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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꽃을 만난 것은 작년 봄, 동네 길 모퉁이에서였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예쁜 꽃이 어느 집 담장 바깥쪽에 피어 있었다. 너무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이 참 예뻤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괜시리 그 앞에 멈춰서 내다보기도 하고, 산책하면서 기웃거리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이름도 모르는 이 꽃을 얻자고 그 집 초인종을 누르기까지는 좀 뻘쭘하여 애태우며 그렇게 여름이 지나갔다. 그 꽃은 계절이 바뀌어도 계속 피고 있었다.
 
동네 어귀에 핀 두 가지 색상의 당아욱 꽃
 동네 어귀에 핀 두 가지 색상의 당아욱 꽃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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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을 어느 날, 나보다 훨씬 더 꽃을 좋아하는 이웃집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도 그 꽃에 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미 집 주인과 이야기를 나눠서 씨앗을 받아 놓은 참이었다. 같은 꽃을 이야기 한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반가워하더니, 몇 개 안 되는 꽃씨를 내게 나눠 주었다. 

사진으로 검색을 해보니 꽃의 이름은 '맬로우(mallow)'였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아욱이라는 게 아닌가! 나는 한국에서 텃밭을 키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아욱이 어떻게 자라는지도 몰랐는데, 그러고보니 잎이 정말 똑같이 생겼다. 그래서 이 서양사람들은 역시 아욱도 먹을 줄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새해로 들어서고 봄이 시작되면서, 텃밭 모임에서 꽃씨 나눔이 있었다. 그 중에서 아욱씨를 나눠주는 분이 있어서 얼씨구나 하고 받아왔다. 보니 씨앗도 똑같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래서 텃밭에 심어두고 나름 들떠 있었다.

싹이 올라오는 모습도 참 예뻤다. 같은 화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이웃에게 받은 씨앗과 텃밭 모임에서 받은 씨앗을 분리해서 파종했다. 아욱 씨앗은 텃밭에 심었고, 맬로우 씨앗은 모종을 만든 후에 온실 옆에 심었다. 
 
잎이 넙적한 아욱(위), 비슷하지만 잎이 작고 꽃이 발달한 당아욱(아래)
 잎이 넙적한 아욱(위), 비슷하지만 잎이 작고 꽃이 발달한 당아욱(아래)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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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라면서 모양이 사못 달랐다. 처음에는 완전히 똑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맬로우는 길쭉하게 자라면서 잎은 크게 발달하지 않았고, 아욱은 큼직한 잎이 턱턱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상해보여서 다시 찾아보니, 맬로우는 당아욱이었다. 아욱국을 끓이는 그 아욱과는 다른 꽃이었던 것이다. 아욱도 꽃이 피기는 하였지만 아주 작고 조용한 느낌의 꽃이었다.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꽃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당아욱은 제법 화려하다. 우리 집에는 밝은 색을 먼저 키우기 시작했고. 이후에 짙은 색을 키웠는데, 봄에 심은 것보다 한 여름에 아무 생각없이 뿌려둔 씨앗이 더 크게 자라서 번성하였다. 그래서 드디어 이 꽃으로 꽃차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여름철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작은 그릇을 챙겨들고 나가서 꽃들을 따가지고 들어오곤 했다. 그리고 하나씩 꽃술을 떼어내고는, 손으로 조심스레 잡아서 하나씩 씻는다. 전에 민들레 꽃차도 만들어봤지만, 당아욱은 그것보다 훨씬 약해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따서 모은 당아욱 꽃
 따서 모은 당아욱 꽃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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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아욱 꽃차 만들기. 마르면서 보라색으로 변한다
 당아욱 꽃차 만들기. 마르면서 보라색으로 변한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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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나 면포에 하나씩 펼쳐 얹어서 조심스레 말려야 한다. 나는 실온에 말리기도 하고 오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어느 쪽을 선택해도 손이 간다. 실온에 말리면 건조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자칫하면 다 펼쳐놓았던 꽃이 혼자 오므라들어 버리기도 한다. 

오븐을 사용한다면, 오븐의 최저 온도에 5분 넣었다가, 다시 5분 꺼냈다가를 여러차례 반복하며 완전히 마를 때까지 작업한다. 한꺼번에 빨리 말리려고 하면 자칫 탈 수 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해서 보통 이틀간 말린다.
 
말린 꽃잎을 접시에 늘어놓아 보았더니 화려한 문양의 접시가 되었다.
 말린 꽃잎을 접시에 늘어놓아 보았더니 화려한 문양의 접시가 되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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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이 되면, 유리병에 가지런히 모아 밀봉한다. 습기가 들어가면 좋지 않다. 나는 작은 유리병에 담았는데도 한 병에 50개나 들어갔다. 선물용으로, 스티커를 만들어서 붙이고 박스에 담아 보았다. 소중한 분에게 크리스마스나 감사 인사로 약소하게 전하기에 딱 좋은 모양새가 완성 되었다. 
 
당아욱 꽃차 선물세트
 당아욱 꽃차 선물세트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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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때 나는 보통 뜨거운 물 한 잔에 꽃 세 송이 정도를 넣는다. 그러면 꽃에서 푸른 물이 빠져서 찻물을 물들인다. 취향에 따라서 다섯 송이를 넣어서 푸른 색이 진하게 배어나오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차를 준비하고는 마지막에 한 송이만 위에 띄워도 예쁜 모양을 눈으로 즐길 수 있다. 말라 있던 꽃잎을 찻잔에 띄우면 아름답게 새로이 피어난다.
 
당아욱 꽃차를 띄운 모습. 물이 닿으면 새로이 피어난다
 당아욱 꽃차를 띄운 모습. 물이 닿으면 새로이 피어난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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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러나온 찻잔에 레몬즙을 떨어뜨리면 찻물이 연분홍색으로 변한다. 맨 처음 꽃피었을 때의 색을 되찾고 싶은 것일까? 레몬즙이 직접 닿은 자리는 꽃잎도 선명한 분홍빛을 띤다.
 
레몬즙을 뿌리면 찻물과 꽃이 점차 분홍으로 바뀌어간다
 레몬즙을 뿌리면 찻물과 꽃이 점차 분홍으로 바뀌어간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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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아욱 꽃차는 기관지염에 좋고, 이뇨작용을 해주어 부인병에 좋고, 염증을 줄여준다고 한다. 그런 것을 다 떠나서 아름답게 펼쳐진 꽃이 잔 위에 떠있는 것을 보면 심리적인 행복감을 주는 점도 크다. 

이제 매일 비 내리는 밴쿠버의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 문턱으로 들어서려 한다. 오늘 보니, 이제 꽃은 거의 안 필 거 같다. 물론 한두 송이 정도는 당분간 계속 피겠지만... 겨울 동안은 꽃차를 마시며 그리움을 달래보련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같은 내용이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


태그:#당아욱, #꽃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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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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