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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지하에 설치되어 있는 <세종 이야기>의 일부.
 세종문화회관 지하에 설치되어 있는 <세종 이야기>의 일부.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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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인신문(11월 7일자)은 "세종대왕도 모르는 훈민정음,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에 오자가 웬 말"라는 제목으로 세종대왕 동상 앞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식 표기와 동상 지하에 있는 '세종 이야기' 전시관의 세종대왕의 본명인 '도(裪)'자가 잘못된 표기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본명의 한자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은 역사 기록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잘못된 지적이다.

'세종대왕' 동상에 새긴 묘호(廟號: 임금이 죽은 뒤에 생전의 공덕을 기리어 붙인 이름) "세종대왕"은 세종정신을 드러내면서도 현대인들과의 소통을 고려한 일종의 절충식 표기이므로 이는 따로 논의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세종대왕의 본명 도(裪)자의 한자 오류 문제에 대해서만 논의하기로 한다.

기사는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박재성 이사장 제보를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인데, 세종대왕의 피휘(避諱, 존귀해서 피해야 할 이름)자를 "裪(옷소매 도)"로 표기한 것은 잘못된 표기이며, 큰 글씨 옆에 작은 글씨로 해설한 "祹(복 도)"자가 옳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고 진태하 명지대 교수가 중앙일보(2010.10.8.)에서 10년 전에 주장한 바이기도 하다. '裪'는 '옷소매끝 도/옷소매 도'이므로 임금의 아들인 왕자의 이름으로는 취할 수 없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잘못됐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옷소매 도(裪)'자가 바른 글자이고, '복 도(祹)'자는 틀린 글자이다.

조선왕실 족보에도 '옷소매 도' 사용

<세종실록>의 구체적인 기록을 찬찬히 확인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이와 관련된 5건의 기록 모두 아래 이미지처럼 "옷소매(윗옷의 좌우에 있는 두 팔을 꿰는 부분)"를 뜻하는 '도(裪)'자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실록을 번역하는 분들이 이 글자를 '복 도(祹)'의 이체자 '礻+匋'로 판독하고 기록하여 '복 도'로 오해하게 된 것이다. 필자 또한 기존 판독문대로 써 왔으나 이제 수정하고자 한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세종 본명 출처(기사 제목 포함)와 실제 이미지
 세종실록에 나오는 세종 본명 출처(기사 제목 포함)와 실제 이미지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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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으로, 세종의 본명 한자가 조선왕실 족보 기록인 <선원계보기략>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현재 참고하는 세종실록(태백산사고본)은 임진란으로 불에 타 후대에 다시 작성된 자료라는 점을 고려하면, 세종대왕의 본명 한자가 "옷소매 도(裪)"자인지 "복 도(祹)"자인지는 조선왕조의 족보인 이 책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다.
 
<선원계보기략>에 나오는 태종의 열두 아들 이름
 <선원계보기략>에 나오는 태종의 열두 아들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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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은 세종대왕 시절에 편찬된 것이므로, 태종의 셋째 아드님인 세종의 이름은 '휘자(諱字)' 즉 "높은 어른(임금 포함)의 이름자"가 되므로 표기되지 않았다. 태종은 원경왕후와의 사이에 4명의 왕자와, 후궁 사이에서 8명의 왕자 모두 열두 명을 두었는데 모두 '옷의 변[衣(6획) = 衤(5획)]' 계열이다.

왕실은 특정 한자를 왕족 이름으로 쓰게 되면, 일반 백성들이 그 한자를 쓰는 데 제한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점을 고려해 1음절 한자를 선택하였다. 한 글자이다 보니 돌림자 설정의 어려움 때문에 한자자전의 특정 부수를 돌림자(또는 항렬자)로 대신하였다. 여기서는 '옷의 변' 글자를 대용으로 삼았다. 결국 세종 이름은 '裪(옷소매 도)'이다.

세종대왕의 본명이 '복 도'가 아니라 '옷소매 도'라고 하여 세종대왕과 왕실의 권위가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함께 검토해 준 정우영 동국대 명예교수는 "상용한자를 쓰지 않고 쓰임이 거의 없는 한자를 선택한 것은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심, 또는 자기를 낮추는 겸양, 애민정신을 기본원칙으로 하여 작명용 한자를 선택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작명의 심리학

후대 사람들이 세종대왕의 본 이름을 '복 도'로 오해하게 된 것은 첫째, 세종대왕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을 투사하여 좋은 뜻으로 해석하려는 선입견이 작용한 탓이다. 입신양명의 소망을 담아 작명하였을 것이라는 오늘날의 작명 관념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둘째는 복잡한 한자의 이체자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복 도'는 두 가지 계열이 있는데, 하나는 '示(보일시변 시) + 匋(질그릇 도)' 계열이고, 또 하나는 '礻(보일시변 시) + 匋(질그릇 도)' 계열이다. 곧 '示=礻'는 이체자이다.

가. 示(5획) = 礻(4획) 祹(복 도)=礻+匋
나. 衣(6획) = 衤(5획) 裪(옷소매 도)


곧 '祹(복 도)'의 이체자인 '礻+匋'의 왼쪽 부수(礻)와 '裪(옷소매 도)'의 왼쪽 부수(衤)는 짧은 한 획의 차이로 인해 전문가들조차 혼동해서 쓸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 '裪'를 '礻+匋'로 잘못 써서 이를 '복 도'로 잘못 해석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이 세상에 이름을 드날리려 했으리라는 보통 사람들이 갖는 '작명의 심리학'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세종실록의 '裪(옷소매 도)'가 '복 도'의 '礻+匋'의 이체자라거나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보는 분도 있다. 활자 제작의 어려움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와 이기범 경기대 서예학과 교수는 임금 이름을 오기하거나 속된 이체자로 나타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세종실록을 연구하는 원정재 모임의 권오향 교수도 후대의 관념을 과거 글자에 투사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세종실록이 '裪(옷소매 도)'로 기록했으면 글자 자형이든 뜻이든 있는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따라서 세종문화회관 지하에 설치되어 있는 <세종 이야기>는 '복 도(祹)'로 설명한 부분을 고쳐야 하며, 조선왕조실록 판독문과 번역문에서 세종의 이름을 '도(祹)'자로 표기한 부분은 모두 "(옷소매) 도(裪)"자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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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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