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 (책 258~259쪽)
 
권력이나 지식, 생산수단을 가진 기득권 세력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싸운다. 온갖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동원한다. 크게 소리치지 않아도 그들의 역한 소리는 잘도 울려퍼진다.

그러나 청와대 앞, 광화문, 전국의 공공기관과 광장, 길거리에서 플래카드를 걸고 피켓을 들고 천막을 치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고 몸으로 싸운다. 뜨거운 여름날 아스팔트 위를 걷고,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목에 피를 머금고 외친다. '더 물러설 곳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

'민주화 세대'의 실패에서 얻어야 할 교훈

촛불정부를 자임하던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진보 지식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들도 결국 돈, 권력, 자기 자식, 부동산 앞에서는 '보수와 똑같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는 조롱만 남겼다.

교육 분야도 다르지 않다. 진보 교육감이 등장한 지 10년이 훨쩍 넘었지만 학생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학교와 교육청의 문화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학생과 교육이 아닌 '자리'와 '행정'을 중심에 둔 관료들의 행태도 여전히 그대로다.

11월 13일 한겨레에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정책 연구자 정태인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제목이 "민주화 세대는 실패했다, 청년에게 자리라도 내주자"였다. 정태인은 이른바 진보 정권이 불평등 문제에 실패한 이유를 묻는 기자 질문에 두 가지 이유를 댔다. 관료들에게 끌려가는 문제, 진보적 지식인이 상위 계층에 속하게 된 점, 그가 말한 두 가지다.

'진보적인 정권'의 실패에 대한 정태인의 진단은 이른바 진보 교육감의 실패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수년 전에 교육청에 들어갔던 전교조 출신 인사들은 놀라우리만치 기존 교육 관료들과 구별되지 않는다. 정책 결정 방식, 학교 구성원들을 대하는 태도, 언행 등 모든 면에서 기존 관료들과 잘 어울린다. 기가 막힌 적응력이다.

교사는 지식인이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이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더 그렇다.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엘리트적이 될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다. 교육 관료가 되었을 때 그 가능성은 수면 위로 드러나 현행화 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강원을 비롯해 진보 교육청으로 분류되는 시‧도교육청 정책이 큰 틀에서 보수 교육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단순히 교육부 중심의 중앙집권적 정책 결정 방식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근본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진보교육감 등장 초기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나아졌지만, 교육 정책 방향과 세부 내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보수화된다.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교육혁명'과 '노동해방'을 외치던 과거의 투사들이 권력을 얻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그들의 입에서는 여전히 가끔 '혁명'과 '해방'이 습관처럼 튀어나오지만, 몸짓에는 권력의 냄새가 묻어난다.

"우리는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다"

결국은 민주주의 실현의 문제이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교체된다고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비싼 교육비를 치르며 경험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즉, 누구에게 집중할 것인가이다. '목소리 없는 사람들', '먼지같은 존재', '있지만 없는 사람들', '몫 없는 사람들'의 몸짓과 목소리를 크게 만들어야 한다. 바로 평범한 우리들('데모스')이 중심에 서지 않는 한 '우리의 존재'를 지우려는 권력, 엘리트들은 가면을 바꿔 언제든지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다." (책 228쪽)
"먼지가 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도 좋다.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가보자. 뭐가 되어있든 우리는, 없지 않고 있을 테니까." (책 154~158쪽)
 
세상을 만들고 민주주의를 나아가게 하는 것은 먼지같은 바로 '우리'다.

먼지의 말

채효정 (지은이), 포도밭출판사(2021)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