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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표지
 "프레임" 표지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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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뉴스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프레임이다. 프레임은 사건을 바라보는 틀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제공함으로써 여론을 좌지우지한다.

프레임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뗄 수 없는 개념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프레임 속에 갇혀 있는지 명확히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 그만큼 프레임은 평소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삶 깊숙이 스며들어서 우리들의 선택에 관여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학생에게 등수를 부여하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다. 입시 중심의 교육 제도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필수이고, 학생들에게 경쟁을 유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등수를 매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척 우수한 성적을 달성한 전교 2등이 1등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관점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은 언어를 바꾸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아이돌을 아티스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돌은 본래 기획사의 체계적인 훈련 아래 만들어진 상품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워낙 많은 제약 속에서 일하다보니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인 이미지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티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아이돌도 여타 가수와 마찬가지로 고유의 음악성을 지닌 주체적인 예술인이라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이처럼 명칭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괜히 청소부가 환경미화원으로 바뀐 것이 아니다.

프레임에서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있으니 맥락이다. 
 
"다수를 위해서는 때로 소수가 희생될 수 있다."
이 주장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맥락이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맥락이 제공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쉬워진다.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의 맥락에서 이 질문을 살펴보자.
 
달리던 트롤리가 고장이 나서 내부에서는 방향을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트롤리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철로 옆의 막대기 스위치를 올리는 것인데, 스위치를 올리면 트롤리는 방향을 바꿔서 한 사람의 인부를 치게 되고 스위치를 그대로 두면 원래 선로에서 일하던 다섯 명의 인부가 죽게 된다. 이 경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연구에 의하면 이 맥락에서는 다수가 방향을 바꾸겠다고 선택한다. 하지만 맥락이 조금만 바뀌면 결과가 달라진다. 트롤리가 고장 난 상태이고 그대로 두면 다섯 명의 인부가 죽게 되는데, 내가 기찻길 위 다리에 서 있는 남자를 밀어서 떨어뜨리면 트롤리를 멈출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남자를 밀지 않는 쪽을 택했다. 이처럼 어떤 맥락이 주어졌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의견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프레임 중 가장 강력한 프레임은 역시 자기중심성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오해받고 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누군가 자신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보고 "넌 소심한 편이구나" 같은 말을 하면 상대방의 오만함을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타인을 판단할 때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로 판단하기 일쑤이다. 이를 두고 본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다시 말해 '나'의 입장에서 타인은 짧은 시간에도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이지만, 나 자신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복잡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프레임은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 

프레임의 힘은 경제적 선택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가게에서 결제 수단에 따라 다른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표기하는 방식은 다르다.
 
1) 현금으로 구입하시면 1000원 할인 혜택을 드립니다.
2) 신용카드로 구입하시면 1000원의 추가 요금이 부가됩니다.
 
두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동일하다. 그런데 1번 문장은 '이득' 프레임을 2번 문장은 '손실' 프레임을 제시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어떤 문장을 보든 동일한 선택을 해야 맞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2번 문장을 봤을 때 현금으로 지불하려는 경향이 더 강해진다.
 
카너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손실은 이득보다 2.5배 정도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손실 혐오'라고 한다.
 
음식 어플에서 제공하는 요일별 할인을 생각해보자. 원래 가격을 그대로 받는 1만2000원짜리 백반과, 할인이 적용되어 원래 가격인 2만 원이 아니라 1만6000원에 먹을 수 있는 치킨이 있다. 절대적인 가격을 비교하면 1만6000원보다 1만2000원짜리 음식을 먹어야 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 대다수가 할인 메뉴인 치킨을 선택했다. 사람들은 원래 먹으려 했던 백반보다 4000원이나 더 돈을 쓰면서 이득을 봤다며 기뻐했다.

프레임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할까? 아니, 왜 프레임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까? 어쩌다 우리는 자신의 프레임이 옳다는 확신을 갖게 된 걸까?
 
미국 미네소타대 연구팀에서 한 유쾌한 실험이 있다. 한 집단의 남성들에게 매력적인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 여성과 전화상으로 짧은 대화를 나누게 했다. 다른 집단의 남성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고, 역시 전화로 대화를 나누게 했다. 그리고 제 3자에게 여성의 대화 내용만을 뽑아서 들려주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상대 남자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여성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여성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예쁜 여자가 마음도 예쁘다는 고정 관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 실험일까? 그렇지 않다. 이 실험에서 사용된 사진은 실제 전화 상대의 사진이 아니었다. 실제 여성의 외모와 무관하게 상대가 예쁘다는 기대를 가진 남성들은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를 사용했고, 그 반대의 경우 남성들은 퉁명스러운 말투를 사용했다. 그리고 남성들의 태도에 따라 상대 여자 또한 비슷한 말투를 사용했다. 즉, 여성의 행동은 그녀의 성품이 아니라 남성의 행동이 만들어낸 것이다.

과연 프레임은 우리의 삶 전체를 통제하고 있다. 그렇다고 프레임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프레임이 없으면 인식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프레임 속에 갇혀 있는지 그리고 이것을 어떤 식으로 바꿀 수 있는 지 끊임없이 탐색하는 태도이다.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평생토록 프레임에서 프레임으로 건너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프레임 -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은이), 21세기북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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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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