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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퇴근하는 길이었다. 저 앞에 마주 걸어오던 할머니 한 분이 발을 헛디디는가 싶더니 맥없이 넘어지는 게 보였다. 내가 얼른 다가가는 동안, 할머니는 일어서려다 주저앉기를 반복하셨다. 할머니를 붙잡고 일으키려 했지만 좀처럼 일어나지를 못하셨다. 상황이 조금 무안하셨던지 할머니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하셨다.

"나 혼자 병원 가는 길인데 병원 가는 게 이리 힘드네요."

할머니가 가려고 하는 곳은 근처에 있는 대형병원이었다. 그때 시간이 오후 7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잠시 할머니를 쉬시게 한 뒤, 붙잡아 드리니 그제야 간신히 일어나셨다. 내가 병원까지 동행해 드리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아니에요. 나 혼자 갈 수 있어요. 바쁜데 이렇게 도와준 것만 해도 고마워요" 하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할 수 없이 할머니가 잘 가시는지 한참을 뒤에서 지켜보았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우리 엄마 같아서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할머니는 이 시간에 왜 혼자 병원에 가시는 걸까, 같이 갈 사람은 없는 걸까?' 할머니가 염려되는 것과 동시에 내 미래에 대한 불안이 급습했다.
 
할 수 없이 할머니가 잘 가시는지 한참을 뒤에서 지켜보았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우리 엄마 같아서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할 수 없이 할머니가 잘 가시는지 한참을 뒤에서 지켜보았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우리 엄마 같아서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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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내 몸을 돌보면서 알게 된 것

올 한해를 돌아보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내 몸이 무너진 해. 50여 년을 살면서 올해처럼 아팠던 적이 없었다. 설날을 지나자마자 운동기구에 걸려 넘어진 게 시작이었다. 뼈에 실금이 갈 정도로 호되게 넘어져서 계속 욱신대는 통증을 달고 3개월을 지냈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소염제와 진통제를 입에 구겨 넣었는지 모른다.

그 다음에는 이명, 그 다음에는 식도염, 그 다음에는 무릎에 물이 차서, 그 다음에는 허리가 아파서... 이어달리기 하듯 병원을 드나들었고, 약도 끊이지 않았다. 내 몸에 약이 너무 들어가서 약에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내가 하도 아프니까 80살 넘은 엄마는 차마 자신도 아프다는 말을 삼키실 때도 많았다. 걷기 운동을 일주일에 다섯 번은 꾸준히 하는데도, 내 몸에 삼재가 든 것 같았던 올해. 그만큼 미래에 더 나이 들었을 때 펼쳐질 '현실'이 구체적으로 그려졌고, 길에서 넘어진 할머니를 보며 그 현실은 더 생생하게 앞으로 다가왔다.

안전한 노후를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돈이나 보험이다. 병원을 다녀 본 사람은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다 알 것이다. 기본 진료비 외에 검사라도 하나 하려면 5만 원을 훌쩍 넘는다. 올해 수많은 돈을 병원에 뿌리면서, 나이 들어서 수입이 없다면 이 많은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할까 싶었다.

그래서 병원비로 쓸 돈이나 실손보험은 꼭 필요하다. 내 경우에는 지병이 있어서 실손보험을 들 수 없었기 때문에 병원비 지출이 꽤 컸다. 실손을 들 수 없는 상황이었고, 혼자 사는 나로서는(앞으로는 혼자 사는 여부와 상관없겠지만) 간병보험이 필수겠다 싶어 일찌감치 들어두었는데, 그건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싶다.

두 번째로 필요한 건 동행인이다. 엄마가 병원에 가실 때 동행하면서 깨닫게 된 '현실'이다. 물론 영양제 주사를 맞거나 정형외과에 가셔서 물리치료를 받으시는 것 같은 간단한 진료는 엄마 혼자 가신다. 그 외에 의사 선생님에게 설명을 들어야 하거나, 큰 병원에 가야 할 때는 스케줄을 조정해서라도 함께 간다. 개인병원은 상관없지만, 대형병원은 수납이나 접수를 키오스크로 하는 경우도 많고, 담당 의사의 설명을 엄마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때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내 보호자였다가 어느새 보호받는 위치가 된 엄마는 내가 병원을 들락거리는 게 안 되어 보였던지 병원에 간다고 하면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내가 같이 가줄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환자가 환자를 데리고 가요? 아서요. 엄마가 집에 계시는 게 나 도와주는 거예요" 하며 얼른 나와 버린다. 이제 엄마가 내 보호자로 나를 데리고 가는 건 어쩐지 어색해진 탓이다.

사실 나는 그동안 혼자서 씩씩하게 잘 살아왔다. 여행도 혼자 잘 다녔고, 병원도 나 혼자 잘 다닌다. 혼밥도 잘한다. 지금은 혼자 병원 가고, 혼자 잘 해낼 수 있다 해도, '혼자' 잘 해왔던 일을 혼자 할 수 없게 될 때가 나에게도 예외 없이 다가올 것이다.

내 목표는 명랑한 할머니

누구보다 독립적이었던 엄마가 점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걸 보면서 이제 나도 준비를 해야 될 때가 되었음을 알아챘다. 점점 노화하고 있는 나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준비해야 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이나 보험이 있어야 하고, 나이 들어서 함께 돌볼 수 있는 친구도 필요하다. 더불어 사회적 논의와 정책도 분명 필요하다. 찾아보니, 다행히도 서울시가 11월부터 1인 가구를 위해 '1인 가구 안심 동행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한다. 동행 매니저가 병원 이동, 수납, 진료까지 도와주는 서비스다. 1인 가구뿐만 아니라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은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여러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이 나오겠지만, 이런 시도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서비스를 계기로, 1인 가구가 병원에 접근하는 데 어떤 서비스와 정책이 필요한지 좀 더 논의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노인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40프로에 육박하는 지금, 더 급격하게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서 이에 필요한 정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내 목표는 명랑한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건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걸 올해 뼈저리게 체득했다. 몸이 아프니 명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건강하게 나이 들고 싶지만, 나만의 준비와 노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좀 더 걱정 없이 늙고 싶다. 그래서 명랑한 할머니가 되고 싶은 꿈을 잘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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