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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폭력' 표지
 "감정폭력" 표지
ⓒ 걷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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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에너지를 뺏어가는 뱀파이어 친구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한 동료는 마음을 쉽게 열었다. 볼 때마다 밝게 인사를 받아주고, 몇 번 일처리를 배려해줬더니 곧장 나에게 번호를 물었고 자취방에 한 번 오라고 초대까지 해주었다. 나 또한 친구를 만들고 싶었기에 그런 호의가 고마웠고 휴일에 그녀의 자취방까지 가게 되었다.

캔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어쩐지 점점 그녀의 불평불만이 늘어났다. 나는 잠시 대화가 끊길 때마다 영화나 볼까, 하는 식으로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그녀는 끈질기게 본인의 고민을 늘어놓았고 어느 새 나는 상담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슬슬 자리가 불편해지려는 찰나 그녀가 가정사를 얘기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더욱 열심히 그녀의 말을 경청하며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때까지 기다렸다.

최선을 다해 그녀를 위로해주었지만 그녀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도무지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자정을 넘기고 나서야 겨우 그녀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자고 가라고 나를 붙잡는 그녀에게 몇 번이나 핑계를 둘러댄 후였다. 기진맥진한 채로 집에 돌아가는 길이 일하고 왔을 때보다 더 피곤했다.

사람을 유형화하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지만, 그녀와 비슷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쉽게 다가와서 팔짱을 끼고 자신의 속마음을 활짝 내보이며 사소한 문제까지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이들. 그런 이들 대부분 악의를 가지고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서 나는 매번 최선을 다해 적절한 반응을 보이려고 노력했고 그 자체가 나에겐 부담이 되었다.

〈감정 폭력〉에선 이런 이들을 '에너지 뱀파이어'로 정의했다.
 
이런 사람들은 항상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문제를 던진다. "어떻게 해야 돼?", "너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에너지 뱀파이어'들은 내가 고민해서 내린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문제로 늘 고민하고 늘 같은 질문을 던졌다.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 '지금 내 말을 듣는 게 피곤하겠구나'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그들은 끝까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한 마디로 '에너지 뱀파이어'들은 다른 폭력적인 사람들이 그러하듯 역지사지가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남에게 직접적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화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엄연히 '감정 폭력'이다. 그러니 작가는 '친절하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경계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감정적 공갈 협박을 일삼는 부모

"넌 엄마 생각은 하나도 안 하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해주면 정말 기쁠 텐데."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흔히 듣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들이 감정 폭력이라고는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꼭 흉기를 들이밀며 강제로 계약서에 지장을 찍게 해야만 협박이 아니다. 부모가 관계를 이용해서 자녀에게 원하는 행동을 끌어내는 것 또한 엄연히 '애정을 볼모로 한 협박'에 해당한다. 이러한 협박은 텍스트만 보면 굉장히 부드럽다. 일명 '감정적 공갈협박'이다.
 
항상 그렇지만 이런 상황 역시 전후 상황과 개인의 저항력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가까운 사이의 사람끼리는 가끔씩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다. 이는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선의의 행동이다. 반대로 아이가 부모에게 느끼는 '정서적 의존성'을 악용해 아이를 순종적으로 만드는 부모의 태도는 문제가 된다.
 
가장 무서운 폭력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그것이 폭력이라는 인지도 없이 벌어지는 폭력이다. 부모가 자식을 '착한 딸' '착한 아들'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은 얼마나 흔한가. 그러한 환경 속에서 길러진 자식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착한 자식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주체적인 삶을 누리기 힘들다.

무시로 권력을 과시하는 사람들

내가 지금까지 참가해온 공모전은 대략 100개가 넘는다. 그 중 유의미한 성과를 얻은 곳은 0.5% 정도일까. 공모전에 참가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99.9%의 공모전에서는 탈락한 사람에게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아니, 탈락이라고 말해주지도 않는다. 연락이 안 오면 '떨어졌나보다' 하고 알아서 체념하는 식이다.

그중에서도 발표 날짜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고 '11월 중' 이런 식으로 뭉뚱그려 표시하는 곳이 있다. 이런 공모전에 참가했다간 마음고생을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카페에 들어가 보면 합격자에게 통보가 간 것인지 아직 심사 중인지 한 달 내내 혼자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공모전뿐 아니라 대학 입시, 취업 면접이 모두 비슷하다. 합격자에게 개별적으로 통보한다고 안내하면 끝이다. 이런 상황을 대화로 옮겨보면 이렇다. "제가 이런 작품을 써 봤는데 어떠세요?" "……." 혹은, "이 회사에서 꼭 일하고 싶습니다. 입사를 위해서 전 이러이러한 공부를 했고……." "……."

대화 중 상대가 무반응으로 일관하면 우리는 그것을 무시라고 부른다. 그리고 아주 무례한 반응으로 여긴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는 무시는 권력자들의 권리로 다뤄진다. 무시당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다. 무시당했다고 따질 수도 없다. 오히려 '내가 뭘 잘못했지?' 라거나 '내가 뭐가 부족했지?'라며 무시당하는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는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옛말은 "아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 것은 더 큰 힘이다"라는 말로 이미 오래전에 바뀌었어야 했다.
 
봉준호 감독이 조감독일 때, 오디션에서 떨어진 송강호에게 삐삐로 긴 음성을 남겼다고 한다. 이 작품에는 비록 캐스팅 되지 않았지만 언젠간 좋은 작품으로 뵙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송강호 배우는 그 음성에서 봉준호 감독의 진심을 느꼈고 결국 두 사람은 후에 합작하여 한국 영화사에 역사적인 작품을 여러 편 남겼다. 권력 관계가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에서 상대를 대하는 품격을 갖춘 사람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감정 폭력 -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되는 폭력 이야기

베르너 바르텐스 (지은이), 손희주 (옮긴이), 걷는나무(2019)


태그:#심리학, #인간관계, #인문, #책리뷰,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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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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