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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와 관련된 일화와 문화재가 있는 만기사는 아름다운 무봉산 산자락에 위치한다.
▲ 송탄 만기사의 전경 조선 세조와 관련된 일화와 문화재가 있는 만기사는 아름다운 무봉산 산자락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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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의 한계상 평택의 모든 명소를 다룰 수 없겠지만 발이 닿는 마을마다 시대를 대표했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너른 들판에는 앞으로 뻗어나갈 도시의 미래를 한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평택에는 여주의 신륵사, 화성의 용주사처럼 명성을 떨치고 있는 명찰은 없지만 천년 이상의 역사와 보물을 간직한 사찰이 몇 군데 있다.

먼저 평택 진위면 무봉산 자락에 위치한 만기사는 전통사찰에서 보기 드문 노란색 단청 덕분에 한국보단 중국에 있을 만한 인상을 강하게 가져다준다. 만기사가 위치한 무봉산은 산이 거의 없는 평택에서 가장 높은 산(208M)이고, 청소년들에게는 수련원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고려 태조 25년(924)에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조선 세조 당시 왕명으로 중수했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내력을 지니고 있다. 현재의 만기사는 1979년 실화로 요사채가 전소하자 원경스님이 이듬해 더욱 크게 확장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만기사는 조선 임금 중 불교를 가장 신봉했던 세조가 친히 방문했다고 한다. 세조가 이 절에 들러 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좋아 샘 이름을 감로천이라고 명명했다는 설화가 남아있다. 임금이 마신 물이라고 해서 마을 사람들은 이 우물을 어정이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그러나 만기사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대웅전에 모셔진 고려시대의 철조 여래좌상이라 할 수 있다. 붉은 단풍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만기사였지만 단청이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자연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다음으로 소개할 곳을 가기 전에 팽성 근교에 있는 홍학사 비각을 잠시 눈여겨보고 지나간다. 병자호란 당시 척화론을 끝까지 주장하다가 청나라로 끌려가 죽임을 당한 삼학사의 한분인 홍익한의 비석과 묘가 있는 곳이다. 여기서 머지않은 곳에 최대의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러스가 위치하고 있다.

거기서 평택 국제 대교를 건너면 송탄, 평택(팽성)과 함께 평택을 형성하고 있는 서부지역의 안중읍이 나타난다. 서부 해안가에 면한 안중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제법 소외받았던 곳이지만 평택항과 국제여객터미널이 속속 들어서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지역이다.  

심복사와 '소 무덤'
  
평택호 근처에 자리한 심복사는 많은 전설이 담겨져 있는 평택을 대표하는 고찰이다.
▲ 고려시대, 전설이 담겨져 있는 심복사 평택호 근처에 자리한 심복사는 많은 전설이 담겨져 있는 평택을 대표하는 고찰이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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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 시멘트길을 따라 평택호 방면으로 내려가다 보면 멋진 소나무와 매끈한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심어져 있는 심복사 경내에 들어오게 된다. 그런데 이 절에서 마을 안길로 조금만 들어서면 좀처럼 보기 힘든 '소 무덤'을 볼 수 있다. 봉긋한 봉분은 물론 반듯하게 쌓아 올린 축석, 커다란 상석을 보아하니 경건하고 귀하게 모시는 무덤이 틀림없다.

앞서 소개했던 원균의 '의마총'처럼 주인에게 충성을 다해 묻히는 말무덤은 봤어도 소를 위해 만든 무덤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이야기는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택 아산호 일대에서 고기를 잡던 천씨 노인이 그물을 올려보니 큰 돌이 딸려 올라왔다. 처음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버렸지만 다시 한번 딸려 올라와 자세히 살펴보니 불상이었다.     

그는 불상을 지고 산을 올랐고, 불상이 무거워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던 자리에 불상을 봉안했고, 그때 노인은 소들의 도움으로 폐선의 목재를 불상의 자리에 욺 겨 절을 지으니 현재의 심복사다. 이 소 무덤은 심복사 창건에 도움을 준 소 세 마리의 무덤이다.

심복사는 정확한 창건 년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려시대 바다에서 건졌다는 설화로 미뤄볼 때 고려시대에도 존재했을 것이다 가늠할 뿐이다. 절은 큰 규모가 아니었지만 주 불전인 대덕 광전에 모셔진 전설상의 돌부처 비로자나불 좌상을 친견하니 전설로만 여겨졌던 일들이 마치 역사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조선 세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신숙주는 조선 외교와 관련하여 큰 역할을 수행했다. 변절자란 오명도 있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라 일컬어진다.
▲ 신숙주 사당 조선 세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신숙주는 조선 외교와 관련하여 큰 역할을 수행했다. 변절자란 오명도 있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라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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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복사를 나와 안중읍 외각에 자리 잡은 약사사도 평택에서 빼놓으면 섭섭해할 만한 사찰이다. 대웅전에 자리 잡고 있는 약사사의 '석조 지장보살좌상'을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그리고 원균, 정도전 다음으로 평택을 연고로 두고 있는 역사 인물인 신숙주의 사당도 평택 안중에 자리 잡고 있다.

신숙주는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세종 시기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일조했지만 단종을 버리고 세조에게 붙으면서 영달을 선택한 변절자의 한 표상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숙주나물이라는 표현도 그런 유래로 오랫동안 알려져 왔다.     

하지만 외교에 능통해 대마도에서 계해약조를 맺음은 물론 여진족과 반목이 있을 때 여진 외교를 담당하며 여진 추장을 화합시키는 역할도 도맡아 했다. 실제로 중국어, 일본어, 여진어, 몽골어 심지어 위구르어에도 능통한 조선의 천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세를 따른 업보를 지금까지 지고 있는 것이다.     

수도사와 원효대사의 '해골물'
 
평택 수도사는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셨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그와 관련된 전시관과 동굴을 재현한 깨달음 체험관이 개장했다.
▲ 평택 수도사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 평택 수도사는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셨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그와 관련된 전시관과 동굴을 재현한 깨달음 체험관이 개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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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발걸음은 평택 포승읍에 위치한 아산만이 내려다 보이는 사찰인 수도사다. 절은 새롭게 지어져 예전의 자취는 전혀 느낄 수 없지만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고승인 원효대사가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던 중 수도사 부근 토굴에서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장소다.

수도사의 언덕에 자리 잡은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에서는 원효대사의 일대기는 물론 비를 피해 갔던 토굴을 그대로 재현해 그때 상황과 비슷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독특한 전시관이다.

원효대사는 해골바가지 사건 이후 당나라 유학길을 포기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널리 배움을 구했다. 그는 왕족들과 귀족만 믿던 불교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라는 염불 하나로 대중화를 이끌었다.     
 
수도사에 위치한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은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셨다는 공간을 재현해놓았다.
▲ 수도사에 위치한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의 동굴입구 수도사에 위치한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은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셨다는 공간을 재현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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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십문화쟁론>, <대승기신론 소> 등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저작과 불교계의 화합을 이끈 화쟁사상은 각종 분야에서 분열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되새겨봐야 할 사상이지 않을까 싶다.

평택호가 가장 잘 보이는 평택호 유원지에 가서 해가 떨어지는 노을을 천천히 살펴본다. 평택은 수많은 역사 인물들이 각기 다른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원균 장군만큼 정도전, 신숙주 사당의 관리와 콘텐츠 개발에 힘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기남부의 풍요로운 도시 평택이었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1권 (경기별곡 1편)이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 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경기도는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와 함께 합니다.


태그:#경기도여행, #경기도, #평택, #평택여행,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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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 경기별곡2편>, 경기별곡 3편 저자. kbs, mbc, ebs 등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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