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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장마와 갑작스러운 한파를 피할 수 없어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농사를 마무리 하는 겨울에 들어섰다. 이른 아침부터 농사가 끝난 밭에서는 작물의 잔사를 태우는 연기가 자욱하다. 농사가 끝날 때마다 여기저기서 관행적으로 불태워지는 잔사를 보는 마음은 몹시 불편하고 안타깝다.

흙이 키워준 것은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 지속가능한 토양생태계의 순환이 지속된다. 불 태우고 농지 밖으로 버려지는 잔사는 흙을 살리는 퇴비가 되고 작물을 키우는 비료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잔사를 방치하면 게으르거나 흙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농사도 모르는 초보농부로 취급하기도 한다. 물론, 농사를 짓고 남은 잔사를 흙으로 다시 돌려주거나 겨울에도 풀을 키워서 지력을 높이는 농부도 많다.
  
무경운으로 토마토를 재배한 밭은 잔사를 흙으로 돌려준다
▲ 유기물 순환 무경운으로 토마토를 재배한 밭은 잔사를 흙으로 돌려준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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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운 토마토밭은 잔사와 낙엽등의 유기물로 겉흙을 덮었다.
▲ 토마토 무경운 토마토밭은 잔사와 낙엽등의 유기물로 겉흙을 덮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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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모르고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처음 시작할 무렵 유기 농사를 하는 농부를 겨울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다른 밭과 다르게 그의 밭에는 수확은 끝났지만 고추 대가 앙상하게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고, 고추 대를 뽑아서 보여준 줄기는 수분이 말라서 '뚝뚝' 부러졌지만 뿌리는 살아 있었다.

"고추는 다년생 나무지만 겨울을 견디지 못해서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죠. 그러나 살아 있는 뿌리 주변(근권)으로 많은 미생물과 공생하면서 양분(유기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내년에 농사가 시작될 때 고추 잔사는 흙으로 돌려줍니다."

아토피로 힘들어 하는 아들을 위해 귀농을 한 그는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 마을에서 하는 것처럼 잔사를 태우거나 버렸다. 화학농약에 대한 불신으로 유기농사를 시작했지만 몇 년 동안 병충해에 시달리고, 볼 품 없는 농산물을 팔지 못해서 힘들었다고 한다.

농사에 대한 고민과 공부를 하면서 흙을 모르고 농사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방법으로 고랑에 풀을 키워보고 잔사와 부엽토를 흙으로 돌려주면서 조금씩 변화를 보였고 안정되는데 10년이 걸렸다.
  
흙을 갈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만들고 무경운을 한다
▲ 무경운 흙을 갈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만들고 무경운을 한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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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맨살을 보이지 마라 

겨울에 황량한 사막처럼 겉흙을 드러낸 밭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고운 흙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침식이 계속된다. 비바람에 노출된 흙은 계속되는 침식으로 딱딱한 경반층을 드러내고 유기물과 미생물이 부족하여 지력이 약해지고 결국에는 농사가 어렵게 된다.

흙도 휴식이 필요하지만 맨땅으로 방치하는 것은 좋지 않다. 월동작물을 재배하거나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잡초를 키워서 겉흙이 보이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녹비식물(비료효과가 높은 풀)을 겨울 동안 키워서 봄에 흙으로 돌려보내면 지력을 높일 수 있다.

흙을 붙들고 있는 뿌리는 흙이 사라지는 침식을 예방하고 미생물과의 공생으로 공극(흙속으로 물과 산소가 순환되는 공간)을 만들고 양분을 축적시킨다.

식물은 기후위기의 온난화를 만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면 토양미생물이 분해를 하고 흙속에 탄소로 저장된다. 농사에서 퇴비(탄소와 질소로 만들어진 유기물)를 사용하는 것은 미생물의 생명활동을 돕고, 분해과정을 거쳐 부식(humus)의 무기물로 저장되면 식물의 양분으로 순환된다.
  
무경운 밭에서 풀과 함께 월동을 하는 꼬깔양배추
▲ 풀과 함께 무경운 밭에서 풀과 함께 월동을 하는 꼬깔양배추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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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시간으로 생각하라

실상사 농장은 탈곡하고 남은 볏짚은 논으로 돌려보내고, 쌀을 도정할 때 나오는 왕겨와 미강은 미생물발효를 한 후에 퇴비로 사용한다. 해마다 토종 앉은키 밀을 파종하고 지력이 떨어진 밭에는 녹비식물로 효과가 좋은 호밀을 뿌렸다.

마늘과 양파를 키우는 밭의 일부는 낙엽과 볏짚으로 흙을 덮어서 침식을 예방하고 작물생육에 방해가 되는 풀의 기운을 꺾는다. 작물을 수확할 때가 되면 흙을 덮었던 낙엽과 볏짚의 유기물은 미생물에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월동을 하는 양파와 마늘밭에 낙엽등의 유기물로 흙을 덮었다
▲ 유기물덮개 월동을 하는 양파와 마늘밭에 낙엽등의 유기물로 흙을 덮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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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갈지 않고 무경운으로 재배하는 밭은 풀이 흙을 덮은 채로 작물과 함께 월동을 한다. 흙이 살아야 건강한 농사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속가능한 생물다양성의 농사를 실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식물과 미생물의 공생으로 흙이 만들어지며, 다른 생명체들이 생겨나고 살아가는데지구의 나이 45억년에서 6억년의 시간밖에 안 되었다. 흙을 되살리는 시간이 10년이라고 해도 흙의 시간으로 보면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인간의 시간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자연의 시간으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생태계와 풀과 벌레를 적으로 여기지 않는 농사의 실천은 자연을 바라보는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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