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는 지난 2007년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외국인 원투펀치 다니엘 리오스와 맷 랜들을 앞세워 적지에서 천금 같은 연승을 따냈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먼저 2승을 거둔 팀이 우승을 놓친 경우는 한 번도 없었기에 두산도 통산 4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매우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두산은 3차전부터 거짓말처럼 4연패를 당하면서 역대 최초로 '2연승 후 역스윕'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두산은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대구에서 먼저 2승을 챙기며 우승 가능성을 높였다. 특히 2차전에서는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던 삼성의 '철벽 마무리' 오승환을 무너트리며 더욱 사기가 오른 상태였다. 두산은 4차전까지 3승1패로 앞서며 삼성을 벼랑 끝으로 몰아 붙였지만 5,6,7차전을 내리 내주면서 2001년 우승 이후 준우승만 4번(2005,2007,2008,2013년)을 기록하는 '만년 2인자'가 됐다.

그리고 다시 8년의 시간이 지난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은 KT에게 2연패를 당하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두산은 2007년의 SK와 2013년의 삼성처럼 KBO리그 역사상 단 두 번 밖에 없었던 2연패 뒤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려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하지만 두산에게는 아직 최후의 카드가 한 장 남아있다.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225탈삼진을 기록하며 역대 한 시즌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운 외국인 에이스 아리엘 미란다가 그 주인공이다.

역대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14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t wiz의 경기에 앞서 열린 개회식에서 두산 투수 아리엘 미란다가 선수들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미란다는 어깨 부상으로 포스트시즌 경기에 결장하다 한국시리즈 명단에 포함됐다.

14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t wiz의 경기에 앞서 열린 개회식에서 두산 투수 아리엘 미란다가 선수들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미란다는 어깨 부상으로 포스트시즌 경기에 결장하다 한국시리즈 명단에 포함됐다. ⓒ 연합뉴스

 
미란다는 지난 10월 24일 LG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삼진 4개를 잡으며 고 최동원의 기록(223개)을 넘어 KBO리그 역대 최고의 'K머신'으로 등극했다. 이날 4.2이닝 동안 삼진 4개를 잡았지만 볼넷을 7개나 허용한 미란다는 5이닝을 넘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 왔다. 그리고 마지막 순위 싸움을 하는 두산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미란다가 어깨통증을 호소하며 다음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것이다.

두산은 정규리그 4위로 간신히 7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했지만 미란다는 정규리그가 끝날 때까지 투구를 재개하지 못했고 결국 포스트시즌이 시작된 후에도 마운드에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두산은 미란다가 없는 가을야구 7경기에서 5승2패를 기록하며 키움 히어로즈와 LG, 삼성을 차례로 탈락시키고 전인미답의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두산은 최원준과 곽빈, 김민규로 이어지는 토종 투수들로 선발 로테이션을 꾸렸지만 곽빈이 허리통증으로 플레이오프에 등판하지 못했고 김민규 역시 3경기에서 7.2이닝에 그치는 등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플레이오프까지 두산이 치른 7경기 중 5경기에 등판해 11이닝을 던진 이영하와 4경기에서 7.2이닝을 던진 강속구 투수 홍건희가 불펜에서 원투펀치를 구성하며 맹활약했다. 여기에 베테랑 좌완 이현승이 가을야구 7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는 투혼을 발휘하며 마운드를 든든하게 지켰다. 물론 이 투수들을 적재적소에 투입한 김태형 감독의 투수교체 타이밍도 신출귀몰했다.

에이스 미란다가 없었던 두산을 한국시리즈로 이끈 진짜 힘은 역시 타격이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346의 팀 타율을 기록한 두산은 준플레이오프 .306에 이어 플레이오프에서는 2경기에서 무려 .380의 팀 타율을 기록하며 삼성 마운드를 무너트렸다. 특히 외국인 선수 호세 페르난데스는 7경기에서 타율 .469(32타수15안타) 1홈런12타점을 기록하는 신들린 타격감을 뽐냈다.

미란다는 시리즈 흐름 바꿀 반전카드 될까

물론 정규리그 성적이나 상대전적에서는 KT가 앞섰지만 플레이오프까지 파죽지세로 통과한 두산의 기세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두산이 한국시리즈에서 이변을 일으킬 거라 전망한 야구팬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두산은 플레이오프까지 열흘 동안 7경기의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강행군을 펼쳤지만 플레이오프 이후 3일의 휴식일을 가졌다. 반면에 KT는 정규리그 우승 후 충분한 휴식을 취했지만 그만큼 실전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정작 한국시리즈가 시작되자 KT의 저력은 두산의 상승세를 압도했다. KT는 1차전 윌리엄 쿠에바스(7이닝1실점)와 2차전 소형준(6이닝 무실점)의 호투 속에 배정대, 황재균이 1,2차전에서 각각 결승 홈런을 터트리며 시리즈의 주도권을 잡았다. 여기에 KT의 간판타자 강백호는 2차전까지 8연타석 출루를 기록하며 정규리그 무관의 한을 풀었고 불혹을 바라보는 베테랑 2루수 박경수의 수비도 대단히 눈부셨다.

반면에 두산은 믿었던 김재호와 허경민의 실책이 실점으로 연결되면서 허무하게 1차전을 내줬다. 두산은 2차전에서도 토종 에이스 최원준이 5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며 완패를 당했다. 타선에서는 페르난데스가 연일 맹타를 휘둘렀지만 박건우의 부진이 이어졌고 양석환은 2경기에서 무려 6개의 삼진을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두산이 자랑하는 '가을사나이' 정수빈은 1차전에서 손목을 다치면서 2차전에서 결장했다.

두산으로서는 3차전 선발로 등판하는 미란다의 호투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정규리그처럼 많은 이닝을 소화하긴 힘들겠지만 미란다가 마운드에 있는 동안이라도 상대 타자들을 압도하는 장면을 보여줘야 두산에게도 시리즈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만약 미란다가 부상의 여파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기 강판되거나 부진한 투구 내용을 선보인다면 올해 한국시리즈는 조기에 마감될 확률이 매우 커진다.

두산은 지난 2016년과 2019년 한국시리즈에서 4연승으로 시리즈를 끝내고 가볍게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반면에 2000년대 이후 8번의 준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4전 전패로 시리즈를 내준 경우는 2005년 딱 한 번 뿐이었다. 두산이 막내 구단 KT를 상대로 역대 두 번째 한국시리즈 스윕패를 당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두산의 정규리그를 이끌었던 에이스 미란다의 어깨가 더욱 무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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