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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기자말]
[기사 수정 : 21일 오전 10시 32분, 기사 재수정 : 2022년 11월 15일 오후 3시 47분]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들판 위에 우뚝 솟은 흰 건물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할 때 친구들이 키득거렸다. "야, 우리 학교 별명 알지? 언덕 위의 하얀 집." 물론 그 말은 정신병원에 대한 조롱의 뜻을 담은 말이었다. 

외딴 시골, 인간미 없는 건물, 공허하거나 공격적인 눈을 한 환자들이 난동을 부리다 제압당해 침대에 묶이는 곳. 당시 '정신병원' 하면 떠올리는 것들이 그렇게 단순했다. 지금도 '정신병원, 정신질환, 정신병자'라는 말 자체가 욕설이나 인신공격에 쓰이는 것을 보면 사회적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나도 길에서 '정신의학과', '신경정신과'라는 간판을 볼 때면 미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편견이 없다고 자부하면서 '저기 다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시선이 의식되겠다' 따위의 생각이나 하던 나는, 10년 후 당당히 정신병 4종 세트를 완성하게 된다.
 
태어나 처음 정신과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어쩐지 돌이킬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태어나 처음 정신과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어쩐지 돌이킬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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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질환은 제쳐두고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충동성 장애) 얘기만 하자. 내 경우는 자가진단 항목을 보고 "어라, 이거 나랑 비슷한데? 혹시 나도 ADHD?"라고 의심한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살면서 반복된 문제들을 목록으로 적은 것이 있었는데 그게 진단 항목들과 95% 일치했다. 심증은 200%였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 정신과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어쩐지 돌이킬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정체불명'이라는 바다 위를 떠돌다 마침내 저 너머에 ADHD라는 진단명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노를 젓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재고 또 쟀다.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 뭉게뭉게 떠올랐다.

① '가만, 그렇게 비싼 검사를 받을 만큼 내 문제가 심각한가?'

보통 정신의학과에서는 성인 ADHD 여부를 알기 위해 1~4가지의 검사를 한다.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에 의한 서면 검사, 종합심리검사(Full battery), 종합주의력검사(CAT), 정량뇌파검사(QEEG)이다.

처음에 알아본 총 검사 비용은 40~50만 원. 당시 내게 너무 큰 돈이었다. 사회생활이 힘들어 죽겠으면서도, 비용을 알자마자 "아, 예~ 다음에 올게요~" 하는 심정이 되었다. ADHD가 맞으면 맞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지금 생활에서 크게 나아지는 게 없을 것도 같았다.    

그때 나는 정신과를 '들어가면 내 의지를 잃는 성'처럼 여겼던 것 같다. 뒤늦게 알았지만 꼭 여러 검사를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검사가 필요한지는 담당의의 판단에 달렸는데, 비교적 저렴한 주의력검사(10만 원 내외)나 뇌파검사(4~5만 원 수준)만 해도 신뢰도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종합심리검사는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만, 치료로 이어지는 경우에 한한다). 물론, 나눠서 할 수도 있고 부담이 되면 억지로 받지 않아도 된다.

② '우선 새로 가입할 보험부터 알아보고…'

보험사에서 내 우울증과 ADHD 진료 기록을 보면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해서 가입을 거절할 것 같았다. 그러나 ADHD 검사를 몇 년이나 미룬 내가 보험이라고 바지런히 알아볼 리가. 잘 모르는 분야라며 차일피일하는 사이 증상은 차근차근 심해졌다.

이 부분은 보험마다 차이가 있는데, 사보험 가입 제한은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대체로 치료 및 투약 종료 후 5년이 지나면 가입에 문제가 없다. 특히 약물처방 없이 일회적으로 면담한 경우나 단순 불면증으로 짧은 치료를 받은 경우, 우울증이었지만 완치되어 약을 끊은 경우 등은 거절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설명이다.

참고로 2016년 9월에 의료법이 개정되어 국민건강보험이 성인 ADHD 치료에도 적용되고 있다. 또 2016년 1월 1일 이후 의료실손보험에 가입한 경우는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ADHD, 틱장애 등 정신장애도 진료비와 약제비(건보 적용 부분)에 대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③ '지금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나중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어'

나름대로 쿨했던 걸까. 정신과 진단명을 받는 것은 괜찮았다. 하지만 의료 기록이 남는 점에는 쿨할 수 없었다. '정신과 불이익'으로 검색해 보면 어디나 같은 답변이 보였다. 법률에 관계된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도 본인 동의 없이 의료 이용 정보를 열람할 수 없다는 것. 사기업은 물론이고 환자의 부모라도 마음대로 볼 수 없다.

말은 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닌가? 일어나선 안 되는 일도 흔히 일어나던데… 나는 사회에 대한 불신이 깊은 인간이었다. 그런데 나만의 걱정은 아닌 듯하다. 올해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신건강문제 경험자 중 누군가와 상담하거나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은 25.3%에 그친다.

병원 치료를 받기까지 고민한 이유를 보면 동질감이 느껴지는 한편 안타깝다. 가장 많은 답변은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18.9%), 다음은 '그냥 두면 나아질 것 같아서'(14.1%)다. 두려움이 큰 것은 사회 분위기가 그만큼 경쟁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장점만 최대한 키워내도 생존은 점점 더 힘들어지니, 특히 취업준비생과 사회초년생들은 '정신과 진료가 평생 약점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마저 끌어안는다. 청소년층은 가족의 반대라는 높은 장벽에 부딪치기도 쉽다.

사회적 불이익을 염려해 정신건강의학과를 꺼리는 사람들을 위해 정신질환 코드인 'F' 대신 상담 코드인 'Z'코드로 진료받을 수 있도록 의료보험제도가 개정되었다. 상담 코드로 진료받으면 국민건강보험 혜택은 주어지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질환명은 등록되지 않는다. 다만 이 경우에 약 처방이나 일부 검사는 받을 수 없고, 담당 의사에게 상담 코드로 진료받겠다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Z코드로 진료를 받았는데도 정신과 방문 이력만으로 보험 가입을 거절하는 경우는 위법이다).

약이 필요한데 질환명이 등록되지 않게 처방받아야 한다면 국민건강보험 혜택 없이 비급여로 진료를 받는 방법이 있다. 단, 이렇게 하면 3~5배 많은 금액을 내야 한다. 심리센터는 의료 기록이 남지 않으니 해당 질환에 전문성이 있는 심리센터를 찾아서 상담을 받아볼 수도 있다.

비용이 부담되거나 병원 방문이 내키지 않는다면, 보건소 산하기관인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전화 상담이나 대면 상담을 이용해볼 수 있다. 온라인에서 '정신건강복지센터'를 검색하면 내가 속한 구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위치가 나온다. 무료로 일정 회기 상담도 받을 수 있고 적절한 병원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치료비를 지원하는 '정신질환자 치료비 지원 사업'도 있으니 검색을 통해 현재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자신이 지원 유형과 소득 기준에 부합하는지 알아본 뒤 정확히 문의해 보자. 혼자 고립돼 있는 것보다 안전한 방법들이다.

멀리 보이는 저 땅이 살 만한 육지인지

오랫동안 '웬만한 병은 노력으로 낫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하지만 더 나아질 수 없다고 여기던 때, 종신형처럼 무거운 우울과 절망을 혼자서 걷어낼 힘은 내게 없었다. 터널 시야에 단단히 갇혀, '나는 노력할수록 나와 주변을 망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필요했던 건 내 마음과 머릿속을 자세히 들여다봐 주는 누군가였다. 병원에 부담 없이 가게 된 후 가장 좋은 점도, 내 상태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모두가 "에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라며 넘기던 문제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고민해 주는 존재가 있다. 그 사실이 현실에 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안정감과 용기를 준다. 오늘이 어제와 다를 바 없어 보일 때, 아니 어제보다 더 나빠 보일 때도 말이다.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은 뒤 '성인 ADHD 전문가'를 만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정보에 어두운데 판단력마저 없었으니, 상처를 받고 돌아오면 '치료'라는 목적지로 나아갈 힘을 잃기도 했다. 지금도 검사와 약물 치료가 모든 사람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ADHD처럼 완치가 아니라 조절과 관리가 최선인 '반려질병'들도 많으니까.
 
다들 누군가의 도움으로 단 며칠을 항해할 힘을 얻고, 내가 살기에 적합한 다른 환경으로 또 나아가면서 사는 게 아닐까. 두려움과 망설임도 어딘가에 발딛고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 표류 다들 누군가의 도움으로 단 며칠을 항해할 힘을 얻고, 내가 살기에 적합한 다른 환경으로 또 나아가면서 사는 게 아닐까. 두려움과 망설임도 어딘가에 발딛고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 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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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평선 끝에 보이는 육지가 살 만한 땅인지 한번 가 보기는 해야 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처럼 인생을 행복으로 채워주는 파라다이스는 아닐 수 있고, 며칠 묵었다가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서진 배를 타고 그대로 망망대해를 떠돌기만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어쩌면, 항해에 필요한 물자나 오랜만의 편안한 휴식을 얻게 될 수도 있다.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와 몸이 통증을 느낄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곳이 같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혹시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쩐지, 몸 아플 때보다 '그때'가 훨씬 힘들더라니." 마음도 결국 몸의 일부다.

그러니 부디 그 누구도 자신이 망가질 때까지 고립되어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욱이 그 망설임이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더 아프기 때문'은 아니어야 한다. 상담센터도, 정신과도 별종들의 세계가 아니다. 남은 삶에서 무슨 일을 겪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누구나' 아플 수 있다는 것, 그게 사회에 속할 자격이 없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 가만, 너무 당연한 얘기인가?

태그:#ADHD, #성인ADHD, #정신과, #우울증, #사회적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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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단단해지지 않아도 좋다는 단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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