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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과 함께 국궁에 입문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활쏘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내가 그나마 올림픽으로 봐서 익숙한 양궁도 아닌, 국궁에 입문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던 소설 <연금술사>의 저자인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신작 <아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책은 활쏘기에 담긴 삶의 정수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활을 쏜다는 것에는 단지 표적을 맞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바로 삶을 대하는 지혜로운 태도와 마음가짐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 몸과 마음의 수양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활을 쏘면서 도를 터득한다는 '궁도(弓道)'의 길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활을 쏘면서 알게 된 것
      
수업 첫날 연습용 활을 힘껏 당겨보았다.
 수업 첫날 연습용 활을 힘껏 당겨보았다.
ⓒ 송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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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쏘기를 배우면서 느낀 점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는 점이었다. 집에서 턱걸이, 팔굽혀 펴기, 물구나무 등의 운동을 2년 이상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도, 활을 당긴 채로 흔들림 없이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지금 당기고 있는 활은 장력이 약한 연습용 활이다. 최종 목표인 145m의 과녁에 쏘기 위해서는 이보다 몇 배는 더 강한 활을 당겨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또 한 가지는 삶을 대하는 지혜가 활쏘기에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국궁을 배운다고 하면 곧바로 화살을 과녁에 쏘는 것부터 배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화살이 없는 빈 활을 당기는 지루한 시간을 거쳐야 한다. 이는 올바른 자세를 체득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지도 사범님은 기본자세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셨다. 이후에 화살을 쏘기 시작하면 과녁 맞히기에만 혈안이 되어 기본 자세의 중요성을 잊기가 쉽기 때문이란다. '과녁 맞히기'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기본자세 숙달'이라는 기존의 목표가 새로운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과녁을 더 잘 맞히는 것이 바른 자세를 갖추는 것보다 더 중요해지면, 기본자세에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을 임의로 수정해버리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사범님은 표적을 잘 맞히기 위해서는 오히려 표적에 대한 생각을 지워야 한다고 말했다. 표적은 잠시 잊고 본인의 자세에서 잘못된 것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말은 맹자의 공손추편(公孫丑篇)에서 유래한 말이다. 발이부중發而不中 반구저기反求諸己.

즉 화살을 쏘아서 맞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다시 살피라는 말이다. 일본 궁도의 명인 '아와 겐조'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그가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중요한 정신 중 하나가 바로 '무심(無心)'이다. 그는 화살을 쏠 때 과녁에 명중시키겠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한다.
 
"화살이 과녁에 명중한다는 건 머릿속에 아무런 목적도 에고도 없는 상태, 즉 자신을 완전히 버린 상태, 어떤 말로 표현하든 간에 이러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표면적인 증거이자 확인에 불과하다."
-아와 겐조

목표를 달성하려거든 오히려 그것을 잊으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삶의 진리는 종종 이런 역설의 가면을 쓰고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언뜻 보면 비합리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삶을 꿰뚫는 송곳 같은 통찰이 담겨있는 것이다. 목표를 지나치게 생각하고 거기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우리 마음은 이내 조급해지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몸과 마음은 경직되고, 시야와 사고의 폭이 좁아진다.

결과에 대해 골몰하기를 중단할 때, 비로소 우리는 평정심을 가지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렇게 결과를 잊고 한 걸음 한 걸음, 과정 자체에 집중하고 충실할 때 아이러니 하게도 목표에 대해서만 생각할 때보다 더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무언가를 멀리 쏘아 보내는 동작은 역설적이게도 궁사 자신에게 돌아와 자아를 마주하게 한다고 파울로 코엘료는 말한다. 화살에는 궁사의 의도가 담겨있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내딛는 모든 발걸음에도 걷는 이의 의도가 담겨있다.

쏘아 보낸 화살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듯, 삶의 길목에 찍힌 자신의 발자국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매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가? 목적만을 생각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삶의 매 순간들을 그저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짧아진 낮과 길어진 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기 좋은 계절이다. 목표만을 좇느라 삶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처음으로 돌아가 점검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개인 블로그 등에도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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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소하고 단순하게 사는 남자. 세상을 더 이롭게,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요. 명상과 마음챙김, 맨몸 운동, 물구나무, 산책, 독서 그리고 그 밖에 '창조'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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