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표지
 표지
ⓒ 해냄

관련사진보기

   
졸업한 지 십 년도 넘었지만 고등학교 문학 시간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참고서를 펼친 후 작품 해설을 쭉 칠판에 적어나갔다. 주제, 소재, 배경, 구성 등 수능에 초점을 맞춘 정보로 칠판이 꽉 찼다. 학생들은 말없이 공책에 받아 적기만 했다.

그렇게 수업 시간의 절반을 보냈고, 나머지 절반에는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었다. 틀린 문제를 물어보는 학생이 있으면 이때도 선생님은 정답지에 달린 해설을 읽어줄 뿐이었다(어느 순간부터 질문하는 학생은 나오지 않았다). 난 원래 국어 과목을 가장 좋아했지만 이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이후로는 수학이 더 재밌어질 지경이었다. 수학 선생님은 단순히 공식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 공식이 왜 생긴 건지 증명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었다.

그 선생님의 수업이 지루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그 선생님을 탓할 수도 없다. 수능 점수를 1점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선 암기식, 주입식 교육이 효과적이란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당시 고3이던 나는 학교가 인격 수양, 자기 개발을 위한 곳이 아니라 대학 입시를 위한 공간이라는 걸 체념하듯 받아들인 상태였다. 그 괴로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대학이라는 확실한 탈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선생님이 입을 모아 말했다. 대학만 가면 행복해질 거라고.

나는 대학에 1학기를 보낸 후에야 알았다. 그 말이 거짓말이란 것을. 대학교는 고등학교의 연장선이었다. 토익 시험을 위해 영어단어를 외워야 했고, 학점 관리를 위해 시험 족보를 외워야 했고, 스펙을 쌓기 위해 수행평가를 하듯 대외 활동을 해야 했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는 '대학에 가는 이유와 비전도 없이 그저 대학에 가는 그 자체를 목표로' 삼는 학생들의 실상을 보여준다. 이 책이 가장 먼저 던지는 화두는 '왜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질문하지 않는가'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강의 시간에 교수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기보다는 교수가 하는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받아 적고 그것을 달달 외우려고 한다. 그래서 노트 정리를 잘하는 학생, 암기력이 좋은 사람을 곧 공부를 잘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2010년 9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폐막 연설을 끝내고 돌발 제안을 했다.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드리고 싶군요." 개최국 역할을 훌륭히 해낸 한국에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그 순간 손을 든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유일하게 손을 든 기자는 중국의 CCTV 기자였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기자에게 기회를 먼저 주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국 기자들은 손을 들지 않았다. 결국 그 기회는 중국 기자에게 돌아갔다.

그곳에 있던 한국 기자들 대다수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질문보다는 선생님 말씀을 경청하고 암기하는 방식으로 공부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나대는' 사람을 가만두지 못한다. 요즘은 '인싸'라는 이름으로 그것이 특기로 발휘되는 분위기지만 과연 학문의 영역에서도 그러할까?

대학교에서 어쩌다 질문을 하는 학생은 다른 학생들의 눈총을 받기 쉽다. 만약 강의 시간을 오 분 남겨두고 질문을 던졌다가는 더욱 미운털이 박힌다. 이 책에서는 강의 시간에 학생 중 질문맨을 투입하여 일부러 여러 질문을 던지도록 했는데, 수업이 끝난 뒤 많은 학생들이 '끝나는 시간이 늦어져 짜증났다'는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 학생들 대다수가 아마 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맹목적으로 혹은 타의에 의해 대학에 왔을 것이다. 그들에겐 수업의 내용보다는 시험 성적이 더 중요할 테고, 그렇다 보니 시험에 나오지 않는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쓸데없는 질문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는 이러한 학생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초, 중, 고 내내 잠들어 있던 배움을 향한 호기심이 대학교에서 갑자기 발휘될까? 대학만 가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둘러대는 말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초, 중, 고를 거치며 체화된 수동적인 학습 방법은 대학교까지 이어진다. 아니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될 때까지 이어진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답을 아는 학생이 아니라 질문하는 학생이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문제가 주어지지 않으면 아예 생각하는 법을 모르는 듯하다. '다음 중 옳은 것은 무엇인가' '다음 중 틀린 것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에 길들여진 탓이다.

애초에 '이것은 과연 맞는 말일까?' '이건 좀 틀린 것 같은데?' 같은 의문을 스스로 떠올리는 것이야 말로 생각하는 힘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설사 질문까지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더라도 답은 혼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데, 보기 없이는 답을 떠올리기 힘들다. 한국 학생들의 경우, 1번부터 5번까지 보기가 주어지고 나서야 사고 과정이 시작된다.

EBS에서 방영한 '최고의 교수'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골드스타인 교수는 한국인 유학생들을 가리켜 배움의 욕구가 뛰어난 한편 연장자나 교수에게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말하는 데에 서투르다는 단점을 꼽았다. 그는 그 원인을 교수에서 찾았다.

직업 특성상 교수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특히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그러한 경향이 더 심각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 결과 아시아권 학생들은 연장자나 선생님의 말을 언제나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는 이러한 한국 학생들의 특징을 '아이인 채로 대학에 진학한다'는 말로 표현했다.

문제는 '동기부여'이다. 한국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동기는 성적이다. 대학은 곧 나의 지위와 동일시되기 때문에, 높은 성적을 받는 것이 공부의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이렇다보니 나의 성취감보다는 옆 친구보다 비교 우위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내 생각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발전시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다른 사람은 모르고 나만 아는 정답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최상의 목표이다.

KBS에서 제작한 다큐 '공부하는 인간'을 보면 재미있는 실험이 등장한다. 참가자들을 실험실로 불러 창의력 문제를 풀게 하고 자신의 점수 순위를 참가자들에게 사실과 다르게 알려주었다. 그 후 참가자들에게 유사한 창의력 과제를 주었고 이들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수하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 서양 학생들은 과제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난 반면, 동양 학생들은 그 과제에 흥미를 잃었다. 내 점수가 다른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결과가 반대였다. 서양 학생들은 과제에 흥미를 잃은 반면, 동양 학생들은 더 열심히 문제를 풀었다.

이 실험에 참여한 서울대 학생들은 점수가 낮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다큐 속 나레이션은 이렇게 말한다. '동양 학생들에게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것은 그만큼 참기 힘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부합하려는 동양인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또한 실험 결과를 두고 스티브 하이네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동양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체면인 것 같다. 체면이란 것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기준에 맞추어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서양에서는 체면이 일차적인 문제가 아니다. 서양인에게는 사회적 기준보다 스스로의 기준이 더 중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수험생들이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문제집을 풀고 있을 것이다. 당장 현실이 명문대 졸업생을 더 대우해주는 마당에, 그 학생들에게 입시보다는 네 꿈을 향해 정진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요즘처럼 청년 취업난이 극심한 상황에서, 기업이 원하는 인재보다 네가 꿈꾸는 인재가 되라고 조언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에서는 학생들에게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라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더라도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너를 위한 공부를 하라고 당당히 말해도 괜찮은 건지. 입시 교육의 폐해를 모두가 느끼면서도 교육 제도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제는 교육과 사회를 연계하여 좀 더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할 때이다. 한국에서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같은 책이 필요 없어지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벌써 2022학년도 수능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제작팀 (지은이), 해냄(201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