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친구가 없다.
- 명심보감
역설적인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없다. 물이 너무 맑으면 몸을 숨길 수 없어 살기 힘든 것일까?
사실 물은 1급수가 가장 깨끗하고 맑은 물이지만 사람이 마시면 1급수는 너무 깨끗해서 몸속에서 적응이 안 되는 탓에 머시고 나면 설사 같은걸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사람은 물 속에 적당한 미네랄, 탄산가스, 산소, 철, 칼슘 등의 물질과 세균이 포함된 것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고사 중에는 수청무어(水淸無魚) 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로 사람이 너무 결백하면 사람들이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뜻한다.
수청무대어
한나라 때, 한서(漢書)의 저자로 유명한 반고(班固)의 동생인 반초(班超)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의 집안은 형은 대단한 문필가의 집안이었는데 반초 역시 독서를 즐기고 대단히 박학한 사람이었다.
반초는 무예에도 뛰어나 명제(明帝) 때 지금의 신강성(新疆省) 타림 분지의 동쪽에 있었던 선선국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끊임없이 활약한 끝에 서쪽 오랑캐 땅의 50여 나라를 복속시켜 한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쳤다.
그는 그 공으로 고차(庫車:당시 실크로드의 요충지)에 설치되었던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의 도호(都護:총독)가 되어 정원후(定遠候)에 봉해졌다. 반초가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자 후임 도호로 임명된 임상이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서역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을 물었다.
"서역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반초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 성격이 너무 결백하고 조급한 것 같아 그게 걱정이네.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는 살지 않는 법(水淸無大魚)'이지. 마찬가지로 정치도 너무 엄하게 살피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네(人至察卽無徒). 그러니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리도록 하게나."
하지만 임상의 반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묘책을 듣고자 했던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가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임지에 부임한 임상은 이 충고를 따르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다스렸다. 그 결과 반초가 복속시켰던 50여 나라는 임상이 다스린 지 5년 만에 모반을 일으켜 한나라를 떠났으며, 서역도호부도 폐지되고 말았다.
물에 수달이 있으면 물고기가 고달파지고
명나라 세종 때의 이름난 재상 하언(夏言)은 호방하고 준수한 인재로서 종횡으로 웅변과 반박을 늘어놓으면 아무도 굴복시킬 수 없는 세종의 오른팔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간신 엄숭(嚴嵩)의 질투심에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을 당겼다.
엄숭은 자신의 출세에 장애가 되는 하언을 쓰러뜨리리라 결심했다. 그리하여 엄숭은 하언의 약점을 간파한 후, 그 약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와 대조되는 행동했다. 하언은 성질이 불같아서 아랫사람을 매섭게 다스리면, 엄숭은 그 반대로 부드럽고 겸손한 자세로 공경하는 척 사람을 대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숭은 세종을 포함한 상하 모두에게 호감을 사기에 이르렀다. 모두들 하언의 행위에는 불만을 터뜨렸지만 엄숭에 대해서는 좋은 말을 했다. 끝내 하언은 관직에서 쫓겨나 죽음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물에 수달이 있으면 연못의 물고기가 고달파지고, 나라에 강력한 방해 세력이 있으면 백성이 줄어든다. 따라서 숲이 우거진 곳에는 풀이 크게 자라지 못하고, 큰 덩어리 사이에서는 좋은 묘목이 자랄 수 없다."
'너그러움'과 '엄격함'의 중간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은 중국의 송(宋)나라 시대 이름난 신하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책인데, 그 책에 명군으로 이름난 왕이었던 송나라 태종(太宗)때 이야기가 나온다.
변하(卞河)라고 하는 곳에 관리가 물자를 훔쳐서 딴 곳에 팔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그 상소를 본 태종이 담당관 에게 말했다.
"맛있는 즙을 빨아먹으려는 무리들을 근절하기는 어려운 일이지. 그것은 마치 쥐구멍을 막으려는 것과 같아. 눈에 띄는 자만 잡아들이게. 조금 물자를 빼돌린다고 해도 공적인 일에 지장이 없는 한 너무 엄하게 다스리지 말게. 요는 관청의 물자가 지장 없이 잘 운반되도록 힘쓰라는 것이야."
곁에서 재상 여몽정(呂蒙正)이 그 말을 듣고 찬성을 표시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고 꾸짐음이 심하면 사람이 모이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큰 사람이 보면 보통 사람이 하는 짓은 뻔한 일입니다. 큰마음으로 대하여 일이 잘 풀려나갑니다. 옛날에 한나라의 조참(曺參)이란 사람이 법률과 경제를 특히 신중히 관리한 것은 그것이 착한 일과 악한 나쁜 일을 잘 포용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너무 지나치게 엄한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면 실수를 하거나 잘못한 사람들은 몸둘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번 경우도 분부하신 대로 일부러 긁어 부스럼을 내는 것 같은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한번은 태종이 어느 날 여몽정을 붙들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너그러움'과 '엄격함'의 중간에 있다. '너그러움'에 치우치면 법이 제 구실을 못하고 '엄격함'에 치우치면 국민들은 손과 발을 마음대로 놀릴 수 가 없단 말이야."
여몽정은 그 말에도 찬의를 표했다. 송명신언행록는 송나라 명재상 사마광(司馬光)이 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치국삼요 治國三要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세 가지 요체가 있다.
즉 사람을 제대로 뽑아 벼슬자리에 앉히며, 잘 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을 내리고, 잘못 한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업이면서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크고 어려운 일이더라도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자라지 못한다는 사실과 같은 요점을 터득하고 효과적으로 그 일을 수행한다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은 국민이 나랏일을 하는 사람을 뽑는 시대다.
국민이 그들을 제대로 가려 뽑고,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 주는 사회가 선진 사회일 것이다.
지혜는 물과 같은 것이니, 흐르지 않으면 곧 썩는다.
- 송명신언행록 (宋名臣言行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