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초 두산의 박세혁이 내야 강습타구를 친 뒤 kt 실책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1루에서 아웃된 뒤 아쉬워하고 있다. 2021.11.14

9회초 두산의 박세혁이 내야 강습타구를 친 뒤 kt 실책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1루에서 아웃된 뒤 아쉬워하고 있다. 2021.11.14 ⓒ 연합뉴스

 
미라클 두산의 폭풍질주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한 경기 패배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승부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가 먼저 일찍 포기해버리는 듯한 나약한 모습이었다.
 
1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한국시리즈(KS) 1차전에서 정규리그 1위팀 kt 위즈가 4위팀 두산 베어스를 4-2로 제압했다. kt 선발 윌리엄 쿠에바스가 7.2이닝 동안 100개의 공을 던지며 7피안타 1실점(1자책) 8탈삼진으로 맹활약하며 포스트시즌내내 화끈했던 두산의 타선을 잠재웠다.
 
지난 10월 31일 삼성 라이온즈와 1위 결정전에서도 승리투수가 되며 kt에 창단 이후 첫 정규시즌 우승을 선사했던 쿠에바스는, 이로서 구단 역사상 첫 한국시리즈 승리 투수로도 이름을 올려 1차전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어 다시 한번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드러냈다. 타선에서는 팀의 한국시리즈 첫 안타와 홈런 기록을 세운 배정대(4타수 2안타 1타점)가 맹활약했다. 역대 한국시리즈 1차전 승리 팀은 역대 37번의 시리즈 중 무려 28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시리즈 무대를 처음밟은 kt는 단숨에 73.7%의 높은 우승 확률을 선점하게 됐다.
 
반면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던 두산은 이날 팀 안타 수 9개로 오히려 kt(8개)보다 1개 앞섰으나 후속 타자들이 좀처럼 점수로 연결하지 못했다. 여기에 중요한 상황에서는 평소의 두산답지않은 실책성 플레이까지 이어지며 이전 시리즈에서 보여준 끈끈한 저력을 재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장 아쉬운 장면은 바로 9회에 나왔다. 1-4로 뒤진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6번 박세혁이 타석에 섰다. 박세혁은 kt 마무리 김재윤의 2구째를 공략했으나 빗맞아서 3루수 방면으로 향하는 내야 뜬공이 됐다. 아웃을 직감한 박세혁은 1루로 몇발자국을 옮기다가 포구 과정을 끝까지 확인하지 않고 등을 돌려 덕아웃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kt 3루수 황재균이 포구에 실패하여 공을 뒤로 흘리고 말았다. 관중들과 덕아웃의 외침에 놀란 박세혁이 그제야 상황을 확인하고 다시 주루플레이를 이어가려는 동작을 취했지만, 이미 커버플레이를 들어온 kt 유격수 심우준이 타구를 잡아 1루에 송구한 뒤였다. 두산으로서는 1사 1루가 될수도 있었던 상황이 2사 주자없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지켜보던 두산 팬들 사이에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잠깐 사이에 양팀 모두 두 번의 실책성 플레이가 나왔다. 황재균의 수비 실책은 돔구장의 특성상 순간적으로 조명 때문에 타구 방향을 놓치면서 부득이하게 나올수도 있는 실수였다. 다행히 적재적소에 커버를 들어간 심우준의 빠른 대처가 빛났다. 하지만 박세혁의 경우는 인플레이 상황이 끝나기도 전에 먼저 지레짐작으로 경기를 '포기'한 것이기에, 프로선수로서 기본을 망각한 행동이었다.
 
박세혁의 입장에서 보면 누가봐도 두산의 패색이 짙어보이는 흐름이기는 했다. 마지막 이닝에 점수는 3점 차였다. 심우준의 민첩했던 후속 대응을 감안할 때 박세혁이 끝까지 1루로 달렸다고 해도 살아남는다고 장담할 수 없었고, 그가 출루했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포츠 만화 <슬램덩크>에서 안 감독의 어록처럼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종료"다. KBO리그 레전드 타자인 양준혁은 현역 시절 아웃될 것이 유력한 내야 땅볼이나 뜬공에도 끝까지 1루를 향하여 전력질주하는 플레이로 유명했다. 당시 팬들은 거구의 양준혁이 뒤뚱거리며 뛰는 모습에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지만, 그것이 바로 양준혁을 지금까지 전설로 만든 가장 중요한 비결이기도 했다.
 
평범한 타구라도 아웃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프로로서의 의무이고, 주자가 전력질주하는 모습에 부담을 느낀 야수들의 실책을 유발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1년에 두세 번도 나올까 말까지만, 때로는 그런 작은 변수가 쌓이고 쌓여 경기의 승부나 선수의 커리어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심지어 양준혁은 2010년 은퇴경기 마지막 타석에서도 내야 땅볼로 아웃을 당했지만 끝까지 전력으로 1루까지 질주하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운도 결국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돌아온다는 것이 양준혁의 지론이었다.
 
두산은 올시즌 정규시즌 4위에 그치고도 포스트시즌에서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한 팀들을 업셋하며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왔다. 와일드카드 시리즈부터 시작한 팀이 한국시리즈에 오른 경우는 두산이 역대 최초였다. 불리하거나 확률이 낮은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미라클 두산을 만든 원동력이었다.
 
박세혁은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이러한 미라클 두산의 중심에 있었던 선수였다. 박세혁은 움 히어로즈와 와일드카드(WC) 결정전에서 타율 .571(7타수 4안타), LG 트윈스와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도 타율 .500(8타수 4안타) 삼성 라이온즈와 플레이오프(PO)에서도 특급 마무리 투수 오승환을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때려내는 등 타율 .400(5타수 2안타)로 매 시리즈마다 분전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박세혁의 물오른 타격감을 고려하여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6번으로 타순을 상향 조정하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박세혁은 이날 병살타 포함 4타수 무안타로 철저하게 침묵하며 김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지 못했다. 7번 허경민(4타수 2안타 1득점)과 8번 강승호(3타수 2안타 1타점)가 나란히 멀티 히트를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단순히 혼자 부진했던 것을 넘어서 오히려 하위타선에서의 좋은 흐름을 끊어먹는 원흉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9회에는 어이없는 주루 포기로 팀 사기에 찬물까지 끼얹고 말았다. 오히려 두산이 박세혁이 물러난 이후 마지막 아웃카운트만 남긴 상황에서 후속 타자들인 허경민-강승호는 포기하지않고 연속안타를 터뜨리며 오히려 1점을 만회했기에 더욱 대조를 이뤘다. 어쩌면 두산에게는 대량득점을 통하여 동점이나 역전까지도 노릴만한 마지막 기회가 될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박세혁이 허무하게 날린 아웃카운트 1개가 더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김태형 감독도 경기 뒤 "본인은 당연히 잡힐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야구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는 그런 장면이 다시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쓴 소리를 했다. 선수가 매순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기는 쉽지않지만, 프로라면 지켜야할 '기본'이 있고, 심지어 지금은 최고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한국시리즈다. 박세혁으로서는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명문팀의 주전 자격에 걸맞는 책임감을 되새겨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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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혁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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