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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후위기에 대한 태도는 안이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2016년 영국 기후변화 전문 언론 <클라이밋홈(Climate Home)>은 한국을 "세계 4대 기후악당"으로 지목한 바 있다. 웹진 <셰어러블(Shareable)> 대표 고렌플로 역시 "모든 비용을 치러서라도 성장을 하려는 한국의 의지"(South Korea's growth-at-all-costs commitment)를 비판한 바 있다.

정부는 2021년 10월 18일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여전히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2030년 중간 목표치인 2010년 대비 45% 감축에 못 미친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대응에는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성장주의가 있다. 성장주의란 경제성장이 바람직하고 필수적이며 주요 사회문제의 해결책이라는 믿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경제성장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경제는 계속 성장해야만 한다.

이는 자연에 있는 것 중에 끝없이 성장하는 것은 암처럼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이 이데올로기는 부의 끝없는 축적에 의해 굴러가는 산업 자본주의와 결부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성장주의는 다른 선진국들보다 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성장'은 여전히 노동, 균형발전, 민주주의, 생태주의 등 대안적 가치 위에 압도적으로 군림하고 있다
 "성장"은 여전히 노동, 균형발전, 민주주의, 생태주의 등 대안적 가치 위에 압도적으로 군림하고 있다
ⓒ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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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과 성장주의의 탄생

성장주의가 지배적인 이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성장'이 측정될 수 있어야 한다. 성장을 측정할 수 없다면 성장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경제성장의 측정은 20세기 전반 국민경제와 국민소득의 개념이 탄생하고 이를 측정하는 국민소득회계의 방법론이 고안됨으로써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국민총생산(GNP)과 국내총생산(GDP) 개념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를 경제에 대한 보편타당한 평가지표라 볼 수 없다. 가사노동, 비시장소득, 환경비용 등을 고려하지 않고 삶의 질을 화폐적 가치로 축소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차 세계대전 이후 UN과 OECD 등 국제기구는 국가 간 경제 비교를 위해 국민소득회계의 국제적 표준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1950년대 이후의 세계에서 GNP와 GDP는 국가 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핵심지표가 되었다. 한편 소련의 팽창에 맞서 미국은 제3세계의 발전을 약속했는데, 그 핵심은 경제성장이었다. 경제성장의 높은 단계로 올라서는 것이 국가를 발전시키고 선진국이 되는 길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성장주의는 여러 나라에 퍼져나갔다. 

한국에서 성장주의의 형성과 발전

한국의 성장주의도 미국의 제3세계 발전정책의 틀 안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의 전후 복구가 마무리 되면서 한편으로 국가주도 개발과 민간주도 개발론이, 다른 한편으로 남미의 균형 성장론과 구미의 불균형 성장론이 대립했다. 그런데 통계조사를 근거로 수치화된 경제성장 목표(연 평균 5.2%)를 최초로 제시했던 이승만 정부 말기의 <경제개발3개년계획(1960)>은 국가 주도 불균형 성장의 전략을 채택했다.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인해 국민전반의 생활수준 개선보다 공업과 수출산업에 자원을 집중해 생산력을 증대해야 한다는 입장이 힘을 얻었던 것이다. 이 계획은 이후 장면 정부와 박정희 정부의 경제계획에 토대가 됨으로써 국가주도와 불균형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적 성장주의의 기원이 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초기에 균형 성장과 수입대체공업화로 잠시 일탈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곧바로 경로를 바꿔 불균형 성장과 수출주도 산업화 전략을 추진했다. 하지만 미국이 제시한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진 않았다. 미국은 민간주도로 적정 수준의 성장을 원했지만 박정희 정부는 국가주도 고도성장을 추구했다. 취약한 정권의 정통성을 보완하고 북한과의 체제경쟁에 승리하기 위해서였다.

수출도 기대 밖의 성과를 올리자 자연히 경제성장의 기대치도 높아졌다. 박정희 정부는 이를 위해 국가를 "수출총력체제"로 재편했다. 수출로 높은 성장이 가능해지자 박정희 정부는 미국이 반대했던 대기업 중심 성장과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했다. 대기업이 수출과 산업화의 중심이 되고, 중화학공업화도 궁극적으로 수출을 지향하면서 국가주도, 수출주도, 불균형 성장이라는 경로가 확립됐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 정부는 수출과 국민소득이라는 성장지표에 산업화와 국민생활의 개선을 연동시켰다. 중화학공업화는 수출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되었다. 국민소득의 성장은 물질적 풍요를 약속했고 이는 점차 실현되었다. 정부의 경제동향보고가 신문에 보도되면서 국민도 'GNP', '국민소득', '저축률' 같은 경제용어에 익숙해졌다. 
 
1956년 부흥부 경제회의 모습. 당시 이승만 정부의 부흥부 산하 산업개발위원회가 작성한 <경제개발3개년계획>은 ‘국가주도’와 ‘불균형’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적 성장주의의 기원이 되었다.
 1956년 부흥부 경제회의 모습. 당시 이승만 정부의 부흥부 산하 산업개발위원회가 작성한 <경제개발3개년계획>은 ‘국가주도’와 ‘불균형’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적 성장주의의 기원이 되었다.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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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주의의 내면화

국가주도 수출기반 불균형 성장의 경험은 현대 한국에서 성장주의의 내면화와 극단화를 초래했다. 

첫째, 식민지경험과 전쟁, 그리고 북한과의 체제 경쟁 속에서 국민경제의 성장이 생존과 후진국 탈피에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 되었다. 이를 위한 국가주도 성장의 경험은 경제부처를 성장기계로 만들었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경제성장에서 가장 큰 가치를 두고 교육, 환경, 노동 등에 대한 예산 배분을 통제한다. 그럼으로써 성장주의를 제일의 노선으로 확립하고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수출주도 불균형 성장은 한국경제에서 대기업과 중화학공업의 비중과 권력을 크게 높였고 이들을 성장에 대한 강력한 이해관계자 집단으로 만들어냈다. 반면에 노동, 공공복지, 환경, 생태 등 성장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다른 집단, 제도, 가치들은 약화되었다. 이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매우 높은 수준의 환경비용 및 온실가스 배출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성장주의가 제어되지 않고 극단화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 

셋째, 경제성장과 국민생활의 연동은 대중을 성장에 중독시켰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민들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본격적으로 향유하면서 대중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소비주의 문화가 발전했다. 동시에 교육, 주거, 의료 등 사회복지의 부족함 때문에 더 많은 화폐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다. 게다가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실직과 자영업 실패 등을 복지제도가 완충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성장은 더욱더 절실한 것이 되었다. 

이렇게 한국에서 성장주의는 국가와 대자본을 넘어 일반대중에게까지 내면화되었다. 그래서 성장은 여전히 노동, 균형발전, 민주주의, 생태주의 등 대안적 가치 위에 압도적으로 군림하고 있다. 

기후위기, 립서비스로는 안 된다

모든 성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장만이 선진국을 만든다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져야 한다. 무한성장의 추구는 주기적으로 과잉생산 위기를 낳으며 이제는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환경과 생태에 대한 립서비스 대신 진실로 대안적인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지주형 님은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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