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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최인진 저 <손기정 남승룡 가슴의 일장기를 지우다>, 데라시마 젠이치 저(김연빈 김솔찬 역) <손기정 평전>의 표지(왼쪽부터)
 손기정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최인진 저 <손기정 남승룡 가슴의 일장기를 지우다>, 데라시마 젠이치 저(김연빈 김솔찬 역) <손기정 평전>의 표지(왼쪽부터)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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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9일 우리나라의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 2의 대회 신기록으로 우승하였다. 남승룡도 3위를 차지했다. 당시 양정고등보통학교 재학생이었던 24세의 손기정은 이듬해 10월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일제는 그에게 앞으로 마라톤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서야 대학 진학을 허가했다.

24세에 불과했던 손기정이 어째서 그 이후 마라톤 경력이 없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손기정의 세계적 활약이 한국인들의 독립정신을 고양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을 우려한 일제의 간교한 정책 탓에 그의 마라톤 인생이 젊은 나이에 끝나버렸음을 알지 못한 탓이다.

마라톤 그만두는 조건으로 대학 진학 허가

1947년 4월 손기정의 마라톤 인생은 재개되었다. 독립이 되었으니 이제 일제의 터무니없는 간섭과 강제는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이미 35세였으므로 선수로 뛸 수는 없었다. 그는 감독으로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했고, 서윤복이 우승을 차지했다.

1950년에도 감독으로 보스턴 마라톤에 나갔고, 우리나라는 1위 함기용, 2위 송길윤, 3위 최윤칠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뒷날 손기정은 자서전에 "1위, 2위, 3위를 석권한 나라가 지금까지 있었을까? 보스턴 하늘에는 태극기만이 가득했다"라고 감회를 적었다.  

2002년 11월 15일 손기정이 타계했다. 2021년 11월 15일은 그가 이승을 떠난 지 19주기 되는 날이다. 하지만 "기일이 되면 손기정 선수를 기리는 묵념이라도 해야지!" 하고 다짐해왔으면서도 필자는 언행불일치를 저지르고 말았다. 깜빡 잊고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그 일을 새삼스럽게 뉘우치면서 손기정 선수와 관련되는 책 세 권을 서재에서 꺼내어 다시 읽어본다. 그의 모교인 양정총동창회가 발간한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아래 '자서전')>, 동아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한 최인진 저자의 <손기정 남승룡 가슴의 일장기를 지우다(아래 '일장기를 지우다')>, 데라시마 젠이치가 쓰고 김연빈·김솔찬이 번역한 <손기정 평전(아래 '평전')>이 그것이다.

일찍이 손기정은 "조국의 땅에서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서전은 첫장을 넘기자마자 자신의 어록 아래를 달리는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모습이 등장한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온다. 

<일장기를 지우다>를 읽으면 동아일보만이 아니라 조선중앙일보도 당시 일장기 말소 의거를 일으켰다는 점과, 조선중앙일보는 손기정 선수만이 아니라 남승룡 선수의 사진에서도 일장기를 없앴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일장기를 지우다>는 일장기 말소 의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어 그 사건을 이해하는 데에 특별히 유효한 책이다.            

<평전>은 손기정 관련 책들 중 최근래에 나온 것이다. 일본 체육학자인 데라시마 젠이치(1945년-현재)가 저술했고, 주일한국대사관 1등서기관 등을 역임한 김연빈 씨 등이 번역했다. 초간본은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에서 우승한 지 84년 되는 2020년 8월 9일에 발간되었다. 

일본인 저자는 "식민 지배 아래서 겪는 한국인들의 참혹한 고통에 관심을 갖고, 손기정 선생이 앞을 향해, 한일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그 경지에 같이 서고 싶은" 마음에서 책을 저술했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 부암동 현진건 고택터 앞 표지석은 일장기 말소 의거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서울 부암동 현진건 고택터 앞 표지석은 일장기 말소 의거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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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 기사에 책들의 내용을 세세히 소개하지는 않으려 한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손기정 선수를 기리는 마음이 있다면, 그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고 있는 책 한 권 전문쯤은 읽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필자가 이 지면에 임의로 내용을 요약해서 싣는 일은 손기정 선수에 대한 예의가 못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손기정에 대한 예의, 현진건에 대한 예의

그리고 한 가지 덧붙여 소개하려 한다. 김윤식과 김현이 공저한 <한국문학사>는 현진건을 "한국 단편소설의 아버지"로 규정했다. 현진건은 그렇개 문학사적으로도 걸출한 소설가이지만, 많은 문인들이 친일 행위로 돌아선 1940년대에도 끝까지 일제에 맞선 "참 작가(현길언, <문학과 사랑과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서울 부암동 고택터 앞 표지석의 현진건 소개문에는 작가가 일장기 말소 의거를 일으킨 독립유공자라는 사실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 대구 두류공원 '현진건 문학비' 또한 마찬가지이다.

친일문인들을 기려 세워진 문학관도 한둘이 아닌데, 독립유공자이자 한국문학사의 큰 작가 현진건은 문학관은 물론이고 생가도 고택도 없고, 심지어 묘도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손기정 선수의 기일에 묵념 한번 하지 않고 지나친 데 대한 스스로의 미안함과, 우리 사회의 몰역사성에 대한 한탄을 달래면서 '평전'을 다시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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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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