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16 07:32최종 업데이트 21.11.1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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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시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리고 있는 영국 글래스고의 회의장 밖에서 기후 활동가들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가면을 쓴 채 팻말 등을 들고 화석연료 사용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1.11.12 ⓒ 연합뉴스/AP

 
무대에 오르지 않은 자, 화석연료 산업계가 이겼다. 가만히 침묵하고 있어도 무대 위에 있는 이들이 제각기 민낯을 드러내며 알아서들 싸웠고 다들 적당한 수준에서 물러났다.

2주간의 협상 후 최종 통과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의 글래스고 기후조약(Glasgow Climate Pact)을 보고 든 개인적 생각이다. 석탄이란 단어가 최초로 협약에 명시되었지만 석유와 가스는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UN 사무총장, 각 국가 정상 및 주요 정치인, 영국 왕실, 은행가, 과학자, 시민 단체들이 총출동, 2주간 글래스고에서 탄소 배출의 주범, 화석 에너지 산업을 겨냥했지만 꼬리만 살짝 잡은 셈이다.


협상 총책임자인 영국의 알록 샤르마(Alok Sharma)가 말했듯이, 결과는 "불완전"하고 "맥박은 약"하다. 파리협약의 "1.5도(기온 상승 1.5도 이내로 억제)"는 살아남았지만 현재 상태로는 2.4도까지 올라가리라는 예상이다. 남태평양 섬나라와 빈곤국에게 절실했던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에 대한 보상은 스코틀랜드를 제외한 전 세계가 외면했다.

알록 샤르마는 마지막 순간 눈물을 참으며 "협상 과정에 대해 사과한다. 깊이 사과하며 깊은 실망감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깊은 실망감의 원인, 글래스고 기후회의를 멈춰 세운 반작용의 힘을 생각해 볼 시간이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의장 알록 샤르마가 13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총회 폐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글래스고에서 막을 내린 COP26에서 세계 약 200개 참가국은 석탄발전 단계적 감축 등을 포함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인 '글래스고 기후 조약'(Glasgow Climate Pact)에 합의했다. 2021.11.14. ⓒ 연합뉴스/AP

 
2015 파리 회의에서 2021 글래스고 회의까지

글래스고 회의의 목표는 "1.5도", 2015년 파리 조약을 살리기 위해 행동 방안 마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목표 설정 6년 만에 구체적인 방안 마련이라니 심하게 느리다.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것은 버티는 힘과 앞으로 밀고 나가는 힘에 대한 질문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수준에서 기후 변화를 주제로 세 번에 걸쳐 글을 썼다. 기후 파업, 기후 소송, 기후 인권, 기후 선거, 기후 정의, 그린 뉴딜 등 연결되지 않은 채 막연했던 개념들이 2010년대 후반 사회적 힘으로 그리고 정치력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았다. 그 안에서 10대와 20대들이 세상을 앞으로 끌고 나가는 모습과 소수지만 몇몇 노장 정치인들이 이들의 의견을 수용, 국내 정책으로 발전시키는 생산적인 역동성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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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력으로 기후 변화는 '트럼프'와 '북극 곰'에서 벗어났다. 기후 변화를 '사실과 거짓'의 틀로 몰아넣어 그 실체 자체를 뒤흔들었던 트럼프 식 틀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기온 상승으로 녹은 얼음 조각 위에 앉아 있는 북극 곰 사진이 던졌던 감정적 호소와 도덕적 양심에서도 벗어났다. 기후 변화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 방향 전환되며 정치와 경제 및 사법의 영역에서 돌이킬 수 없는 중심 의제로 떠올랐다.
 

ⓒ EDF


2010년대 후반에 이룬 성과, 이것이 글래스고 기후 회의에 깔린 바탕이었다. 하지만, 11월 12일 회의 마지막 날, 수백 명의 시민사회 대표들이 회의장에서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날은 10일 협약 첫 번째 초고에 이어 수정안으로 다시 토론하는 날이었다. 결국 회의는 하루 더 연장되었고, "석탄 퇴출(phase out)"에서 "석탄 감축(phase down)" 노력으로 약화된 채 끝났다.   

후퇴의 이유

석탄 감축으로의 후퇴에는 인도와 중국이 있었다. 인도는 아직 남은 "탄소 예산"에 대한 개발도상국 권리를 주장했다. 탄소 예산이란 1.5도가 될 때까지 세계가 배출시킬 수 있는 나머지 탄소량을 말한다. 이것을 기후 변화 관련 역사적 책임이 큰 선진국 대신 여전히 발전과 빈곤 퇴치라는 과제가 있는 개발도상국이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도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석탄 퇴출 대신 석탄 감축을 끝까지 요구했고, 결국 수용되었다. 합의문을 위해 물러설 수밖에 없었지만 알록 샤르마는 "중국과 인도는 기후 변화 위험에 노출된 국가들에게 그들이 취한 행동을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분노 섞인 실망감을 표했다.

하지만, 기후 변화 위험에 노출된 국가들을 실망시킨 것은 중국과 인도만이 아니다. 소위 서구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빈곤국들이 글래스고 회의에서 원한 "손실과 피해"에 대한 인정과 그에 대한 보상 기금 설치를 거부했다.

남태평양 국가들은 기후 변화에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거의 책임이 없지만, 기후 변화 최전선에 노출되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투발루의 외교부 장관은 남태평양의 저지대 작은 국가들이 처한 위태로운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무릎이 잠길 정도의 바닷물 속에 연단을 놓고 기후 회의 회견을 했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투발루의 외교부 장관은 남태평양의 저지대 작은 국가들이 처한 위태로운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무릎이 잠길 정도의 바닷물 속에 연단을 놓고 기후 회의 회견을 했다. ⓒ 가디언 영상 갈무리

 
그러나 기후 변화 책임은 인정하나 무제한 채무를 우려한 미국과 EU가 명문화시키는 것을 꺼려했고, 대신 대화 통로를 마련한다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부딪치는 이해관계에서 도덕적 책임과 양보는 없었다.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항목은 별도로 하더라도, 각 대표단은 탄소 감축에 있어서 "충분한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이 우려한 것은 급격한 정책을 실시했을 경우 국내 사회에 끼칠 경제적 파장과 그로 인한 사회적 저항이다. 저항은 다발적으로 일어나겠지만, 그 중 한 축은 아직까지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부분인 기후 문화이다.

[기후 문화 ①] 항공 횟수를 줄여라

글래스고 기후회의 개최 4일 전인 10월 27일, 영국 하원에서는 '수상에 대한 질의 시간'이 있었다. 코로나 양성 판정으로 자가 격리중인 노동당 대표 대신, 노동당 전 대표 에드 밀리밴드가 보리스 존슨 총리 앞에 토론자로 섰다. 

밀리밴드는 "파리 협약 1.5도가 유효한가"라는 전제를 확인한 후, 이 목표가 2030년까지 탄소를 40%이상 줄여야 가능하다는 유엔 보고서를 인용,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골대를 옮기지 말라"고 요구했다. 다시 말하면, 글래스고 기후회의에서 2050년 혹은 그 이후를 언급하는 장기 목표가 아닌 2030년까지 단기 목표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몇 분간 이어진 공방 속에 수세에 몰린 보리스 존슨은 "한 가족 당 5년에 한 번씩 비행기 타라는 이야기냐"라고 소리쳤다. 보리스 존슨이 가진 놀라운 재주. 그는 순식간에 이 문제를 정책의 영역에서 일상과 문화의 영역으로 전환시켰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2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 연합뉴스/AP

 
일상과 문화는 변화에 저항하는 속성이 강한 영역이다. "5년에 한번 비행기," 5년이란 숫자는 과장된 숫자겠지만, 여하간 존슨의 발언은 기후 변화 대책으로 내가 잃어버려야 하는 것을 상기시켰다. 속도다. 산업 혁명 이후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극복한 것이 철도요 비행기였다. 그런데 이제 느려져야 한다. 과연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나? 

영국 시민단체는 이 부분을 서서히 띄우고 있다. 시작은 보리스 존슨 내각이 항공 승객 세금(passenger tax)을 반으로 줄인 데에 대한 반발이었다. 영국의 탄소 배출 중 27%가 교통이다. 그 중 비행기는 기차에 비해 탄소 배출이 6~7배에 달한다. 하지만 영국의 경우 저가 국내 항공이 기차보다 싸다. 기후 변화를 생각하면 영국 정부는 비행기 세금을 올리고 기차에 보조금을 투입해 가격을 내려야 했다.

거꾸로 가는 정부 정책에 반발해 '더 나은 교통을 위한 운동(Campaign for Better transport)' 측은 "국내선은 기후 재앙"이라며, 국내선을 금지하고 철도 쪽을 보강하라고 외치고 있다. 노동당의 에드 밀리밴드는 국내선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지만, 가능한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노동당의 그린 뉴딜 안은 지역 경제 네트워크 강화 방안을 제시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칼럼니스트 사이먼 젠킨스(Simon Jenkins)도 영국 사회가 '과도한 이동성' 지향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의 가치를 되살려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한 세대 이상을 세계화라는 구호 속에 산 현대인들에게 비행기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쉽지 않다. 1990년대 이후 여행 및 관광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팽창했고, 영국의 경우 지리적 근접성을 매개로 유럽 이웃 나라로의 휴가가 보편화되어 있다. 갑작스러운 수축은 항공 및 관광 산업뿐 아니라 여가 생활 문화까지 구조 조정 대상으로 오르게 한다.  

칸타 퍼블릭(Kanta Public)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현대인들의 일상생활 패턴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드러난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 9개국 18세 이상 9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으로, 답변자의 78%는 기후 변화를 걱정하고 있고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엄격한 규제를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능성 높은 규제 중 교통과 식습관, 항공기로 하는 여행 줄이기와 붉은 고기 섭취 줄이기에 대한 저항감은 높게 나타났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가 열리는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2일(현지시간) 청소년 환경운동가들과 이들의 부모, 기후 변화 취약 지역 원주민들이 '기후 배신행위 끝내라'라는 글귀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AP


[기후 문화 ②] 육류 섭취를 줄여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2030년까지 메탄 30% 감소안은 글래스고 회의의 큰 성과로 여겨지는 것 중의 하나로, 100개국 정도가 동참했다. UNECE(UN Economic Commission for Europe)에 따르면, 메탄은 온실가스 생산의 주원인으로 이산화탄소보다 28~34배 강력하지만 생명이 짧아 온난화를 막는데 효과적이다.

메탄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것이 석유-가스 등 화석 연료와 농축산업이다. 농업과 축산업을 합쳐 36%, 화석 연료 33%, 쓰레기 16% 등이다. 메탄 30% 감축안은 화석 연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농축산업은 제외되어 있다. 이것은 식생활 변화에 대한 급격한 전환까지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적어도 68% 탄소 감축을 목표로, 전 방위적으로 아이디어를 모으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영국도 이 부분은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기후 변화 해결을 위한 식생활 개선을 주장하는 곳이 몇 안 되지만, 그 중 주목할 만한 곳은 기후변화 건강연합(The UK Health Alliance on Climate Change. UKHACC)이다. 영국 의사 및 간호사들이 결성한 곳으로, 이 단체는 붉은 육류, 유제품 등 메탄 배출이 높은 식품 소비를 줄이지 않는 한 기후 위기가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단체는 기후 변화와 관련된 식생활 관련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음식 과소비를 유발하는 "하나 사면, 하나 공짜" 등의 행사도 끝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축산업계가 탄소 감축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탄소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실천 방안을 마련하고자 했던 글래스고 기후회의는 구체적 숙제를 내주고 끝났다. 숙제 제출 마감일은 글래스고 기후조약에 따라 각 국가들이 탄소 감축 목표(NDCs,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를 최대로 높여 다시 제출해야 하는 내년 말이다. 그 과정에서 잃어버릴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듯하다. 의식 수준을 북극곰의 사진, 그 때로 되돌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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