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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칠천량해전에서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당한 원균장군은 송탄근교에 묘역이 위치한다.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다.
▲ 원균묘역의 전경 임진왜란 당시 칠천량해전에서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당한 원균장군은 송탄근교에 묘역이 위치한다.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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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의 북부를 차지하는 송탄은 면적을 따져봐도 넓은 편이 아니지만 우리가 이름은 들어봤을 만한 인물들의 흔적이 심상치 않게 남아있다. 그중 먼저 가볼 곳은 꾸준히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원균 장군의 묘다.

대한민국에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랑받는 위인이지만 그와 대비되어 칠천량 해전에서 큰 패배를 했던 원균은 한동안 역사의 죄인으로 남아 있었다. 송탄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향하는 길은 도심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너른 들판이 싱그럽게 펼쳐져 있다. 산과 강이 듬성듬성 보이는 김포, 여주, 이천의 평야와 다르게 여유 있고 느긋한 모습이 마치 충청도 내포평야 한복판에 와 있는 것만 같다.    

현재 송탄의 동쪽은 브레인시티 개발로 인해 다소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 그 초입부터 원균 장군의 묘를 알리는 입간판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우리에겐 패장으로 알려진 원균이 이 지역에서는 적어도 동네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듯했다. 멀리 입구에서부터 저수지와 사당 그리고 위엄을 갖추고 있는 원균의 묘가 보이기 시작한다.

원균을 비롯한 원주 원씨 가문의 선산인 덕암산은 평택 남부에 있던 고을인 영신현의 진산이다. 예로부터 '원씨 천년, 석씨 천년, 소씨 천년'이란 말이 있는 만큼 전통 있는 마을 들과 명문 거족들이 많이 살았다. 원주 원씨가 오랫동안 터를 잡은 도일동 계곡에서 1540년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던 원준량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안 자체가 잔뼈가 굵은 무인 집안이었으므로 자연스레 원균도 무과에 응시하여 그의 무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원균은 아버지 원준량의 입김 덕분에 무과에서 부정으로 급제했다는 의혹과 여진족 토벌에 활약했다는 설이 있지만 둘 다 확실치 않다. 허나 전공이 아예 없진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승진 속도도 빨랐다.

원균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    
  
원릉군 기념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선무공신교서를 비롯해 왕이 그의 죽음을 기려 제사를 지내게 하는 치제문도 전시되어 있다.
▲ 원릉군 기념관에 전시된 선무공신 치제문 원릉군 기념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선무공신교서를 비롯해 왕이 그의 죽음을 기려 제사를 지내게 하는 치제문도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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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은 과거에 급제한 지 12년 만에 경상 우수사에 오르면서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된다. 중간에 인사고과점수가 낮아 탄핵하여 파직되었던 수모를 겪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개월 전 조선 최대의 수군기지인 경상 우수영을 담당하는 경상 우수 절도사에 임명된다.

원균의 임진왜란 초기 행적은 여러 가지 논란이 많았지만, 전라좌수사인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며 이순신, 이억기와 함께 옥포해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의 최초 승전이었으며 가장 중요했던 제해권 장악의 시작이었다. 이대로 이순신, 원균이 손을 잡아 함께 힘을 모았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둘 사이의 반목은 점차 심해지게 된다.      

정유재란이 발발하고 이순신이 파직된 후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다. 그는 이순신에 이어 부산포로 출진하려는 조정의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었다. 그는 한산도에서 160척을 끌고 출격했지만 가덕도에서 적의 기습을 받아 병사 400명을 잃었다. 원균은 함대를 철수하여 칠천량(거제도 부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도도 다카도라, 와키자카 야스하루 등 왜군의 수군이 기습하여 조선 수군 대부분을 잃는 큰 패배를 당했고, 그 자신도 목숨을 건사하지 못했다.

한동안 조선 수군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로 이어가게 되면서 이순신은 백의종군하며 명량해전을 맞게 된다. 이처럼 그는 큰 전투를 패배하게 만든 패장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하지만 임란이 끝난 후 원균은 이순신, 권율과 함께 선무 1등 공신으로 책록 되고 원릉군에 봉해졌다.
 
원균장군은 임진왜란 후 선조에 의해 권율, 이순신 장군과 함께 선무1등공신에 책록되고 원릉군에 봉해진다. 원릉군 기념관에는 원균장군의 기록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 원균, 원릉군 기념관 원균장군은 임진왜란 후 선조에 의해 권율, 이순신 장군과 함께 선무1등공신에 책록되고 원릉군에 봉해진다. 원릉군 기념관에는 원균장군의 기록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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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재 원균의 묘 주변으로 생가터, 사당, 묘 등 원균 장군과 관련되어 있는 원균 길이라는 트레킹 코스도 조성되어 있고, 평택시와 원주 원씨 종친회에서 이 일대를 잘 가꾼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저수지 너머 보이는 원균 장군 묘소는 실제 유해가 아니라 장군이 아끼던 애마가 그의 신발과 담뱃대를 물고 온 것을 묻었다고 한다. 그리고 묘 아래에 그 애마의 무덤도 조그맣게 조성되어 있다. 원균 장군의 묘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니 경치가 정말 훌륭했다. 확실히 원균 장군은 후손들을 잘 두었기에 그의 유품이나마 좋은 터에 묻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덤가를 내려오면 보물로 지정된 원균 장군의 선무공신교서와 임진왜란 당시 쓰였던 무기와 장군의 연보를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원릉군 기념관이 있다. 전시는 비교적 충실했으나 원균 장군에 대한 변명 위주로 내용이 전개되는 듯해 조금 괴리감이 느껴졌다.

조선왕조의 기틀을 닦은 정도전의 사당 
 
정도전은 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오랫동안 언급되지 않았지만 고종에 의해 복권된다. 현재 정도전 사당은 평택에 위치한다.
▲ 정도전 사당 문헌사의 전경 정도전은 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오랫동안 언급되지 않았지만 고종에 의해 복권된다. 현재 정도전 사당은 평택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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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시대와 임진왜란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 충분했던 장소다. 다음으로 가 볼 장소는 조선왕조의 기틀을 닦은 삼봉 정도전의 사당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극 소재로 빈번해 쓰이는 소재가 여말선초 시기인데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삼봉 선생은 국가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결국 조선이라는 국가를 건국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조선의 제도는 물론 한양의 도시 설계에도 큰 관여를 했다. 경복궁을 비롯해 근정전, 사정전, 교태전 등 주요 전각의 이름은 물론이고 숭례문, 흥인지문 한양의 주요 명칭은 전부 삼봉 선생이 붙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삼봉 정도전은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마자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500년 동안 폄훼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조선말, 고종 2년(1865)에 와서야 그가 세웠던 경복궁을 다시 중건하면서 그의 훈작을 회복시키며 문헌이라는 시호를 내리면서 모든 오명이 벗겨졌다.

정도전의 사당인 문헌사는 그의 아들 정진의 사당인 희절사와 한 구역에 위치한다. 현재 문은 굳게 잠겨있어서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 옆에 자리한 삼봉 기념관은 그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정조에 의해 삼봉의 주요 사상과 저서를 모아 만든 삼봉집 목판은 현재 정도전 사당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 삼봉집 목판 정조에 의해 삼봉의 주요 사상과 저서를 모아 만든 삼봉집 목판은 현재 정도전 사당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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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는 1791년 삼봉 선생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 정조의 명으로 정도전의 저술을 집약한 삼봉집 목판을 실물로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목판은 총 228판으로 구성되어 있고,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불씨잡변>, <조선경국전>의 내용이 전부 담겨 있다고 하니 그것 하나만으로 이곳에 온 이유가 충분했다. 송탄 지역의 다사다난했던 인물의 흔적을 따라가 보니 앞으로 갈 평택의 이야기가 무척 풍성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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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 경기별곡2편>, 경기별곡 3편 저자. kbs, mbc, ebs 등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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