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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현장을 만드는 데에는 노조의 역할, 특히 노안활동이 중요해요. 그리고 노동자가 관심을 기울인 만큼 튼튼하고 건강한 노조가 될 수 있고요."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현장을 만드는 데에는 노조의 역할, 특히 노안활동이 중요해요. 그리고 노동자가 관심을 기울인 만큼 튼튼하고 건강한 노조가 될 수 있고요."
ⓒ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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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푸른 기운이 가시지 않은 25살이 시작하기엔 영 마땅찮은 곳이긴 했다. 여기저기서 불꽃이 튀고, 낯이 새카만 사람이 여럿인 탓이었다. 누가 말하길 거기 들어가면 먹고사는 데엔 아무 걱정이 없댔다. 이름도 낯선 유해물질과 흩날리는 분진으로 가득한 곳이니, 아무렴 먹고사는 문제라도 걱정이 없어야 했다.

위험천만한 현장에서 다칠세라 더욱 열심히 보호구를 착용한 지 어언 18년. 강산이 두 번 모양새를 바꾼 시간이지만, 현장의 위험은 여전하다. 힘들지언정 먹고사는 건 걱정 없다던 곳에선 471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졌다. 국내 단일 사업장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은 곳, 바로 현대중공업이다.

그리고 여기, 너무나 당연하고 오래된 구호인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바쁜 이가 하나 있다. 바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박정환 노동안전보건실장. 그의 고군분투기를 소개한다.
     
말뿐인 '안전 우선', 제대로 된 본보기 필요해

지난 10월 30일, 휴게공간으로 이동 중이던 노동자가 굴삭기 바퀴에 깔려 사망했다. 해당 현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이하 '산안법')의 작업자 통로가 확보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건설기계 등에 대한 충돌 방지나 신호수 배치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또한 작업계획서와 작업지시서의 부실, 용도 이외의 굴삭기 사용과 개조, 굴삭기 운전자 시야의 사각지대에 대한 예방조치 미흡 등 각종 위반사항과 관리 부실이 넘쳐났다. 사업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는 게 명백하지만, 회사는 책임을 축소하기에만 급급하다.

"현대중공업에서 올해 발생한 산재 사망사건만 벌써 4건이에요. 이것도 뇌심혈관계질환, 온열질환 등은 포함 안 된 숫자고요. 오죽하면 사망사고 다발 사업장이라고 하겠어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대응이 부랴부랴 이뤄져요.

문제는 말뿐인 대응이고, 이마저도 예방이 아니라 사후 대처에만 치중돼 있단 점이에요. 이번 사고 역시 제대로 관리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어요. 하지만 지금도 재발방지대책을 세우기보단, 중대재해가 아닌 교통사고라며 법망을 피하기 바쁘죠.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책임의 부재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다치고 죽어도, 어디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죠. 사고 이후에도 상급자나 안전관리자는 계속해서 자리를 유지해요. 확실한 본보기가 필요한 때예요. 

올해 6월에 산안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포함해서 전·현직 임직원이랑 하청업체 대표 등 15명이랑 법인 3곳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이 얼마를 구형한 줄 아세요? 벌금 2천만 원이에요. 이런 솜방망이식 처벌로는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어요.

다행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됐긴 하지만, 원래 노동계의 안보다는 훨씬 못한 채로 제정됐어요. 중대재해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관련 처벌법이 강화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투쟁해야죠."


최근 현대중공업에서 발발한 사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문제의 시작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에 따라, 대형 도장시설이 있는 조선소는 대기오염방지시설 설치 의무를 지게 됐다. 이에 조선소들은 비용의 논리에 따라, 공동 대응을 시작했다.

그 결과 무용제 도료를 도입하면, 소각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도록 시행규칙이 개정됐다. 시간이 흘러 현대중공업과 KCC가 공동으로 개발했고, 해당 무용제엔 '친환경'이란 이름이 붙었다. 환경엔 이로울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친노동자'이진 않았다. 신규 무용제 도료를 취급한 노동자들에게서 집단 피부질환이 발생한 탓이다.

"환경정책에 따라 도장시설이 있는 현장은 휘발성 유기화합물 저감장치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돈이 꽤 들죠. 그래서 현대중공업은 저감장치 대신 무용제 도료를 사용했어요. 문제는 작년 4월부터예요. 새로운 무용제 도료를 사용해 도장작업을 하던 23명의 노동자에게 붉은 반점과 물집이 생기는 피부발진 증상이 발생했어요. 현장 대의원과 노조가 확인해보니, 무용제 도료가 원인이었죠.

9월 초에 도장부 원하청 노동자를 조사해보니, 예사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바로 무용제 도료 사용의 중단을 요구하고, 전문기관에 유해성 검사의뢰와 피부발진 원인조사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증상 발생 인원을 축소하거나 개별 노동자의 알레르기 현상으로 취급하며, 적극적인 대처를 보이지 않았어요.

결국 고용노동부에 임시건강진단을 요청했고, 무용제 도료를 취급한 노동자 333명이 검진받았어요. 그 결과 피부 관련 '직업병 유소견자(D1)'는 35명, '현재는 증상이 없지만 관찰이 필요한 사람(C1)'은 88명이었죠.

노동부의 역학조사에 따르면, 무용제 도료는 기존 도료보다 휘발성 유기화합물 함량은 낮아졌어요. 대신 새로운 과민성 물질들이 빈자리를 채웠죠. 이에 노동부가 관련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회사 화학물질 도입 체계에 피부 과민성 평가항목을 추가하고, 내화학성 장갑과 보호의 등 적정 보호구를 지급 및 착용하라는 정도로 땜질 처방에 불과했어요.

무엇보다도 현대중공업과 KCC는 무용제 도료를 개발하면서 피부 과민성 문제를 간과할 뿐만 아니라, 사용 과정에서도 유해성 교육이나 적정 보호구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노동자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단 거죠.

신규 무용제 도료가 현장에서 사용된 지도 1년 반 가까이 흘렀어요. 인체 유해성 검증도 없이 현장에 도입돼, 노동자에게서 집단 피부질환까지 발생했지만 여전해요. 아직도 피부 과민성 외엔 어떤 게 유해하고, 위험한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어요. 이를 달리 말하면 현대중공업의 구성원들, 나아가 지역의 시민에게도 앞으로 어떤 건강 문제를 초래할지 알 수 없단 거나 마찬가지예요.

하루빨리 무용제 도료가 사용 중지되고, 피해 노동자의 신속한 산재처리가 이뤄져야 합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신규 도료가 도입되기 전에 인체 위험성 사전 검증과 물질의 도입 기준도 마련돼야 하고요."


알아야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 가능해

굵직한 사건을 예시로 들어서 그렇지, 사실 현대중공업에서 '큰 문제'만 발생하는 건 아니다. 대다수 노동자가 근골격계질환에 노출됐고, 현장을 가득 채운 소음으로 인해 직업성 난청을 안고 사는 이도 여럿이다.

창사 이래 471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고 했지만, 이는 재직 중인 노동자만을 포함한 숫자다. 퇴직 이후에 폐암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사례도 있다고 하니, 드러나지 않았거나 숨겨진 사례를 찾아내면 그 숫자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크고 작은, 보이거나 가려진 노동자의 아픔과 죽음으로 얼룩진 현장에는 어떤 슬픔이 있을까. 혹시 있다면, 또 어떤 기쁨이 자리할까.

"노동안전보건활동은 항상 힘들어요. 어쩔 수 없긴 하죠. 현장에서 사고 나면 달려가야지, 내용도 뭔 말인지 모를 만큼 어렵지… 원체 쉽지 않아서 그런가, 조합원이나 노동자들도 '노안활동'이라고 하면 일단 거리감을 두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현장을 만드는 데에는 노조의 역할, 특히 노안활동이 중요해요. 그리고 노동자가 관심을 기울인 만큼 튼튼하고 건강한 노조가 될 수 있고요. 그러니 다들 어렵고 힘들더라도, 노안활동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보여주면 좋겠어요.

저라고 해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 노안활동을 시작한 게 아니에요. 첫 직장으로 여기 왔을 때, 사실 실망했거든요.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얼굴이 온통 시커멓게 변할 정도로 분진으로 가득하지, 옆에선 쇠를 펄펄 끓이고 있지… 그런데 나도 어느샌가 코를 풀면 시커먼 코가 나오는 노동자가 다 됐더라고요. 여기서 일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일하다 병에 걸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그러면서 노안활동에 눈길이 자연스레 가기 시작했죠.

실제로 예전에 산재로 발목 염좌가 발생한 적이 있어요. 결과적으로 산재 승인을 받긴 했지만, 그때 사측에서 저더러 '밖에서 다친 거 아니냐'며 산재가 아니라는 식으로 대응하더라고요. 일하다 다친 노동자의 산재를 개인의 질병으로 몰아가는 행태를 보니, 속이 다 쓰렸습니다. 이후로 '내가 먼저 알아야 한다'라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안전보건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힘든 만큼 뿌듯함도 커요. 특히 현장 대의원이 법 조항을 근거 삼아 '이건 이래서 위험하다'라며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쁘더라고요. 자력을 키운 노동자, 자가 대응이 가능한 노동자를 발견할 때마다 '그래도 내가 활동을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나비효과를 처음 제시한 기상학자 로렌츠는 날씨의 예측이 어려운 건, 지구 어디선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라 했다. 이처럼 어떤 날갯짓 한 번이 커다란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듯이, 누군가의 시작은 저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일의 서두가 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자 했던 활동은 곧 현대중공업이란 현장, 지역사회 그리고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을 고민하게 하는 출발이 됐다. 앞으로 그가 일궈낼 변화를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인 한재영님이 작성하였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1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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