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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상황은 여성 돌봄 노동자에게 더 가혹했다.
 재난 상황은 여성 돌봄 노동자에게 더 가혹했다.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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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립유치원 보조교사로 최저임금을 받고 근무해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2월 원생이 줄어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받아서 지금은 실업 상태입니다.

1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터라, 연말이 되면 재계약이 안 될까봐 불안해 하고 불합리한 대우에도 어느 누구 선뜻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지 못 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법정 공휴일인 노동절 근무는 당연했고, 정교사들의 호봉 인상이 적용되는 3월 임금부터 최저임금 인상분이 적용되어 1, 2월 임금은 지난해 최저임금 기준으로 받아야 했습니다. 하루 8시간 근무에 휴게시간 한 시간이 근로계약서에 적혀 있지만, 점심시간이면 아이들 점심을 챙겨야 해서 급하게 식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먹지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

선생님들은 몇 년씩 내려온 이러한 불합리한 관행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건 법적으로 보장받은 우리의 권리니까 얘기해서 권리를 찾아보자"라고 했지만, 고용 불안에 대한 염려 때문에 아무도 선뜻 나서질 않았습니다. 저와 다른 한 분의 보조교사가 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해서 몇 년 동안 받지 못한 최저임금 소급분과 노동절 근무에 대한 대체휴일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2018년에는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 경영이 부담된다면서 4명이던 보조교사를 2명으로 줄였습니다. 그나마 남은 보조교사들에게는 일방적으로 근무시간을 한 시간씩 줄이기까지 하면서 근로계약서에 없는 업무(조리실 설거지, 승합차 운행)를 요구했습니다. 대부분 중장년 여성들이고 비정규 노동자인 보조교사들은 이를 수용하거나, 아니면 그만둬야 하는 서글픈 현실과 맞닥뜨렸습니다.

지난해 2월 대구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유치원 개원이 연기되었습니다. 이 때 원장은 차량 기사, 조리사, 또 한 분의 보조교사와 저를 포함해 4명에게 무급휴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황당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휴직이 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하고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무급휴가 기간이 길어지면서 불안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유치원에서는 무작정 기다리라고만 하더니, 심지어 퇴사 처리해줄 테니 실업급여를 받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와 같은 상황에 있는 무급휴직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지 않을까 싶어 인터넷을 뒤지고, 고용센터에 가서 상담도 해보고, 심지어 교육청에 전화도 하면서 '고용유지지원금'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원장에게 전화해서 "이런 제도가 있으니 신청을 해보면 어떻겠냐"라고 했더니 "유치원은 교육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안 될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에 "하지만 그건 정교사들에게 해당하지 우리는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더니, 그러면 원에서는 바빠서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으니 모든 서류를 만들어 오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당신들이 혜택을 받는 건데 사업주 부담금 10%를 자기가 굳이 낼 필요가 있냐면서 지원금 신청이 되면 그 금액을 달라고까지 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과 고용센터에서 실시하는 계획서 작성 요령에 대한 교육을 받고, 몇 번이고 유치원과 고용센터를 오가며 담당자에게 묻고 또 물어서 어렵사리 지원금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런데도 원에서는 오히려 '에듀파인' 실행으로 회계 관리가 엄격해져서 나중에 지원금이 안 나오면 골치 아프다며 지원금이 확실히 나오는 게 맞는지 고용센터 담당자에게 확인증이나 공문을 받아오라는 어이없는 요구까지 하더군요. 행정 담당자가 해야 할 서류 절차를 우리가 다 하면서 말도 안 되는 것까지 요구하는 유치원의 태도에 무척 화가 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6월 개원을 했지만, 차량 기사님과 조리사 선생님만 출근하고 보조교사 두 명은 출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2부제 수업으로 등원 아동이 적어 보조교사 업무가 필요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6월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을 하려고 했더니 유치원은 형평성에 안 맞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지원금 신청을 거절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노동청에 상담해보니 개원 상태에서 원에서 쉬라고 했다면 원으로부터 휴업수당을 받을 수 있으며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이 된다고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지원금 신청서류를 작성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었는데, 원에서 저희에게 무급휴가를 통보한 3월에 저희도 알지 못하는 한 명(원장 남편)이 고용보험에 가입됐다는 것입니다. 유치원이 휴원인 상태인데도 이 분은 무급휴가에 들어간 저희와 달리 매일 근무를 한다고 합니다. 원에서는 본 적도 없는데도요. 그래서 4명이던 사업장이 5인 사업장이 되면서 휴업수당을 청구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원에 전화해서 휴업수당 얘기를 했더니 "놀면서 70% 급여를 받아가는 그런 게 어디 있냐"면서 펄쩍 화를 내기에 알아보시라고 하니 "시간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라고 하더군요. 저희가 "그럼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서 받겠다"라고 했더니 원자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우여곡절 속에 7월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근할 때 지문 인식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데, 저와 다른 보조교사 선생님만 지문 등록을 해주지 않아 매번 벨을 눌러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등 유치원의 태도가 조금 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12월 재계약 면담에서 저와 같이 휴업수당을 청구한 보조교사는 권고사직을 통보받았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너무 나서지 말라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그러다가 잘린다고요. 저는 단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했을 뿐인데 저에게 돌아온 건 권고사직이었습니다.

코로나로 힘들었을 때 답답한 마음에 상담을 받아보려고 교육청에 전화해보고, 민주노총 보육노조에도 전화를 걸어봤지만, 저희 같은 보조교사는 교육청도, 보육지회 소속도 아니어서 도움을 줄 방법이 없으며 노동청에 알아보라는 답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고용주인 유치원 원장과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나라의 미래이고 희망인 아이들을 돌본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정교사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하는 곳에서 힘든 일도 마다치 않고 열심히 일했지만 비정규직 보조교사에 대한 처우는 너무 열악했습니다. 또 저희 보조교사들이 힘들거나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지켜줄 울타리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립유치원 보조교사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1, 12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돌봄노동, #코로나19, #노동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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