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우리는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제 고향은 황해도 재령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어... 그리고 태어난 것은 1927년 4월 27일생입니다."
 
검은 화면이 서서히 떠오르면서 익숙한 목소리가 깔린다. 호구조사라고 흔히들 말하는, 그에 관한 익히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런데 많이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본인의 육성으로 들려주는 간단한 신상정보는 왠지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저 간략한 두 줄에 담긴 내용이 워낙 묵직해서일 테다.
 
'황해도 재령',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 땅 지명이다. 즉 그는 실향민이다. 한국전쟁 후반에 가족을 두고 월남 후 현재까지 두고 온 가족과 상봉하지 못했다. 그 자신이 고령이기에 어머니가 생존해 계신다는 건 진즉 포기했고, 여동생 또한 생사여부를 알지 못하는 상태다(그래서 그의 앞에서 '여동생'을 언급하는 건 금기사항에 속한다) 그의 이름에 이젠 자동완성 수준으로 따라붙는 '전국노래자랑'의 고향 편을 죽기 전에 진행하는 게 본인의 마지막 소망 중 하나라 할 정도이니 이제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실향민들의 망향 심정을 대변하는 상징 중 하나인 셈이다.
 
'1927년 4월 27일생', 우리 나이로 현재 95세. 이것은 그야말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위력의 수치화다. 최장수 방송 진행자, 한국 연예계 최고령 현역 같은 수식어로는 미처 다 포괄하기 불가능할 만큼 그 세월은 압도적이다. 아니, 그의 삶 자체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표본으로 추출해낸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 대해 잘 안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딩동댕~ 전국! 노래자랑!'의 인상으로만 그를 상징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작 그 장구한 한 인간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송해 1927"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송해 1927"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송해 1927>은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한다. 물론 이 영화는 우리가 익히 아는 '국민 MC' 송해의 위상과 인기에서 출발하지만 대중의 선입견, 그리고 예상치 기대와는 꽤 다른 지점을 깊숙이 파 들어간다. 관객은 영화를 관람하면서 그에 대해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 건너 듣기는 했지만 잘 알지는 못했던 일화들, 그리고 화려한 조명 아래 가려진 이면들을 하나 둘 발견해낼 것이다. 그리고 돌고 돌아 그 발견들의 총합이 형상화되면 다시금 우리 시대의 거인이자 한국현대사의 살아있는 화석을 재발견하게 될 테다. 그 경이로운 여정을 출발해보자.
 
2_등잔 밑 어둠에서 그를 끄집어내다
 
윤재호 감독은 꾸준히 탈북자와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제에 천착한 작업들을 이어왔다. 상대적으로 무명에 가까운 윤재호 감독이 누구나 탐냈을 법한 그를 주인공으로 전기 다큐멘터리를 작업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겠다. 
 
과연 감독은 당대 한국을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은 영화화 작업을 어떤 식으로 수행했을까? 절로 호기심이 발생할 일이다. 우리가 겉으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국민MC' 송해 선생님의 이면과 개인사를 담은 윤재호 감독의 작업 결과를 마침내 보게 되었다.
 
누구나 예상할 법한 전국노래자랑의 풍경 대신 몇 세대를 넘어온 한 희극인의 애환과 가정사가 영화에는 빼곡히 담겨 있었다. 타인을 웃게 하고 즐겁게 해주지만 자신의 슬픔은 내놓고 위로받기 힘든 희극인의 내면이 장편영화로서는 그렇게 길지 않은 러닝타임 안에 선택과 집중 과정을 거쳐 압착되어 있었다.
 
그 압축 과정에는 많은 고심과 판단이 들어갔을 테다. 그의 방대한 공적 인생은 충실한 요약만으로도 넉넉히 몇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감독은 주인공의 일상을 촬영하고 인터뷰를 거듭하면서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방향을 찾아낸 뒤 우직하게 밀고 나가기 시작한다.
 
2_1. 전국노래자랑으로 가는 길
 
본격적으로 화면이 환해졌다.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국민적 인기곡이 된 '내 나이가 어때서'가 흥겹게 흘러나오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그가 보인다. 하지만 그는 등을 돌린 채다. 모두가 그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아마도 전국노래자랑 행사장 풍경인 것처럼 보이는 그 인파 속에서 그는 성심성의껏 그를 연호하며 열광하는 대중들의 요청에 응하는 중이다.
 
하지만 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 크지 않은 체구가 유독 더 왜소하게 느껴진다. 진행 측이 그를 대기실로 인도한다. 인파에서 떨어진 후에도 스태프와 관계자들은 그를 알아보는 족족 일어서서 인사한다. 일일이 답례를 하거나 손을 잡으며 천천히 안쪽까지 진입하는 여정이 겨우 끝난다.
 
아마 이 순간은 코로나19로 전국노래자랑이 중단되기 전까진 매주 그가 겪었을 상황일 테다. 그런데 끝까지 카메라는 이 익숙한 풍경에서 그의 뒷모습만을 비춘다. 아마 감독이 관객에게 선포하는 무언의 사자후일 것이다. 그리 튀진 않지만 심상찮은 출발이다.
 
다시 소리와 자막들로 내용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현재 그를 대표하는 상징, 1988년부터 진행해오는 전국노래자랑에 관한 내용이 스크린을 채우는 가운데 카메라는 서서히 관객이 거의 처음 목격할 시공간, 그가 자택에서 눈을 비비며 기상한 후 자리를 정리하고 세면을 하는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듯 체험하게 된다. 전국노래자랑의 빛나는 순간,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활기찬 모습과는 너무나 상반된 모습이다. 한편으로 카메라는 그의 집 안에 전시된 수많은 상패와 표창들을 훑고 지나간다. 그의 긴 생에 걸맞게 진열장을 가득 채운 그 전시물들은 하지만 쓸쓸하고 공허하기까지 하다.
 
곧 이어 그의 육성으로 자신의 생애 전반부를 회고하기 시작한다. 월남 이전 청소년 시절의 구술담은 자료화면과 함께 소개되고 한국전쟁 이후 1955년부터 시작된 66년차 연예계 활동에 대한 기억이 술술 흘러나온다. 기성세대에겐 몇 년마다 한 번씩 토크쇼 등에서 소개된 내용이겠으나 요즘 세대에겐 새롭게 들릴 법하다.
 
"송해 1927"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송해 1927"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뒤를 이어 다채로운 지인들의 증언이 그를 대표하는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인상적인 찰나들과 교차-병행하며 속속 등장한다. 전국노래자랑 연출가, 음악단장, 피디들의 이야기는 물론, 후배 코미디언과 연예인들, 문화연구자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이들이 그와 얽힌 일화 소개는 물론 그가 얼마나 독자적인 위상을 가진 존재인지를 논증하는 데 기꺼이 투입되는 장관을 볼 수 있다. 그 배경 격으로 삽입된 전국노래자랑 장면들은 그의 소탈한 풍모와 능수능란하게 물 흐르듯 대처하는 진행솜씨,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는 탁월한 예능감과 열린 자세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좀 익숙한 장면들에 관객이 방심할 쯤, 다시 감독은 반전을 선보인다. 전국노래자랑 이전, 연예인 송해가 주로 활약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의 진귀한 자료화면과 가수로서 녹음했던 음악앨범을 눈요기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이제는 거의 그 홀로 남고 떠나보낸, 1960-70년대 동료 콤비들과의 세월이 먼지를 털고 되돌아오는 격이다.
 
하지만 영화의 의도는 그 클래식한 향수를 '응답하라!' 시리즈의 감성으로 되살리려는 것과는 좀 많이 틀리다. 아마 거의 대부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코미디언 시절의 숨은 비화가 그의 증언으로 툭 튀어나온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왜 그의 생이 한국현대사 그 자체라고 형언되는지 제대로 실감하게 된다. 한국현대사는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했던 시간임을 이 뜻밖의 에피소드는 어김없이 증명한다.
 
2_2. 가정사의 비극과 아버지의 초상
 
그는 물론 큰 봉변을 당하거나 당시 수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처럼 활동 중단 같은 고초를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드러내기 힘들었을 그런 경험은 그의 내면에 적지 않은 내상을 남겼을 것이다. 이는 그에게 닥친 가정사와 연동된다고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시 카메라는 평소에 지하철을 즐겨 타고 많이 걷는다는 그의 일상을 비춘다. 그리고 그가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한다. 그가 향한 곳은 막내딸의 집. 그가 홀로 사는 자택과 딸의 집은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 위치한다. 역시 대중에겐 희귀하게 다가오는 전격 공개 현장이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의 가정사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해야 할 부분들이므로 세부적인 언급은 생략하겠지만, 대중을 즐겁게 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온 예능인이 지난한 인생 내내 겪어온 몇 차례의 큰 굴곡이 영화의 중‧후반부를 점유한다. 이 또한 그와 함께 나이를 먹어온 세대에겐 일정 부분 알려져 있었지만 현 세대에겐 낯선 지점들일 테다. 하지만 감독이 가려진 그의 가정사를 소환한 것은 최루성 신파를 위한 장치보다는 그의 진면목을 조명하기 위한 4번 타자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다.
 
첫 번째로 그의 가정사 중에서도 가장 큰 비감을 주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그가 활동을 본격 재개하면서 '전국노래자랑'의 신화가 시작된다는 점을 감독은 특별히 조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 영화를 본다면 그런 비극 이후에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 더 원숙해진 그의 예능이 조금이라도 다르게 전해져올 건 틀림없어 보인다.
 
두 번째는 제작진이 찾아낸 우연한 기회가 그에게 전달되는 과정이다. 그는 온 국민을 웃기고 즐겁게 했지만 예능인은 그저 '딴따라' 취급받던 시대에 과연 그가 대중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전부였을까 따져봐야 한다. 그런 체험들은 자신의 생업을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자연스레 물려주기를 꺼려하는 후유증을 불러왔을 테고, 그런 심리는 그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또 다른 멍에로 남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종반은 한국현대사를 관통해온 순수한 가족주의, 그 중에서도 아버지란 존재의 순정체로서 그를 하나의 표상으로 빚어낸다. 그 장엄한 승격 과정의 마무리는 검은 화면을 가로지르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 종결된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
 
3_우리 시대의 '아버지', 그리고 영원한 '딴따라'의 초상
 
"송해 1927"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송해 1927"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송해 1927>의 전반부는 그의 60여 년 간의 공적활동과 B컷을 골고루 조명한다. 그리고 중반에서 후반부는 사별한 가족들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 그리고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영웅적 가부장의 껍데기를 벗겨낸) 아버지의 순수한 결정체 같은 형상으로 귀결된다.

우리가 알던 그의 얼굴은 그럼 어디서 찾을까? 이 영화에는 속칭 '쿠키' 영상이 하나 숨어 있다. 독립예술영화 전용극장에서는 당연한 에티켓이지만 멀티플렉스에서는 생소한 풍경에 가까울, 엔딩 크레디트를 전부 봐주면서 참고 기다려야 발견할 수 있는 경이로운 순간이 아직 남아 있다. 그 최후의 찰나에 우리가 알고 있던 송해의 얼굴이 '하이퍼' 버전으로 구현된다. 제목 그대로 백세를 바라보는 한국현대사를 통 채로 압축한 듯 그 얼굴이다. 하지만 영화를 온전히 관람한 이들에게는 그 익숙하던 얼굴은 과거의 그 모습과는 조금 달리 보일 테다.
 
4_첨언: 한국독립영화 '최종병기' <송해 1927>
 
이 첨언은 영화 외적인 측면에 가깝다. 하지만 <송해 1927>은 2021년 현재 한국독립영화가 선보일 수 있는 최종병기 급이라 감히 언급하고자 한다.
 
그런 와중에 독립영화가 20-30세대 일부의 '힙스터' 문화 전유물처럼 인식되는 지점도 일부나마 존재하는 상황, 그리고 창작자들이 동 세대와 교감하는데 집중하면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작품 경향이 부족해지는 측면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세대를 아울러 함께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작업이 독립영화의 저변을 확장하는데 절실한 과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 독립영화 개봉 실적 중 역대 1위 작품이 노부부의 황혼을 다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480만 명), 2위가 시골 농부와 소의 이별이야기 <워낭소리>(2008, 290만 명)이라는 점이 잊혀져가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종종 생기는 요즘엔 특히 더 그렇다.
 
작품 자체에 관한 평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와 별개로 본 작품의 개봉과정과 결과는 향후 한국독립영화 개봉절차에 중요한 데이터로 남을 것이다. 이제 <송해 1927>이 시작할 여정을 지켜볼 심산이다.
 
<작품정보>
 
송해 1927 Song Hae 1927
2020|한국|다큐멘터리/가족
2021.11.18. 개봉|82분|12세 관람가
감독 윤재호
각본 남희령
제작 이기남
출연 송해
기획 김훈태, 정윤재, 남희령
촬영 김종선, 김힘찬
음악 김인영, 박승주, 최유진, 김진희
제작 (주)이로츠, 빈스로드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송해 1927 전국노래자랑 윤재호 감독 (주)이로츠 빈스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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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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