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1위 결정전을 치른 이후 2주간 전력을 재정비한 KT 위즈는 홈 경기로 치러진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1, 2차전을 손쉽게 잡아냈다. 특히 마운드가 최대한 힘을 비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경기였다.
1차전 선발로 출격한 윌리엄 쿠에바스는 7⅔이닝이나 소화하면서 1위 결정전에 버금가는 호투를 펼쳤고, 이튿날 선발 마운드에 오른 '2년차' 소형준 역시 6이닝을 책임지면서 QS(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하는 모습이었다.
이틀간 등판 기록이 있는 구원 투수는 두 경기 모두 출석 도장을 찍은 조현우와 김재윤, 2차전에 1⅔이닝을 던진 고영표 단 세 명뿐이다. 이미 휴식을 취하고도 타선과 선발 덕분에 더 힘을 비축한 투수들은 남은 시리즈서 더 힘을 쏟아부을 수 있게 됐다.
▲ 정규시즌에는 주로 선발 보직을 소화하다가 이번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불펜 쪽에 힘을 보태고 있는 투수들. (왼쪽부터) 고영표와 엄상백 ⓒ KT 위즈
다 쓰지도 않은 KT의 필승 카드
이번 시리즈에서 KT 마운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선발 로테이션을 돌 수 있는 고영표와 엄상백을 구원 투수로 기용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이강철 감독은 단기전의 특성상 4선발만 확실해도 마운드 운영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
또한 이들은 선발 투수가 일찍 무너지는 경기가 발생하면 바로 구원 등판해 긴 이닝을 끌어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빠른 투수교체 타이밍이 생명인 단기전에서 어쩌면 선발 투수 만큼이나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이들이 마운드에 오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갑작스러운 변수가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자를 내보내도 대부분 마운드에 올라와 있는 투수가 해결하면서 추가적인 투수교체를 가져가지 않아도 됐다.
고영표는 2차전 1⅔이닝 2피안타 무사사구 1탈삼진 1실점으로 데뷔 첫 한국시리즈 등판을 마쳤고, 지난 11일 한화 이글스 2군 팀과의 연습경기서 1이닝을 던지며 워밍업을 마친 엄상백은 여전히 출격 명령을 기다리는 중이다.
게다가 불펜의 또 다른 필승카드인 주권, 박시영, 이대은도 두 경기 동안 등판하지 않았고 좌완 심재민 역시 마찬가지다. 충분히 쉬고 나온 KT로선 언제든지 총력전이 가능했는데, 굳이 많은 카드를 활용하지 않아도 두 경기를 다 잡기에 무리가 없었다.
▲ 조현우와 더불어 1, 2차전 모두 등판해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주었던 마무리 김재윤 ⓒ KT 위즈
89.5% 확률 잡았지만 방심 금물...흐름 유지해야 하는 KT
심지어 두 경기 다 나왔던 조현우와 김재윤의 경우 크게 무리하지 않고 투구를 마쳤고, 또 하루 휴식일을 가졌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3차전에서도 등판이 가능해 보인다. 1차전에서 이영하, 2차전에서 홍건희를 내고도 힘을 쓰지 못한 두산의 불펜과는 대조적이다.
2승을 선점한 KT의 한국시리즈 우승 확률은 무려 89.5%로, 시리즈의 흐름을 바꿀 만한 경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에 시리즈 3연승에 도전하는 3차전에서 데스파이네가 선발 투수로 나선다.
지난해 200이닝 이상 소화한 데스파이네는 올 시즌에도 188⅔이닝을 던지면서 이닝이터 노릇을 톡톡히 했다. 8월 들어 잠시 흔들리기도 했으나 10월 이후 5경기에서는 모두 5이닝 이상을 투구했고, 그 중 2경기에서는 7이닝 이상 홀로 도맡았다.
다만 확률상 유리한 고지를 밟았다고 해서 방심은 금물이다. 두산 타선을 깨우면 KT도 쉽지 않은 승부가 될 수 있다. 또한 3차전 선발 데스파이네는 올 시즌 두산전 3경기 18⅓이닝 1승 1패 ERA 5.40으로, 지난해(4경기 23이닝 1패 ERA 7.04)에 이어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KT가 3차전 이후에도 남은 시리즈를 수월하게 치를지, 아니면 이전 두 경기보다 조금 어려운 상황을 맞을지 데스파이네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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