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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육해공군 준장 진급자 삼정검 수여 후 격려사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육해공군 준장 진급자 삼정검 수여 후 격려사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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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다가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더불어민주당 탈당'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대통령의 탈당을 권유할 생각은 없느냐'고 질의했다.

15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이철희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으로부터 문 대통령의 축하 화환을 전달받는 자리에서 대통령 탈당 문제와 연관될 소지가 있는 발언을 내놨다. 문재인 정부의 선거 중립 의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관련 기사: 문 대통령 '축하 난' 받은 윤석열 "엄정 중립 지켜달라").

16일 문화방송(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이철희 수석은 이에 대해 명확히 선을 그었다. 그는 "대통령에게 당적을 이탈하라고 하는 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책임정치의 관점에도 맞지 않는다" "그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아닐까 싶다"라고 발언했다. 문 대통령의 임기 후반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들과 다르다는 점에 대한 자신감도 이 발언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 국민의힘 당사에서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 난을 전달받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 국민의힘 당사에서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 난을 전달받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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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당적 이탈·유지'... 반복돼온 역사 

이철희 수석이 언급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은 1992년에 김영삼이 민주자유당(민자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뒤부터 시작됐다. 당시의 노태우 대통령이 어느 정도는 김영삼과의 갈등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야당의 김대중에 대한 '보험 가입'을 위해 당시 소속돼 있던 민자당 탈당을 결행했던 일이 그 출발점이다.

그해 8월 25일 총재직을 사퇴한 노태우는 9월 18일 탈당 발표 및 중립내각 구성을 선언했다. 이것이 '9.18선언(대책)'으로 불린 것은 이때만 해도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이 집권여당을 떠나 선거 중립을 지키겠다는 선언은, 이 시기 관점으로는 '잘못된 관행'이 아니라 '좋은 선례'로 기억될 수 있는 일이었다.

노태우의 선례는 김영삼과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졌다. 이런 사례는 지지율 하락과 비리 의혹과 당 장악력 약화 등으로 곤란에 빠진 임기 말년의 대통령으로부터 여당 대선후보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됐다.

노무현 이후의 두 사람은 그러나 재임 중에 탈당하지 않았다. 이명박은 촛불혁명 기간인 2017년 1월에 새누리당을 탈당했고, 박근혜는 탄핵을 받고 수감 중인 그해 11월에 자유한국당에서 제명 당했다.

재임 중에 탈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님은 물론이다. 재임 중에 당적을 유지한 이명박·박근혜는 퇴임 뒤 사회로부터 격리 조치를 당했다. 노태우 이전의 대통령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한결같이 부정적 평가를 받거나 끝이 좋지 않았다.

이승만은 재임 중에 4.19라는 시민혁명을 만나 하와이로 도주했고, 의원내각제 시절의 두 지도자인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는 재임 중인 1961년에 박정희의 하극상이라는 불운을 겪었다. 특히 윤보선의 경우에는, 5.16 쿠데타를 합법화해준 데 그치지 않고 박정희 밑에서 10개월이나 대통령을 지내다가 1962년 3월 22일 하야성명을 발표했다.

비극적 결말 맞은 대통령들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이명박 박근혜 전직 대통령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이명박 박근혜 전직 대통령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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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재임 중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술자리에서 측근으로부터 암살을 당하는 희대의 참극이었다. 최규하는 대통령이 된 지 6일 만에 12.12 쿠데타를 당하더니 5개월 뒤 5.17 쿠데타를 한 번 더 당했다. 뒤이어 5.18 광주학살을 묵인하다가 전두환 임시정부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설치까지 목도했다. 그는 전두환에게 대장 계급장을 달아주고 10일 뒤인 1980년 8월 16일 대통령을 사임했다.

전두환은 민주정의당(민정당) 당적을 대통령 재임 중에 잘 지켜냈다. 6월항쟁 직후인 1987년 8월 5일 노태우 대통령후보를 총재로 끌어올린 뒤 명예총재로 물러났다. 1988년 2월 25일 때까지 그는 명예총재직과 당적을 유지했다.

6월항쟁을 당하고도 대통령직과 당직을 지켜낸 그가 행복해졌는지 불행해졌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퇴임 뒤 그는 설악산 백담사로, 여의도 국회 청문회장으로, 연희동 골목성명 뒤 고향 합천으로, 바로 다음날 안양교도소로 끌려갔다. 오늘날에는 광주로 불려 다닌다.

노태우 이전의 대통령들은 위와 같은 경험들에 더해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더 겪었다. 그것은 제1공화국이니 제2공화국이니 하는 표현들과 관련이 있다.

역대 헌법들은 한결같이 대한민국 국호를 유지했다. 새로운 헌법들은 제헌이 아닌 개헌을 통해 등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제1공화국이다. 그런데도 제2공화국·제3공화국 같은 표현이 나온 것은 신헌법의 정치체제가 구헌법과 크게 달라 실질적으로 새로운 공화국이 출범한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 헌법(제2공화국 헌법)은 이전의 대통령제와 달리 의원내각제를 규정했고, 1963년 헌법(3공 헌법)은 대통령제로 복귀했고, 1972년 헌법(4공 헌법)은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황제체제' 비슷한 것을 규정했고, 1980년 헌법(제5공 헌법)은 황제체제는 아니지만 정상적인 대통령제라고 볼 수 없는 것을 규정했다. 그랬다가 1987년에 현행 헌법(6공 헌법)이 등장했다. 형식상으로는 동일한 대한민국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다른 공화국이 연이어 출현했기 때문에 제1공화국에서 제6공화국까지의 표현이 나오게 됐다.

프랑스에서는 대혁명 3년 뒤인 1792년에 제1공화국이 등장하고 나폴레옹에 의해 제1제정(제1제국)이 등장했다가 1915년에 예전의 왕정으로 복귀했다. 그랬다가 1848년에 제2공화국이 나타나더니 1851년에 제2제정, 1871년에 제3공화국이 출현했다. 그 뒤 1940년부터 4년간의 비시체제(독일 괴뢰정권)를 거쳐 1946년에 제4공화국, 1958년에 지금의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

프랑스에서 근 200년간 일어난 정치적 변화가 한국에서는 1948년부터 1987년까지의 39년 사이에 집약적으로 진행됐다. 이렇게 된 것은 6월항쟁 이전의 역대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에 의해 매번 부정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권들이 대한민국 국호는 유지하되 실질적으로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는 노태우 이전의 역대 대통령들이 재임 중 탈당이나 퇴임 후 수감보다 훨씬 무거운 상황들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재임 중에 시민혁명이나 쿠데타 또는 암살을 당하는 것도 그렇지만, 자기가 이끈 공화국이 바로 다음 정권에 의해 부정되는 것도 그런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철희 정무수석은 재임 중 탈당을 '과거의 잘못된 관행'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재임 중에 탈당한 대통령들은 노태우를 제외하면 그나마 나은 평가를 받았다. 김영삼은 여타의 보수정권 대통령들보다 나은 평가를 받았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제한적으로나마 한국 사회를 진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통령 잔혹사, 반복되는 이유

그렇기 때문에 재임 중 탈당 여부를 놓고 대통령을 평가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와 딱 들어맞지 않는다. 재임 중에 탈당하는 것이 명예로운 일은 아니지만, 이것이 1987년 이후의 대통령들이 자기 당을 돕고 자기 명예를 지키는 방편으로 활용된 측면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재임 중 탈당했든 아니든,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잔혹사라 불릴 만한 상황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재임 중에 탈당도 하지 않고, 재임 중에 암살도 당하지 않고, 재임 중에 시민혁명이나 쿠데타도 당하지 않고, 퇴임 후에 감옥에도 가지 않고, 퇴임 후에 자기 시대의 공화국이 부정되지도 않는 다섯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대통령은 이제까지 없었다.

이렇게 대통령 잔혹사가 계속된 것은 한반도 대중들의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언론보도나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노동 현장이나 공사 현장에서도 대통령과 정부뿐 아니라 대한민국 체제 자체에 대한 불만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은 불만족스러운 나라가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월 29일 '부동산 부패 청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이 3월 29일 "부동산 부패 청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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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불만 중에 대표적인 것은 '사회가 불공정하다' '극소수가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산다' '땀 흘린 만큼 대가가 안 나온다' '세상 살 맛이 안 난다' '친일파가 득세한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등이다.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나 역량만으로 해결되기 힘든 근원적 문제제기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터져 나올 정도로 대한민국은 '위기의 상시화' '위기의 항상화'에 처해 있다.

그런 문제제기를 감당할 만한 역량과 소명의식을 갖춘 정권이 출현하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대통령 잔혹사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정권들이 대중의 도전으로 인해 항상 위기에 처해 있다 보니, 위의 다섯 가지 상황이 나타나기도 쉽다고 말할 수 있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제기하는 근원적 모순들이 해결하지 않는 한, 대통령 잔혹사는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태그:#대통령 탈당, #대통령 당적 이탈, #문재인 탈당 문제, #대한민국 정치 불안, #대한민국 정치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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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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