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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로 지어진 창고 건물 '인천세관역사관'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문을 열지 못하다가 지난 11월 16일 오후 개관기념식과 함께 시민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창고 건물 "인천세관역사관"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문을 열지 못하다가 지난 11월 16일 오후 개관기념식과 함께 시민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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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인천시와 인천본부세관은 인천 내항 1부두 초입에 '인천세관역사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창고 건물을 '인천세관역사관'으로 새롭게 조성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개방하지 못하다가 지난 11월 16일 오후 개관기념식과 함께 시민들에게 활짝 문을 열었다.​

세관창고, 역사가치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

붉은 벽돌 건물들이 열을 지어 서 있는 이 공원은 옛 인천세관 청사, 창고, 부속 건물이 있던 곳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1992년 인천본부세관 청사가 인하대병원 근처에 있는 3부두 초입으로 위치를 옮기면서, 이곳은 오랫동안 보세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여 왔다. 세심한 설계와 좋은 재료로 구석구석 디테일을 살려 만든 건물들이었지만, 세월을 견뎌내는 동안 보관이나 사무 용도에만 맞춰 거친 방식으로 보수해 사용했다. 근대산업유산의 가치를 잘 모르던 시절, 많은 근대 건축물이 방치되거나 속절없이 사라졌다.

2010년, 세관 창고는 철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수인선 지하철 신포역 출입구를 설치하면서 그 위치에 서 있던 창고 건물을 철거하기로 했지만, 시민단체와 학계가 목소리를 높여 보존을 요구했다.

보존의 필요성을 공감하며 인천시는 예산을 편성해 창고 건물을 부두 방향으로 40m가량 이동·복원했다. 옮긴 부지가 협소해서 50평 규모의 창고를 30평 규모로 축소해야 했다. 규모가 줄어들면서 남게 된 석재 기단이 역사관 뒤편에 나란히 놓여 있다.
     
2013년 세관 창고, 화물계 사무소, 선거계 사무소 건물은 100년 전 인천개항과 근대 세관의 세월을 간직한 항만유산으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569호로 지정됐고, 2021년 지금의 모습으로 시민들과 새롭게 만나게 됐다.

인천세관역사관으로 들어가려면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긴 방향의 벽돌벽 가운데 있는 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높은 목재 트러스 천정과 넓은 마룻널 바닥이 인상적인 아담한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1883년 '인천해관' 설립부터 현재 '인천본관세관'에 이르는 138년의 역사가 오롯이 담긴 공간에서 세관의 역사와 함께 인천 근대의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다.
 
2013년 세관 창고, 화물계 사무소, 선거계 사무소 건물은 100년 전 인천개항과 근대 세관의 세월을 간직한 항만유산으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569호로 지정됐고, 2021년 지금의 모습으로 시민들과 새롭게 만나게 됐다. 사진 좌 선거계사무실, 우 화물계사무실
 2013년 세관 창고, 화물계 사무소, 선거계 사무소 건물은 100년 전 인천개항과 근대 세관의 세월을 간직한 항만유산으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569호로 지정됐고, 2021년 지금의 모습으로 시민들과 새롭게 만나게 됐다. 사진 좌 선거계사무실, 우 화물계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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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본관세관에서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성수 과장은 2005년부터 인천세관의 역사를 연구해왔다.
 인천본관세관에서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성수 과장은 2005년부터 인천세관의 역사를 연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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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개항 역사와 근대의 번영은 인천세관의 역사를 토대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천본관세관에서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성수 과장은 2005년부터 인천세관의 역사를 연구해왔다. 그동안 탐구하고 쌓아온 방대한 자료들을 역사관 전시를 위해 제공하고 기획에 깊이 개입했다.​

"일본군 장교 이소바야시가 그린 1883년 말 제물포지도와 1884년 상하이에서 발행한 신문기사에서 최초 인천해관 위치에 대한 흔적과 단편들을 발견하고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김성수 과장은 꼼꼼하고 꾸준한 연구로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인천세관 역사의 퍼즐을 맞춰가는 중이다.

아담한 전시공간은 알찬 전시물로 가득하다. 1911년에 그려진 세관 청사와 창고의 세밀한 건축도면, 도면을 토대로 하여 복원한 건축 미니어처, 옛 지도와 사진 등을 통해 근대 개항장 풍경을 그려볼 수 있다.

인천세관의 변천사와 업무 기록 자료들은 인천의 근현대사에 있어 인천세관의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1910년대의 매립지 조성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레플리카, 최근까지도 사무실에서 사용했던 견고한 철제 금고, 세관 용지 표시석도 전시돼 있다.​
 
구 인천세관청사 모형
 구 인천세관청사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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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세관청사 설계도면
 옛 세관청사 설계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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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세관 창고를 이동, 복원하면서 규모가 줄어들어 남게 된 석재기단이 인천세관역사관 뒤편에 나란히 놓여있다.
 인천세관 창고를 이동, 복원하면서 규모가 줄어들어 남게 된 석재기단이 인천세관역사관 뒤편에 나란히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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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세운 인천세관 구청사, 건축가 김희춘의 작품

"이 화강암 표시석은 저 위쪽 기념탑 부근 건축현장에서 발견했어요. 현장 쓰레기들이랑 함께 버려져 있더라구요. 표시석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 같네요." 두 발로 인천 구석구석을 살피는 장회숙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 대표는 인천세관역사관 전시물을 꼼꼼히 살폈다.

"수인선 지하철과 신포역 신축공사 때 터파기를 하면서, 1910년대에 바닷가 매립지를 조성하기 위해 갯벌에 빽빽하게 박아 넣은 소나무 말뚝들이 나왔어요. 백 년 동안 갯벌에 박혀있던 2m 길이의 튼튼한 소나무 말뚝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었는데, 다 어디로 갔을까요?"
 
문화해설사 장회숙씨가 인천세관역사관을 돌아보고 있다.
 문화해설사 장회숙씨가 인천세관역사관을 돌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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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숙 대표는 매일 이곳을 오가며 공사 현장을 지켜봤다. 소나무 말뚝은 당시의 매립지 조성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료였을 텐데, 그때 발굴된 소나무 말뚝 실물을 역사관에서 단 한 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건 무척 아쉬운 일이다.

역사관에서는 2012년 세관 창고를 이전 복원하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도 전시하고 있어 보기 드문 건축 광경을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다.

최근 김성수 과장은 또 하나의 비밀을 풀었다. 1959년 지어진 인천세관 구청사의 정초석을 발견해 건축 설계자가 김희춘 건축가라는 것을 밝혀냈다. 인천세관역사공원 옆에 타일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모더니즘 양식의 구청사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 때문에 한국 건축계의 거장이었던 김중업 건축가의 작품이 아닐까 추정하기도 했었는데, 정초석에 새겨진 설계자는 김희춘 건축가였다. 그는 서울대 건축과 교수를 역임한 한국 1세대 건축가로 인천 동구 동일방직 인천공장 기념관과 기숙사도 설계했다.​

일본이 아닌 우리 손으로 처음 지었던 인천세관 구청사 건물은 1992년까지 33년간 본관으로 사용됐다. 3부두로 신청사를 지어 이전한 이후, 구청사 건물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다가 지역 문화계의 존치 요구에도 불구하고 2010년 철거됐다. 건물이 사라진 부지는 현재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인천세관의 시대별 모습
 인천세관의 시대별 모습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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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장과 바다를 잇는 거점이자 쉼터되길

"세관 청사를 부숴버린 것은 문화테러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건물을 재생해 인천세관역사관을 만들었겠죠." 김성수 과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구청사를 아쉽게 회상했다.

인천세관공원은 아직 손볼 곳이 많다. 보세 창고 용도로 지정돼 있는 창고 건물이 한 채 더 남아있으며, 화물계 사무소와 선거계 사무소 건물도 세관 사무실 용도가 해제되지 않은 채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안내 사인물의 내용도 새롭게 밝혀진 연구 성과들을 반영해 재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인천세관은 1883년 고종의 명을 받은 묄렌도르프가 청나라의 해관(海關)을 모델로 창설한 인천해관에서 시작된 뒤, 100년이 넘는 역사를 통해 인천항이 동북아 무역의 중심으로 거듭나도록 선도해왔다.

세관의 역사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인천세관공원과 역사관은 철망을 걷고 시민의 곁으로 다가왔다. 인천 내항이 온전히 시민에게 열리고, 이곳이 개항장과 바다를 잇는 중요한 거점이자 쉼터가 되기를 바란다.

인천세관역사관에서 바다와 함께 성장한 해양도시 인천의 과거를 돌아보고, 붉은 벽돌 건물 너머로 황혼이 더 붉게 물드는 공원에서 시민과 더불어 새롭게 변모할 내항의 미래를 꿈꾸어 본다.
 
인천세관역사관 야경모습
 인천세관역사관 야경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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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세관역사관
○ 관람 시간 : 월~금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 입장료 : 무료
○ 인천광역시 중구 항동7가 1-47, 수인선 지하철 신포역 2번 출구

글· 사진 박수희 i-View 객원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태그:#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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