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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코인원 고객센터 가상화폐 시세 현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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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제자들과의 통화 중에 들었던 이야기다. 최근 들어 대학 사학과에 비트코인 학습 모임이 인기를 끌고, 국문학과에 부동산 투자를 공부하는 모임이 생겨났다고 한다. 사학과나 국문학과라면 으레 있을 것 같은 답사나 강독 관련 모임은 입학할 때부터 없었다고 했다.

답사도 없이 역사를 공부하고, 강독도 없이 문학을 공부하는 곳을 과연 대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마 그들에게 따져 물을 순 없었지만, 그럼 사학과와 국문학과에 굳이 진학한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전공과 무관한 애먼 분야를 그 비싼 등록금 내가며 공부할 이유가 없잖나.

"아시다시피, 답사나 강독이 아무런 도움도 안 되잖아요."

학과마다 고유한 특성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고 했더니, 그들이 대꾸하듯 건넨 말이다. 졸업 후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다. 당장 전공 학과의 이름부터 취업에 감점 요인이 큰 상황에서 '기본 준비'만으로 뛰고 나는 다른 학과 경쟁자들을 따라잡기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기본 준비'란 토익 점수와 자격증 따위를 말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전공 학점 외에 토익과 자격증은 '스펙'으로 불렸는데, 이젠 그 둘 모두가 갖추어야 할 '기본 준비'로 하향화한 것이다. '문송(문과라서 죄송)'한 아이들의 '원죄'라는 푸념까지 늘어놓았다.

"적어도 문과에선 전공 학과가 큰 의미가 없다는 걸 대학에 와서야 알게 됐어요. 희망 학과 진학과 전공 공부에 유리하도록 내신 성적을 관리하고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과 창의적 체험활동에 각별하게 신경을 썼는데, 헛심만 쓴 꼴이죠. 정작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과 아무 상관도, 필요도 없거든요."

그는 모든 대학의 모든 학과 아이들이 초등학생 구구단 외우듯 토익을 공부하고 자격증을 준비한다고 장담하듯 말했다. 애초 대학 합격과 동시에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진하는 동기도 여럿 봤다고 했다. 대학은 그저 대졸자 자격을 취득하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했다.

역사학도가 비트코인에, 국문학도가 부동산 투기에 골몰하는 대학

제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대학입시를 위한 준비 기관일 뿐이고, 대학이 취업을 대비한 학원으로 전락한 건 이미 오래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용 동아리들이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대학생조차 사교육비를 걱정하는 시대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역사학도가 비트코인에 목매달고, 국문학도가 부동산 투기에 골몰하는 대학 교육의 파행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걸까. 이토록 학문이 조롱받는 시절이 또 있었을까 싶다. '취업을 위해서 영혼까지 판다'는 대학생의 참담한 현실 앞에 대학은 속수무책 존재 이유를 잃어가고 있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학문을 천시하는 풍토와 대학 교육의 왜곡된 현실을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조차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데 있다. 아이가 관심이라도 보일라치면, 부모와 교사가 나서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해서 어디에 써먹을 거냐며 혀를 끌끌 차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태 전 아이에게 헛바람을 넣지 말라며 한 학부모로부터 쓴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아이가 밥상머리에서 갑자기 사학과로 진로를 바꾸겠다고 말한 걸 두고 문제 삼은 것이다. 지금까지 경영학과나 행정학과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역사 교사인 내가 꼬드겼다고 여기는 듯했다. 

아이가 역사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고 했더니, 사학과에 가서는 졸업 후 취업이 안 된다며 동문서답을 했다. 관심이란 건 나이 들어가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지 않느냐면서, 아이 앞에서 사학과 이야기는 삼가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내색하진 못했지만, 교사로서 적잖이 상처를 받았다. 

6~7년 뒤 졸업 후를 미리 걱정하기보다 아이가 흥미를 갖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조차 마뜩잖게 여기는 눈빛이었다. 그때 입안에서는 '사학과든 경영학과든 취업 가능성으로 치면 오십보백보'라는 말이 맴돌았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바람대로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비트코인, 부동산 갭투자 공부하는 젊은 교사들
 
지난 8월 1일 오전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전·월세 상담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난 8월 1일 오전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전·월세 상담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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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내 인문학 관련 학과 재학생들에겐 복수 전공이 필수라는 이야기도 있다. 대개는 경영과 경제 등 실용 학문이거나 영어와 중국어 등 어학 관련 분야에 발을 걸친다. 심지어 교사를 꿈꾸는 사범대 학생들도 임용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복수 전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들 한다. 

학문 탐구는 뒷전이고 오로지 취업의 유불리에 의해 학과 선택이 결정되는 현실에도, 우리 대학들은 신입생 부족 타령만 늘어놓을 뿐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온하기만 하다. 재학생들이 전공에 상관없이 비트코인과 부동산에 심취해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되레 대학 스스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며 손을 놓아버린 느낌이다.

그렇다고 대학만 탓할 순 없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대학에 온존한 학벌 구조를 핑계 삼아 아이들을 줄 세워 욱여넣는 고등학교 교사들 역시 책임이 가볍지 않다. 일단 대학에 진학만 시키면 그것으로 교사의 역할도 의무도 모두 끝난다고 여긴다. 고백하건대, 학교는 이후 그들의 미래까지 걱정할 겨를이 없다. 

최근엔 학교마다 전가의 보도였던 학벌 구조에 화살을 돌리기도 뭣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명문대 진학을 위한 경쟁이 공정하다고 여기는가 하면, 미래를 위해 주식과 비트코인, 부동산 갭투자 등을 공부하는 젊은 교사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겐 교직이 부업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아이들 앞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은 불가피하다고 선선히 말하는 이들도 있다. 비트코인과 부동산 갭투자를 블루오션이라고 단언하며, 대학의 전공 선택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요즘 학교마다 주식 투자 동아리가 붐을 이루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더 늦기 전에 방과 후 수업에 관련 강의를 개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위기 탓인지, 누군가 비트코인으로 목돈을 벌었다거나 더 늦기 전에 주식을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이들의 카톡 상태 메시지에서조차 종종 등장한다. 한 아이의 카톡엔 아예 '돈은 언제나 옳다!'고 적혀 있었다. 

그저 세대 차이로 눙칠 수 있을까. 동료 교사로서 적잖은 괴리감이 느껴질 때가 많다. 그들은 비트코인과 부동산 갭투자는커녕 주식과 하다못해 로또도 한 번 사본 적 없는 나를 원시인 쳐다보듯 했다. 그런 걸 모르면 요즘 아이들과 소통하기 힘들다며 짐짓 충고하기도 했다. 

시나브로 교단에 서는 이른바 'IMF 세대'

분명 틀린 말은 아닐 테지만, 수긍하려니 왠지 서글프다. 그들이 블루오션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그것들은 하나같이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도구이자, 그 서슬 퍼런 가치관을 내면화한 결과라는 생각에서다. 공존과 협력을 가르쳐야 할 학교 스스로 존재 이유를 배반하는 일탈 행위라고 한다면 억측일까.

'이재에 밝은' 젊은 교사들을 나무라자니 뒤통수가 따갑다. 따지고 보면, 비트코인에 목매단 역사학도와 부동산 투기에 골몰하는 국문학도의 '미래형'일 테니 말이다. 그들에게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의 가치관을 심어준 건 다름 아닌 우리 사회와 학교였다. 곧, 나와 같은 기성세대의 책임인데 누가 누굴 탓하랴. 

섣부른 분석이지만, 학교가 1997년 외환위기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서고 있는 듯하다. 이른바 'IMF 세대'가 시나브로 교단에 서고 있다. 갓 부임한 젊은 교사들은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환위기의 후폭풍 속에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이다. 생존을 위해 단 한 번의 실패와 좌절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정과 학교에서 줄곧 들어온 세대다. 능력주의에 바탕을 둔 공정을 민주주의와 정의로 간주하는 그들이 지금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건 순리다. 교사라고 예외일 순 없다.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보다 나이가 많은 50대 초반의 교사로서, 젊은 교사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뒤로 물러나는 게 맞다. 하지만 종일 시세 확인하느라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그들이 못마땅한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여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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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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