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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회에는 '아이들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편집자말]
여덟 살 우리 아이는 요즘 놀이터에 한창 빠져 있다. 학교 다녀와서 간식을 먹고 나면 놀이터로 달려 나간다. 그곳에는 이미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매일 오후 울고 웃으며 뺏고 뺏기는, 간혹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져서 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 아이들의 드라마가 그곳에서 펼쳐진다.

올해 육아휴직 후 놀이터 벤치를 지키면서 요즘 아이들의 놀이를 가까이 지켜보았다. 화제가 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보듯 70년대생 우리 세대의 놀이는 주로 신체놀이나 모래, 돌멩이 같은 자연물을 이용한 놀이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요즘 아이들은 술래잡기나 자전거 타기 같은 몸 놀이를 하기도 하지만 문구점이 유행시키는 아이템을 매개로 하는 놀이도 많다.

작년 한 해 동안 아이는 시간만 나면 달려가던 놀이터에 오랫동안 나가지 못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이들에게서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자유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만나고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공간마저 앗아가 버렸다.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바이러스 시대, 뛰놀고 싶은 욕구를 언제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놀이터로 몰려들었다.

봄여름가을... 놀이터에서 내가 본 것들

코로나가 일상화 되면서 아이들은 방과 후나 학원이 끝나고 놀이터에서 삼삼오오 어울려 놀며 제한된 자유나마 누리고 있는 중이다. 이 시기 남자 아이들은 신체 발달로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고 딱히 관계가 선행되지 않아도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즉흥적 놀이를 주로 한다.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즐거운 놀이터의 세계, 처음엔 훈훈한 마음으로 지켜봤는데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기대와 사뭇 달랐다. 조마조마 심장이 두근대는 순간이 어찌나 많은지.

처음 아이는 주로 술래잡기나 자전거 타기 같은 몸 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가끔 술래를 오래 하면 시무룩하기도 하고 계속 즉흥적으로 바뀌는 규칙 때문에 기분이 상해 친구들 간에 실랑이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신나게 놀이터를 누볐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포켓몬 카드 유행이 찾아왔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바닥이나 벤치에 모여 앉아 카드 교환에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요즘 아이들의 놀이 방식이라 이해하려고 했다.
 
한창 포켓몬 카드 교환 놀이 중인 아이들
▲ 포켓몬카드 유행 한창 포켓몬 카드 교환 놀이 중인 아이들
ⓒ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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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 퍼지자 술래잡기를 할 때 다투던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유쾌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카드 교환 중, 작은 실랑이도 있었고 고의적으로 남의 카드를 가져간 친구들도 생겼다. 자신의 카드가 안 보이면 남을 의심하거나 탓하고 친구를 견제하는 일들도 따라왔다.

캐릭터가 멋져서,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저마다 이유는 있겠지만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뽑기 방식의 카드의 판매 시스템 때문에 특별카드를 가지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일이 되었고 카드놀이에 점점 열광적이 되어갔다.

5장들이 한 팩에 천원. 요즘 아이들에게는 쉽게 쓸 수 있는 금액이지만 원하는 특별카드가 나올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아이들은 기대감을 품고 중독처럼 카드를 사고 필요 없는 카드를 아무렇게 버려댔다. 놀이터에 나와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카드와 교환 중 이내 실랑이로 번져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아이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확률형 뽑기식의 포켓몬 카드
▲ 포켓몬 카드 아이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확률형 뽑기식의 포켓몬 카드
ⓒ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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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 앞 뽑기부터 갖은 종류의 카드와 핸드폰 게임에 이르기까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확률형 아이템 전략에 아이들은 쉽게 유혹 당한다. 판매 전략의 덫에 걸려 아이들이 빠져들게 되면서 때로는 극단적으로 남의 것을 탐내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놀이터에서 목격하는 일들을 통해 아이에게 물질보다 친구와의 놀이 자체를 더 소중히 여기도록 거듭 강조하고 있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많은 수의 카드를 가지지 못하는지 속상해 하면서도 조금씩 한정된 카드로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놀이터의 법칙을 배워 나갔다. 

'카드보다 우정이 더 소중해요.' 어느 날 아이가 알림장에 손 글씨로 받아써 온 내용이다. 카드 교환으로 자꾸 사건사고가 생기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해 준 말씀이다. 훈훈한 우정의 드라마만 있기를 바라지만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놀이터의 세계는 대립과 갈등도 가득한 삶의 현장이다. 

달콤살벌한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함께 하는 재미만큼 갈등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수용과 성장도 그 안에는 있다. 요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가족 외에 타인과 어울리는 경험이 많지 않아 자기 중심적인 편이다. 이런 아이들이 놀이터의 시간을 통해 조금씩 사회화란 옷을 입으면서 자신을 지키고 타인과 함께하는 법을 알아간다.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며 커나간다.

때로는 이런 혼란스러운 놀이터의 세계로 아이를 내보내는 것이 힘들다. 어른의 도박을 방불케 하는 유행을 배우게 되는 것도, 거칠고 무례하게 타인을 마음대로 흔들려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우려스럽다.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 고민하며 긴장된 마음으로 감시하듯 벤치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이제 자신도 혼자 잘 놀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망설이면서도 조심할 것들을 한 번 더 일러주고 처음으로 아이를 혼자 놀이터로 내보냈다. 그날 아이는 두 시간 가까이 놀이터에 나가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와 카드 교환을 하다 잠시 갈등도 있었지만 괜찮다고 했다.

가져간 카드도 잘 챙겨왔고 카드를 많이 가진 형을 부러워했지만 그뿐이었다. 마냥 아기 같던 아이가 몇 달 동안 부쩍 성장했음을 깨달았다. 관계적으로나 물질을 대하는 면에서나. 이제 시작이고 무수히 많은 일들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홀로서기 할 자신감을 장착한 아이에게 서운하면서도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온라인이 아닌 곳에서 배우는 체험 삶의 현장

계절이 바뀌고 쌀쌀해지면서 뜨겁기 그지없던 카드의 열풍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안도감도 잠시뿐, 새로운 유행이 또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포켓몬 딱지다. 아이는 새롭게 시작된 유행에 빠져 있는 중이지만 지면 바로 먹히는 살벌한 게임 속에서 연습 게임으로 요령 있게 잘 버티고 있다. 가끔 실랑이를 하거나 본게임으로 딱지를 따먹혀서 눈물범벅으로 달려오기도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놀이터로 뛰어나간다.

학교가 수시로 문을 열고 닫으며 아이들이 모이고 관계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지금,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서로를 만난다. 언제 또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자유를 제한받을지 모르지만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놀이터에서 좌절과 기쁨을 맛보고 세상과 친구들과 관계하는 법을 하나씩 배우며 자라는 중이다.

지난 아홉 달 동안 벤치에 앉아 놀이터의 세계를 관찰하면서 물질적으로 왜곡되어 흐르는 놀이라든가 친구들 간의 이해관계 등 아이가 부딪히고 배워나가야 할 것들이 안쓰럽고 두려운 한편, 잘 헤쳐 나갈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오늘도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 말없이 응원하며 바라본다. 마스크 너머 놀이에 빠진 아이의 생생한 표정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https://m.blog.naver.com/uj0102
https://brunch.co.kr/@mynameisred


group낀40대 http://omn.kr/group/forty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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