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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1일 목요일 오후 4시, 강릉의 법원(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영랑호 생태탐방로 조성사업 반대' 공판에 참관하기 위해 속초에서 온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 중 중학생들만 열 명이었는데 재판정 안은 흔히 들릴 법한 잡담 소리 하나 없이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엄숙한 장내의 침묵을 깨고 분위기를 바꿔준 것은 법원의 사무관이었다. 이번 소송의 원고 측과 피고 측이 누구인지, 원고와 피고의 의미가 무엇인지, 행정 사건에 대한 개념 등에 관하여 학생들에게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속초시 상대로 주민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와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영랑호 부교 공사 반대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와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영랑호 부교 공사 반대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 영랑호를지키기위해뭐라도하려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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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20분이 되자 세 명의 판사가 입장했다. 모두 자리에 앉은 후 원고 측과 피고 측 변호사가 각자 자리에 앉아 변론을 시작했다. 이번 소송은 속초시의 영랑호 생태탐방로 조성 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속초시를 상대로 낸 주민소송(지방자치법 제17조 제1항 제2호)이다. 원고 즉 시민들을 대표한 측에서는 이번 주민소송을 제기하게 된 계기, 그간의 경위 등 영랑호 생태탐방로 사업이 왜 위법한지에 대해 30페이지에 달하는 PPT자료를 준비해왔다.

원고 측의 발표에 따르면, 이 사업이 위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속초시는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의 규정인 10억원 이상의 공작물을 설치하기 위해 시의회로부터 사전 의결을 받았어야 하는데 이 같은 법적 절차를 누락했다. 둘째, 이 같은 탐방로가 국토계획법 제30조 제5항인 '도시계획시설 변경'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속초시는 해당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피고 측(속초시)이 항변하자, 원고 측은 국토계획법 제56조 제1항에 따라 개발행위 허가를 받아야 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점을 하나씩 짚어가며 그동안 속초시가 절차를 지키지 않고 강행했음을 지적했다.

이어서 셋째, 국토계획법 제3조 제2호에 따라 수십 년간 영랑호의 수질 및 훼손된 생태환경 복원을 위해 수백억 원을 들여 자연보전 사업을 진행해왔는데, 이번 사업은 이 같은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위법행위다. 마지막으로 넷째, 영랑호에 날아오는 큰고니, 혹고니, 큰기러기, 원앙, 수달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 천연기념물인 다양한 동물이 영랑호를 찾고 있다는 점, 부교 설치로 인해 새들의 비행이 방해를 받고, 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천연 석호인데 조류의 흐름을 막아 부교 위쪽과 아래쪽의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점이다. 원고 측은 이 같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사업의 부당함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했다.

약 30여 분간의 원고 측 발표가 끝나고, 피고 측 변론이 이어졌다. 원고 측이 속초시가 벌인 절차상 하자 등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데 비해, 피고 측은 원고 측의 질문에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않은 채로 사업의 필요성만 강조하는 식이었다. 영랑호 권역으로 관광객을 유입할 수 있다는 점, 관광 약자(장애인, 고령인 등)의 편의가 늘어난다는 점, 콘크리트 부력체와 알루미늄 플레임, 에코스틸데크 등으로 구성되었다는 점 등을 제시했다.

피고 측의 변론이 끝나자 다소 맥이 빠졌다. 속초시의 해명을 듣고 나서도 속이 개운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재판이 시작하기 전에 사무관이 우리에게 '소송이란 원고와 피고의 법정 다툼'이라고 말해주었는데, 그렇다면 이번 다툼의 핵심은 무엇일까. 피고 측이 말하듯이 영랑호 권역의 경제 활성화일까, 자재의 친환경성 유무일까, 관광객의 유입 가능성일까.

개발 위협에 놓인 석호들 

분명한 것은 속초시가 여러 건의 민주적 절차(시 의회 의결, 도시계획 시설결정 변경 등)를 거치지 않은 채로 사업을 밀어붙였고, 그 뒤로 시민들이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때마다 법적 근거를 내세워 설명하지 않고 그저 사업을 무리하게 강행했다는 점이다. 속초시는 시민들이 가장 문제시 삼는 민주적 절차에 대해, 그것들을 무시하고 진행한 것에 대해 일언반구 말도 없이 해양수산청 공유수면 사용 허가, 감사원 공익감사 등 부차적인 사실들만 언급했을 뿐이다.

누군가 물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속초시가 절차만 제대로 밟았으면 되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이를 밟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지 않다'. 고작 칠팔십여 년을 사는 우리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되어왔고 앞으로도 그 생태를 유지해갈 석호를 훼손할 권리가 있을까.

영랑호는 동해안 지역 석호를 대표하는 호수로 바다와 민물이 만나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생물다양성의 보고이기도 하고 수많은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이 서식하고 있다. 매우 희귀한 조류들을 관찰할 수 있는, 철새 도래지이자 중간기착지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부교 설치를 막지 못해서 앞으로 영랑호가 우후죽순 개발되면 어떻게 될까. 동해안에는 영랑호뿐 아니라 송지호, 화진포호, 경포호 등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석호들이 시시때때로 개발의 위협에 놓여 있다. 영랑호 개발은 그 호수들의 개발을 연쇄적으로 부추길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자연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하고 있는 판국에 우리가 석호를 보존할 계획을 수립하진 못할 망정, 그 호수에 시멘트를 들이부어서야 되겠는가.

속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이번 영랑호 부교 건설을 막는 과정에서 속초의 민심이 둘로 나뉘어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도 무시하지 못하겠다. 그 폐해가 얼마나 큰지, 영랑호 부교가 낳은 끔찍한 분단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다. 과연 이러한 감정 다툼으로 손해를 보는 이는 누구일까.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청취할 생각은 없이 마냥 뒷짐을 지고 지켜보고만 있는 속초시 당국에 많이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오늘 변론에서 이에 대한 사과 한 마디 없이 내내 변명으로만 일관하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도 크게 기대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거리에 나서는 시민들
 
속초시에서 기획한 영랑호부교개통기념행사에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속초시에서 기획한 영랑호부교개통기념행사에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 영랑호를지키기위해뭐라도하려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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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의 이야기가 끝이 나자, 재판정 앞의 판사가 선고 일정을 12월 9일로 미룬다고 고지했다. 본래 오늘 선고한다고 들었는데 왜 선고일을 뒤로 미룰까. 나의 어림짐작으로는 원고 측(시민들)이 이렇게 속초시의 파행을 낱낱이 고발하고, 그에 반해 피고 측(속초시)은 무성의한 해명으로 대응한 상황에서 피고 측의 손을 들어주기가 민망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판사가 그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으니 내 짐작이 맞는지 아닌지를 알 도리는 없다. 방청석에서는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며 엉거주춤 일어설 채비를 했다.

모든 변론이 끝나고 해랑중학교 학생들을 잠시 만났다. 이번 재판을 위해 이 학생들은 '부교를 놓기 전의 영랑호의 모습'과 '다리가 놓인 후의 영랑호의 모습'을 찍은 사진 두 장을 놓고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음에 드는 사진에 별 모양 스티커를 붙여달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했다.

그 설문조사를 통해 무엇을 느꼈냐고 묻는 질문에 다리가 놓이기 전 영랑호의 모습에 스티커가 많이 붙을 땐 기뻤고, 다리가 놓인 후의 모습에 스티커가 붙을 땐 슬펐다고 했다. 복잡하고 착잡하다고 했다. 과연 이 설문조사를 통해 학생들은 어떤 경험을 했을까. 영랑호 부교로 학생들은 또 그렇게 편이 나뉘었다.

이 다툼의 결과가 어떨지 예측하긴 어렵다. 법정 공방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시에선 이미 공사를 강행하여 부교를 설치했고, 부교 개통식도 진행한다고 한다(개통식은 11월 12일 금요일에 진행되었고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은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피켓 시위를 벌였다).

속초의 시민들은 지금까지 480일 넘도록 영랑호 생태탐방로 건설사업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 사업의 철회를 위해 매일 아침 속초시청 앞과 시내 사거리에서 피켓 시위를 해왔다. 시민들은 사업 철회가 발표되는 그날까지 매일 아침 거리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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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속초에 삽니다. 상식적인 사회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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