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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지내온 길을 되새겨보면서 국가 미래의 꿈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데에 역사소설만큼 영향을 끼치는 분야가 있을까? 과거에 대해 공통적인 인식이라는 토대를 공유한 다음, 자연스럽게 미래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1923~1996)가 존경받는 이유는 아직 패전의 그림자가 일본사회 구석구석을 배회하던 1960년대 역사소설을 통해 전쟁을 되돌아보면서 미래지향 메시지를 일본 국민에게 심으려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시바는 많은 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는 그의 지향점을 독자들이 공감하면서 따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메이지 유신기 직전 시바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요시다 쇼인, 그리고 그의 한반도 단상(断想)에 대해 두 차례로 나눠 살펴보려고 한다.

시바에 대한 칭송과 비판을 정리하면 이렇다. 역사에서 후미진 곳을 들춰내 다시 조명하여,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다. 이제까지 인정받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한 인물, 역사의 중심 무대에서 좀 떨어진 위치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한 주인공을 찾아내 조명을 비추고 있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중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떠한 사실을 선택하는가는 작가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가능한 일이다.

반면 시바에 대한 비판은 이제까지 보편적으로 수용해온 역사관과 가치관을 경시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소설 <세상에 사는 매일> 표지
 소설 <세상에 사는 매일> 표지
ⓒ 김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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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료타로의 본명은 후꾸다 테이이찌(福田定一)인데, 필명에는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을 뛰어넘는 타로(太郎는 장남을 뜻하는 일본인)가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시바의 역사소설은 메이지유신기를 전후로 하여 일본이 지향하려 했던 목표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망이란 소설을 통해 소개된 <료마가 간다>,<언덕 위에 구름>와 같이,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주역과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활약한 주인공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써내었다.

그는 1969년 12월부터 주간아사히에 연재한 소설 <세상에 사는 매일>(世に棲む日日)을 통해 요시다 쇼인을 소개하고 있다. 오오사까 출신인 시바는 하기출신으로 오오사까에서 성공한 실업가 스기 미찌스께(杉道助1884~1964)라는 인물을 연결고리로 하여, 독자를 하기로 안내하고 있다. 패전후 오오사까를 대표하는 실업가인 스기를 소개한 이유는 증조부가 요시다 쇼인의 아버지이고, 조부는 쇼인의 형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요시다 쇼인도 스기(杉)가 출신이었다.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의 옛집에서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의 옛집에서
ⓒ 김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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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는 1946년 오오사까 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취임하여 관서지역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힘을 기울이는데, 1950년 민간방송국을 설립하고, 1951년에는 해외시장조사회(현 일본무역진흥기구)를 설립하는 등 전후 경제질서를 일으켜 세우는데 공헌을 하였다. 그는 1960년 한일회담 대표로도 참석하고 있다.

소설가 시바가 주목하였던 점은 요시다 가계는 하급무사인 아시가루(足軽) 출신이었는데, 어떻게 쇼인이 일본 전국에 영향을 끼치는 사상가, 교육자로 변모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다. 이를 요시다와 혈연관계가 있는 후손들에게서 찾으려 하고 있다. 또한, 작가 시바가 궁금해 했던 것은 어떻게 죠수번이 사쓰마번과 함께 막부라는 거대한 세력을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의 중심세력으로 우뚝 설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이러한 의문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그는 요시다 쇼인과 그를 따랐던 제자들에 주목하고 있다.

요시다 쇼인이 막부타도와 메이지 유신이라는 허구(虚構)를 그렸던 교육자, 사상가라고 한다면, 그의 제자들은 그의 허구를 실현시키게 된다. 만일 메이지 유신이 실패로 끝났다면, 역사적 사실관계를 중시하는 시바의 관심도 그쳤으라는 짐작이 간다.

요시다가 이루지 못한 꿈은 제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 중심에 다카스기 신사쿠 (高杉晋作)라는 인물이 돋보인다. 막부라는 거대한 권력에 대항하는 요시다의 저항과 옥사로 마친 그의 죽음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대해, 문하생이었던 다카스기가 꿈의 불씨를 이어받고, 손주쿠의 제자들이 막부를 무너뜨려 메이지유신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데 큰 힘을 보태면서 답을 하고 있다.

작은 번에 지나지 않았던 조슈번이 어떻게 막부라는 엄청난 세력에 대항할 수 있었는가? 사실 도쿠가와 막부체제가 성립하는 1600년 경에 모든 번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대신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최고권력에 굴복하는 형식으로 스스로의 번을 보존하려 했던 것이다. 세력을 확장시키면서 막부에 위협이 되는 번의 힘을 줄여간다는 막부와 각번 사이에는 생존을 기준으로 지킬 수 있는 신의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편, 도쿠가와 막부가 특별히 경계했던 번은 조슈번과 사쓰마번이었는데, 260년 후에, 번과 막부 사이의 신의의 한계에 도전한 것이 조슈번과 사쓰마번이었다.

태그:#혐한 , #지한,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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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외형적인 성장과 함께 그 내면에 자리잡은 성숙도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고민하면서 관찰하고 있는 일본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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