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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5일 오전 서울의 한 터미널 인근에서 군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오전 서울의 한 터미널 인근에서 군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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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20년 3월에 입대해, 이듬해 21년 7월 말 전역 전 휴가를 출발하고 9월 중순에 공식적으로 전역했다. 군 생활의 시작과 끝을 모두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한 코로나 군번이다. 동시에 공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된 휴대전화 군번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군대 기억이 가장 따끈하다는 점을 어필하고 싶었다.

코로나는 군의 정상적인 일과를 많이 제약했다. 대민 접촉 우려가 있는 모든 것이 통제됐다. 훈련도 최대한 영내(병영의 안)에서 진행했다. 그렇다고 해서 병사의 힘듦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훈련 장소가 영내로 바뀌었을 뿐, 크게 치르지 못한 만큼 자잘한 훈련을 더 많이 진행했다. 마스크를 쓴 채로 훈련을 할 때마다 호흡이 달렸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이면 정말 힘들었다. 

무엇보다 제일 곤욕스러운 것은 마스크 상시 착용이었다. 새벽 6시 기상 때부터 자기 직전까지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다. 국민 모두가 착용하는 것이니 마스크 착용 자체에 불만을 품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병사들만 24시간 같이 사는 생활관에서도 마스크 착용이 강제되고, 수시로 불시 점검(때로는 영외간부에 의해)을 받는다는 점이 불만이었다.  

불시 징계의 위협은 매번 스트레스였다. 또 훈련과 부대 행사, 체력단련 때는 다 붙어서 하면서, 밥 먹을 때와 쉴 때만 거리두기와 방역수칙을 엄격하게 따지는 이중잣대에도 굉장히 회의감이 들었던 것 같다.

장기간 휴가 통제와 조기전역

코로나19의 전국적 대유행으로 인한 장병 출타 제한은 부대별 훈련과 일정에 따라 국방부가 발표한 공식적인 일정보다 더 길어지기도 했다. 부대에 따라서 출타 통제가 풀릴 시기에 적체 휴가를 해소하기보다, 밀린 훈련을 몰아치거나 부득이하게 부대 평가 기간과 겹친 곳도 있기 때문이다. 휴가만 바라보고 고된 훈련을 견뎠더니, 훈련 종료 시점엔 다시 대유행이 돌아 출타 통제가 반복되었다. 

나는 조금 극단적인 경우인데 신병 휴가 241일 뒤, 말출(전역 전 휴가)을 다녀와 병장을 달았다. 네다섯 번쯤 휴가 출발 전날에 잘렸던 것 같다. 좌절감은 물론, 운송과 숙박 업소 예약 취소로 인한 금전적 손해가 상당했다. 일주일 정도 내보내는 휴가도 PCR 검사와 자가 대기 기간으로 이틀을 썼으니 정말 짧게만 느껴졌다. 얼마나 부대 밖을 나가보지 않았으면, 말출 복귀 때 위병소 위치가 헷갈려 복귀시간을 못 맞출까 봐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다. 

정상적인 휴가가 막히자, 병사들 사이에서는 조기전역(전역 전 휴가 출발 후 자가전역)만이 한줄기 유일한 희망으로 떠올랐다. 분기별로 코로나 위로 휴가가 이틀씩 나왔다. 전역 전까지 보통 10일~12일 정도였는데 여기에 분대장, 또래상담병, 이발병을 비롯해 각종 포상휴가를 차곡차곡 모으는 것이 군 생활에 굉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모이는 휴가는 곧 줄어드는 군생활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열심히 참아가며 모았는데, 말년에 사단본부에서 조기전역을 위해 의도적으로 휴가를 나가지 않아 적체 휴가가 발생했다며, 코로나 시국에 15일 나가고 이틀 쉬고 15일 나가고 이틀 쉬고를 반복해 이른바 '찍턴'(휴가를 나갔다가 짧게 복귀하고 다시 휴가를 나가는 일)을 하라고 했을 땐 얼마나 억울하던지. 비슷한 일이 여러 부대에서 있었던 일인 모양인지 육군본부 인트라넷 민원게시판에는 열불이 터져 전투력이 급상승한 말년병장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했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것보다 괴로웠던 것은 언제 휴가가 정상화될지 기약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과 여자친구에게 어떠한 약속도 해주지 못한다는 게 참 괴로웠다. 기한 없는 기다림이 참 어려웠다.

많은 이들이 복무 중 한 번 이상 코로나 블루에 빠졌던 것 같다. 나도 정말 힘들었는데, 큰형이고 또 또래 상담병이라 어디서 티도 못 내고 어린 동생들 후임들 달래주느라 거의 주말을 반납했던 것 같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인원이 꽤 있었고, 아픈 채로 입대한 친구들은 여지없이 현역 부적합 심사를 받고 일찌감치 사회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누군가는 병사 복지도 많이 좋아졌는데, 뭐가 힘드냐고 되물을 수 있다. 요즘 군대가 힘든 건 '인력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구 절벽을 가장 여실히 느끼고 있는 곳이 군대다. 병력은 계획대로 꾸준히 감축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수요-공급을 말끔하게 맞추지 못하는 듯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코로나로 모두가 스트레스가 가득한 와중에 겹쳤다는 것이다. 경계 근무는 회전 속도가 너무나 빨라, 격일에 한 번씩 야간 근무에 들어갔다. 공교롭게 체육대회나 훈련이 겹치면 정말이지 축구선수 출신도 밥을 먹다 코피를 쏟았다.

멀쩡했던 친구들도 우울함에 잠식되는 상황에 수면부족과 과로가 얹히고, 거기에 가정사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경우 추가로 자살 고위험 진단을 받는 이들이 생겼다. 코로나 시기에 누구도 악의가 없었지만 모두가 속수무책이었다.  

휴대전화라는 작은 해방구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건 장기간 출타 제한 국면에서 휴대전화가 병사들의 해방구였다는 점이다. 휴대전화 사용으로 정말 많은 점이 바뀌었다. 많은 병영 부조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1303 국방 헬프콜과 같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외부 채널에 접근이 쉬워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휴대전화 쓸 시간이 아까워 남을 괴롭히는 시간이 줄어드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방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병사들은 밀린 유튜브를 몰아보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가족과 연인과 전화통화를 하며 스트레스를 달랬다. 나는 개인정비 시간에 휴대전화를 이용해 글을 썼다. 대학 입시를 새로 준비하던 선임은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휴대전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그저 좋았다. 복무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생산성이 있었고 재충전은 원래 그런 것과 멀어져서 있는 것이니까. 

휴대전화 사용을 아니꼽게 보는 시선도 더러 있었다. 휴식 군기를 지키라고 끊임없이 압박하고 질책하는 간부도 있었다. 물론 부작용이 없다고 말할 순 없다. 진중문고 독서율이 떨어지고, 불법 사이버도박 및 음란물 중독 사례가 종종 보고 되었다. 휴대전화 사용시간대에 경계근무가 자주 걸리는 인원은 늘 불만을 제기하며 새로운 병영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휴대전화가 아니었다면 정말 많은 병사들이 우울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건 정말이지 유일한 출구였고 유일한 개인 시간이었다. 이른바 '부실 급식' 논란 같은 것도 휴대전화가 없었다면 은폐되었을 사건이다. 운동은 체력단련 시간을 철저히 지키면 될 일이고, 독서는 휴가와 같은 장려정책으로, 음란물과 도박은 처벌을 명확히 하면 될 문제다. 

최근 장병의 일과 중 휴대전화 전면 사용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반대의 이유에 보안과 군기 문제가 항상 앞순위로 떠오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진짜 문제는 휴대전화보다 '아랫사람이 편해지는 걸 보기 싫어하는 특유의 군대문화'가 아닐까? 아랫사람이 쉬는 것을 아니꼽게 보는 문화는 군대가 아니더라도 꼭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시기에 군 복무를 하고 있는 모든 병사의 무사 전역을 빈다. 

덧붙이는 글 | 모든 군대 이야기는 개인적입니다. 부대 바이 부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성급히 일반화 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최대한 많이 공감할 수 있도록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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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근로자, 부업 작가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과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를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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