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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에서 외국인 게스트나 국제커플, 국제커플의 2세 등이 굉장히 많이 보인다. 한국-프랑스 국제부부로 살고 있는 우리는 그런 프로그램들을 우연히라도 보게 되면 살짝 손발이 오그라들어 일부러 눈길을 돌리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TV에 출연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제작진이 외국인 출연자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하나같이 그들이 하는 행동은 특이하단 프레임을 씌우지 못해 안달이고, 어김없이 그들의 입을 빌려 한국을 칭찬하며, 또 거의 예외 없이 그들은 백인이다.

일상생활에서 나는 남편의 국적을 절대 먼저 밝히지 않는데, 대화 중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하면 바로 나의 정체성은 국제결혼한 여자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외국인과의 결혼이 나의 로망이었다" "프랑스 남자는 한국 남자와 비교했을 때 어떠냐" 등 편견 섞인 대화가 물꼬를 트려는 순간이면 나는 한 방에 이를 정리해버린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람에 따라 다를 뿐이라 그런 호기심은 솔직히 의미가 없다고 말이다.

가위바위보는 알지만 묵찌빠는 몰랐던 남편 

그럼에도 국제결혼이 가진 차이는 응당 있기 마련이다. 둘 중 한 명은 부모 형제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점, 둘 중 한 명은 자국에서 행정과 관련한 대부분의 집안일을 담당해야 한다는 점 등 현실적으로 각자의 희생의 크기가 일반 커플보다 확대되는 부분이 필연적인데, 이는 기본값이며 너무 깊이 들어가면 슬퍼질 수 있기에 굳이 거론하지 않겠다.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많은 국제커플이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차이는 서로 유년 시절 보고 듣고 자란 것들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부분이다. 본인이 어릴 때 좋아하던 스타라든가 노래, 만화, 놀이, 불량식품, 이들을 활용한 밈 등 다양한 것에 대해 비스무리한 감정조차 공유가 힘들다보니 아무리 설명을 하더라도 부족하다.

내 남편은 가위바위보가 아닌, 묵찌빠란 놀이가 있다는 사실도 며칠 전에 내게 듣고 처음 알게 됐다. 그나마 얼마 전 <오징어 게임> 전편을 함께 시청한 뒤 무궁화꽃이나 뽑기 같은 놀이는 새롭게 습득했다. 

물론 나 또한 남편이 어린 시절 뭘 보고 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만 들을 뿐, 깊게 공감할 수는 없어 아쉽다. 그나마 프랑스에서 남편의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멋모르고 따라 하다 보면 그 분위기에 점점 더 깊게 공감을 하게 되는 것 같긴 하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그런 게 서로의 다른 문화를 알아가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우리는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와인 한 병을 비웠다. 마침 우리가 키우던 바질들이 너무나도 잘 자라서 새로운 화분이 더 필요하던 찰나였는데, 남편이 제안했다.

"우리 이 와인병으로 화분 만들까? 병이 살짝 투명해서 뿌리가 아래로 길게 쭉 뻗어나가는 걸 볼 수가 있겠다!"
 
라벨지 제거 작업을 위해 뜨거운 물에 담겨진 와인병
 라벨지 제거 작업을 위해 뜨거운 물에 담겨진 와인병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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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병 윗구멍이 작아서 조금 걱정했지만, 한 포기 정도는 무리 없이 들어갈 만했다. 남편은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신나게 와인병 안을 세척하고, 양동이에 더운 물을 붓더니 병에 붙어 있던 라벨지를 떼어내기 위해 와인병을 물 안에 담갔다. 어릴 적 써머캠프에서 했던 활동이란 말을 덧붙이며. 와인병을 깨끗이 닦아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어린 남편의 모습이 연상되어 사랑스러웠다.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에선 아무래도 와인병을 활용한 만들기가 흔하게 이뤄진다고 한다. 마치 우리가 어릴 때 학교에서 우유팩을 활용한 만들기를 했었던 것처럼. 뜨거운 물에 한참 담가뒀던 와인병을 꺼내올려 스티커를 전부 떼어내고, 물빠짐을 위해 적절한 크기의 돌멩이로 병의 아랫부분을 충분히 채우고, 이후 흙 한 무더기는 깔때기로 받쳐서 가득 채워줬다. 다음 날 바질 한 포기를 심어주니 멋지고도 개성 있는 화분으로 탈바꿈했다!
 
라벨지 제거 후 깨끗해진 와인병
 라벨지 제거 후 깨끗해진 와인병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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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병에 흙을 채워 바질 한 포기를 심어줬더니 멋진 화분이 되었다.
 와인병에 흙을 채워 바질 한 포기를 심어줬더니 멋진 화분이 되었다.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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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서로의 어린 시절을 100% 공감하며 추억을 소환할 수는 없는 처지이나, 이렇게나마 남편이 어렸을 때 했다는 활동을 함께해보니 진심으로 즐거웠다. 게다가 화분이 필요하던 차에 집에 있던 재활용품을 활용해 이를 마련하니 뿌듯한 마음도 뒤따라왔다. 

내친 김에 프랑스에서 어릴 적에 했던 만들기가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남편은 선원의 매듭(프랑스어로 noeud de marin / 영어로 sailor's knot), 모래병(sand bottle), 브라질리언 팔찌(Brazilian bracelet) 등을 어렵게 상기시켰다.
 
선원의 매듭을 만드는 여러 방법 중, 원숭이 주먹(monkey's fist) 사례.
 선원의 매듭을 만드는 여러 방법 중, 원숭이 주먹(monkey"s fist) 사례.
ⓒ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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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병 안에 원하는 색깔의 모래를 채우는 색모래 아트 사례
 투명한 병 안에 원하는 색깔의 모래를 채우는 색모래 아트 사례
ⓒ pxfuel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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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선원의 매듭부터 이야기해보자면 배에서 삼각돛 등을 고정시키기 위해 밧줄로 매듭을 만드는 방법을 배운 뒤, 본인이 좋아하는 색깔의 끈으로 이 매듭을 만드는 것이다. 혹시나 매듭의 끝 부분이 풀려서 밧줄 전체가 구멍을 빠져나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동그란 구슬을 매듭 안에 넣는 방식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컬러풀한 끈으로 이것을 여러 개 제작하면 꽤 예쁘기도 하다!   

이 밖에 모래병이랑 브라질리언 팔찌는 나 또한 어렸을 적에 접했던 기억이 난다. 모래병 아트는 평범한 모래로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색깔의 모래를 투명한 병에 집어넣고 흔들어서 원하는 무늬를 만들어내는 활동으로, 한국에는 색모래 놀이로 많이 알려져 있다.

브라질리언 팔찌는 면실을 교차로 엮어 만드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우정팔찌, 매듭팔찌 등으로 좀 더 익숙하다. 얘기를 하다 보니 초등학교 시절 언니가 운동화끈으로 사각기둥 모양 여러 개를 만들어서 가방에 걸고 다녔던 장면도 떠올랐다. 결국 어릴 때 만들었던 것들이 기억이 안 나는 것일 뿐, 생각을 해보니 잊고 살았던 활동이 꽤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프랑스인이 아니었다면 몰랐겠지?

얼마 지나면 크리스마스다. 내게는 챙겨야 할 여자 조카 세 명이 있는데, 아이들에게 선물을 할 때마다 고민이 많이 된다. 장난감은 일주일만 쓰면 싫증 날 테고, 매일 공주를 그려달라며 공주에 꽂혀 있는 아이들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공주 인형이나 공주의 집 같은 걸 선물하진 않겠다는 고집이 있다. 물론 약한 이모 마음에 공주 드레스를 사준 적은 있지만...

공룡과 공주를 비슷한 수준으로 좋아하는 7살 첫째 조카에게도 일부러 공룡 장난감, 공룡 책, 공룡 종이접기만 사주곤 했다. 욕심인지 몰라도 아이들이 단순히 공주를 예쁘게 꾸미는 것에만 관심을 갖기보다는, 노는 시간에조차 좀 더 이 세상과 교감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에 알게 된 선원의 매듭은 만드는 재미도 있을 뿐더러 집중력과 소근육이 발달되는 효과도 있고, 나중에는 캠핑이나 때로는 바느질 등 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선박에서의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며 다양한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은 아이의 시야 확장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현실적으로 제작된 선박 장난감으로 첫째 조카를 놀라게 하고, 선원의 매듭 만들기를 함께 해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일단 세 가지 고민 중 하나는 후련하게 해결되었다! 내 남편이 프랑스인이 아니었다면 생각해내지도 못했을 아이디어. 국제커플의 장점은 이렇게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서 불쑥 발현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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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만들기와 글 쓰기를 좋아하는 여행 가이드. 포토그래퍼 남편과 함께 온 세계를 다니며 사진 찍고, 음악 만들고, 글 써서 먹고 사는 게 평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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