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17 19:20최종 업데이트 21.11.1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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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 연합뉴스

 
한국의 교사들(초중고 포괄)은 1년에 1만 건 이상의 공문을 처리한다. 2020년 전교조의 전국 교사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육활동 중 가장 힘든 점으로 '과중한 행정업무'를 뽑은 이들이 절반이 넘었다. OECD의 2018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OECD 국가의 교사는 평균 주당 2.7시간을 행정 처리에 사용하지만, 한국의 교사는 주당 5.4시간을 행정 공문 처리에 사용한다. 평균의 두 배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학교는 특성상 그 업무 대부분을 교사들이 주도하는 만큼, 이 문제를 개혁하여 교사의 생산성을 확보하는 것이 학교 개혁의 핵심이다.

학교의 효과성

한국사회에서 학교가 교육을 통해 계층상승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중요한 사회기관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특목고와 자사고가 부유한 계층의 계급공고화 기제로 작동한다는 주장에서부터 더 이상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는 고착화된 불평등 사회가 되었다는 냉소까지 학교의 효과성에 대한 비난은 끝이 없다.


학교가 학생들이 태어난 가정환경, 사회경제적 계층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학생의 잠재성을 최대로 키워 역량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학교 효과성'이라고 한다. 효과적인 학교, 혁신적인 교육은 열정을 지닌 교사가 학생들과 마음을 열고 공감대를 넓혀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학교의 효과성은 교사들이 열정을 가지고 책임 있게 교육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교사의 높은 생산성을 보장하는 학교운영체제(School Operating System) 구축에 달려 있다.

효과적인 학교를 형성하기 위해 교사들의 생산성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육 분야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노동집약적인 서비스 산업이고, 학교가 무엇보다 교사의 자발성에 크게 의존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예를 들면, 2022년 본 예산안 11조 5836억 원 중 인건비가 6조 1990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54.4%에 해당한다. 또한, 예산의 21.2%를 차지하는 교육사업비 2조 4569억 원도 대부분 교사들이 운영하는 교육프로그램이다.

결과적으로, 75.6%의 교육투자가 교사들의 열정과 노력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학교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교사들이 수업과 학생지도에 집중하여 교사 교육활동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학교운영체제를 개혁하는 일이다.
 

tvN 드라마 <블랙독> 한 장면 ⓒ tvN

 
교사의 생산성

교사들의 생산성을 저해하고, 교사들이 수업과 학생지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항상 과도한 행정 업무가 꼽힌다. 앞서 말한 전교조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사들은 교육활동 중 가장 힘든 점으로 '과중한 행정업무'(50.2%), '학생의 학습 무기력'(38.7%),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38.6%), 민원(22.0%) 순으로 답했다.

이 조사결과를 보면, 교사가 행정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학교운영체제는 어떠해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도록 동기 부여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학생의 학습 무기력'과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

한국의 한 학교에서 일 년에 처리하는 공문 1만 건 중 접수하는 공문이 4000건 정도이고 생산하여 발송하는 공문이 5000~6000건 정도라고 한다. 이로 인해 교사들은 수업 준비에 집중하지 못하고,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 OECD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교사들은 OECD 국가 평균인 20.6 시간보다 2.5시간 적은 18.1 시간을 수업에 할애한다.

혹자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관련된 행정업무이니 당연히 교사가 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과 영미 국가들의 교사는 행정업무를 담당하지 않는다. 사실 사례를 멀리 외국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학 교수들은 행정업무를 처리하지 않는다.

대학생들보다 생활지도와 학습지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초중등학교에서 교사들이 행정업무에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일은 결국 교사들이 수업과 학생지도에 소홀하도록 압박하는 운영체제다. 교사도 교수처럼 행정업무에서 풀려나, 지금보다 많은 시간을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 개개인을 상담하고 지도하는데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초중고도 대학처럼

그래서, 나는 수업-학생지도 업무와 행정업무를 완전 분리하자고 주장한다. 그동안 모든 교육청에서 행정업무 경감을 목표로 많은 노력을 수행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나는 10년 가까이 진행되어온 시도교육청의 교사 행정업무 경감 정책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한 이유는 당초에 방향을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학교의 행정업무는 영원히 줄어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 교육청의 사례를 보면, 2017년까지 감소하던 행정공문 생성건수가 2018년 이후 소폭이지만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시민과 학부모가 학교와 교육에 요구하는 서비스의 양과 질은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행정수요 증가는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이제는 경감이 아니라 분리로 나가야 한다. 물론 불필요한 공문생산을 지양하고, 행정공문 생성 원인을 시스템 측면에서 제거하는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 과제는 행정업무를 다루는 분야에서 맡아서 대책을 세우면 된다. 교사들은 학교의 행정업무 다과에 상관없이 본연의 핵심 업무, 수업과 학생지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운영체제가 학교의 효과성을 높이는 일이고, 동시에 국가 교육투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내 경험으로 국립대학의 교수 대비 행정직원 비율은 대략 2~3 대 1 정도였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2021년 기준, 기간제 교원까지 포함한 교원이 7만 5029명이고, 행정공무원과 공무직원이 3만 4650명이다. 공무직원 중 교육 행정과 직접 관련이 없고 대학에는 없는 직종인 영양사 및 조리사 등 학교급식 관련 인원 1만 명 정도를 제외해도 교원 대비 행정관련 직원 비율이 3:1 정도 된다.

다른 예로 21년 현재 서울의 한 고등학교 인력구성을 보면, 교원은 기간제 교사를 포함해 61명이다. 행정공무원 및 행정 관련 공무직원은 20여명이다. 개별학교를 보아도 교원 대비 행정직원 비율이 3:1 정도 된다. 따라서, 학교운영체제를 잘 정비한다면, 커다란 인력 증원 없이 교사들이 행정업무에서 벗어나 수업-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출 수 있다.

교사들의 높은 생산성이 보장된다면 학부모의 학교 만족도도 높일 수 있고, 학생들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타고난 소질의 차이로 인한 불공정한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일도 감소할 것이다. 행정업무에 시달리지 않는 교사들이 열정과 에너지를 수업과 학생지도에 쏟을 수 있는 학교운영체제는 단순히 교사들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머물지 않고, 우리사회의 교육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 필자 소개 : 최승복은 교육부 공직자로, 현재 서울시교육청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중이다. 플로리다주립대(FSU)에서 '차터스쿨이 공립학교의 학업성취도 및 인종분리에 미치는 영향 분석'으로 공공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순천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2015)했고, 숙명여대 및 광주교대 등에서 교육정책론과 진로교육론 등을 강의했다. 저서로 <교육을 교육답게, 우리 교육 다시 세우기>(2018), <포노사피엔스 학교의 탄생>(2020), 공역서 <교육은 어떻게 사회를 지배하는가>(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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