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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공공성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가족이 주로 담당했던 돌봄이 점차 사회화되고 있다. 유아, 아동, 노인, 장애인 등 자립적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돌봄이 필요하다. 기존에는 가족공동체 안에서 해결했던 돌봄이 점차 사회화되고 있고,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기에 '돌봄권'이라는 사회권적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돌봄 서비스가 이윤 중심의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 공공의 영역에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합의이다. 노인복지법,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장애인활동지원법, 영유아보육법 등 돌봄 관련법을 통해 돌봄 서비스의 유형, 공급 체계, 재원 조달 등을 규정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법률에 따라서 공적 재원을 토대로 서비스가 공급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돌봄의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적 서비스지만 여전히 공급 체계에서 민간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고, 이에 따라 돌봄 서비스 질 및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 서비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노인장기요양 서비스의 서비스 제공 주체는 민간기관이 99%이고 공공기관은 1%에 불과하다. 2019년 말 2만 4953개소 장기요양기관 중 지자체가 설립 주체인 기관은 1.0%이고, 정원 기준으로 3.4%에 불과하다. 보육 역시 전체 공급 시설 중 공공시설 비중이 7% 수준이다. 이렇듯 개인사업자, 영리법인 등 민간이 서비스를 제공할 때 시장 논리에 기반한 과당경쟁으로 인해 서비스 질보다는 양적 확대 중심의 운영을 하게 되고,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등 노동자의 인권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모든 서비스를 공공이 공급할 수는 없지만, 민간 영역을 견인하고, 지속 가능한 서비스 모델을 수립할 수 있는 유형 설정자(pattern setter)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공공 비율이 확보되어야 하는데(이를테면 30% 이상) 현재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회서비스원 논의 경과 및 법률 내용의 문제점

앞선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지난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이 제시되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제기한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취지는 사회서비스 공공 인프라 확대, 직접 운영, 직접 고용을 통한 일자리와 서비스 질 개선, 공적공급 확대가 핵심으로 사회서비스 공급과관련하여 완전히 다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취지를 일부 반영해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공약에 포함되었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정과제에 사회서비스 일자리 34만 개 창출과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등이 채택되었다. 하지만 이후 사회서비스공단이라는 명칭은 사회서비스진흥원, 사회서비스원 등으로 변경되었고, 애초 취지는 퇴색된 채 법률이 만들어졌다.

지난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사회서비스 지원 및 사회서비스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 내년 3월에 시행될 예정이다. 그동안 근거 법률이 없는 상태에서 일부 광역단체가 시범 사업으로 운영해 오다가 이제 법적 근거를 갖게 된 것이다. 법률은 "국공립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을 확충하고, 민간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을 지원"할 책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부과하고 있고, 사회서비스 제공기관 확충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 및 실행 방안을 포함한 사회서비스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법률에 근거해서 공공 인프라가 어느 정도 확대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애초 취지와 달리 명칭 변경 과정에서 전반적으로 축소 지향적인 정부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제정된 법률이 담고 있는 제11조 '사업의 우선 위탁' 조항이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사회서비스 사업을 위탁하는 경우 사회서비스원에 우선 위탁하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마땅한데, 오히려 법률에서는 공개 경쟁 방법을 통하여 해당 사업을 위탁하도록 하고 있고, "민간이 참여하기 어렵거나 공급이 부족한 분야에 신규로 설립하는 사회서비스 제공기관" 등에만 제한적으로 사회서비스원에 우선 위탁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쉽게 얘기하면 민간기관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소위 '돈이 안 되는' 경우만 사회서비스원에 우선 위탁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공개 경쟁을 통해 수탁자를 정하도록 한 것이다. 사회서비스원을 통한 공공 인프라 확충이라는 입법 취지에 오히려 스스로 족쇄를 채운 격이다. "그동안 정부는 부족한 사회서비스 공급 확보를 위해 민간 참여를 확대해 왔으나 서비스 공급기관 간 과도한 경쟁 구조로 인해 서비스 질 관리의 어려움, 서비스 제공 인력 처우 등의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공공성 강화 등 사회서비스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입법 취지와 상반된 내용으로 만들어진 법률이 제대로 기능할지에 대해 출발부터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사회서비스원 시범사업 운영 실태
 
(양난주 외, 2020)
 (양난주 외, 2020)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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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청 협의를 거쳐 2019년 보건복지부 예산안에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사업이 신규로 추가되었다. 2019년 1월에 시범 사업 공모가 시행되었고, 서울시, 경기도, 대구시, 경상남도 등 4개 지역이 시범 사업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이후 2020년 확대 사업 공고를 통해 인천, 세종, 광주, 강원, 충남, 전남이 선정되었다. 2020년 12월 현재 총 11개 지역이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향후 더 넓혀갈 계획에 있다.

양난주 외(2020)에 따르면, 2020년 12월 현재 전국 8개 지역 시범사업에 108개 기관(사업), 고용 인력 2400여 명(본부 인력 제외)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시범 사업임을 감안해도 기대에 못 미치는 턱없이 작은 규모의 사업이다. 사회서비스원 시범 사업과 맞물려서 기대를 모았던 재가 노동자(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등)에 대한 월급제 고용과 관련해서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은 본부 직원 외에 종합재가센터 센터장과 소속 직원 모두 생활임금을 적용한 정규직 월급제로 채용하고 있으나 여타 지역 사회서비스원의 종합재가센터 경우는 주로 시급제(최저시급 적용)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보건복지부가 2019년에 사회서비스원 시범 사업에 대해 제시한 종합재가센터 운영 모델은 기본형의 경우 종사자 100명, 확대형은 종사자 150명으로 제시하고 있다. 서비스 제공 인력은 사회서비스원이 직접 채용하되 월급제 종사자는 상용직 20%, 단시간 월급제 30%, 시급제 50%로 구성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으나 이 운영 모델이 실현된 종합재가센터는 없다. 노동자들의 소속만 바뀌었을 뿐 민간기관 노동 조건과 차이가 없다. 지금까지의 시범 사업이 매우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앞으로 확대될 사업에 대해서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무엇을 개선해야 하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고 하지만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은 다시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시범 사업과 제정된 법률 내용은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라는 취지에 비춰볼 때 미흡한 수준을 넘어서 의미를 왜곡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왜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논의가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되새겨야 한다. 몇 가지 개선 사항에 대해 살펴본다.

첫째, 규모의 경제 효과가 구가될 수 있는 단계적 규모화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의 첫 번째 지표는 공공 공급 비중이다. 이미 대부분의 서비스 공급이 시장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공공과 민간이 충돌되는 문제처럼 비치지만 복지 서비스가 확대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별다른 충돌 없이 단계적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서비스 영역별로 공공 비율이 적어도 30%는 되어야 하고,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은 사회서비스원이 감당해야 한다. 이는 사업의 출발점을 다시 확인하는 차원이다. 이를 위한 우선 과제는 사회서비스원 법률 제11조 '사업의 우선 위탁' 조항의 개정이다.

둘째, 사회서비스원 시범 사업은 공공 인프라 확충이라는 '규모의 경제' 효과만이 아니라 분절적인 서비스 유형의 통합을 통해 '범위의 경제' 효과도 거둘 수 있는 운영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요양, 활동 지원, 노인종합돌봄, 가사 간병 등 바우처 서비스를 모두 제공하는 의미의 '종합재가' 운영모델은 서비스 판매 방식으로 공급되는 유형의 재가 서비스를 수평적으로 모아놓은 것일 뿐 지역 사회에서 한 명의 이용자에게 포괄적인 재가 지원이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종합적인 서비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만들어진 모델이라 보기 어렵다. 분절적이고 파편적인 재가 서비스 제공이 이루어지고 소규모 재가 기관들이 경쟁하고 있는 민간 사회서비스 시장에서 지자체가 설립하는 공공 재가센터의 역할과 기능을 재차 세워야 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필수 인력으로서 재가 종사자를 안정적으로 고용하는 방향으로 종합재가센터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양난주 외, 2020)

셋째, 직영, 직고라는 원칙이 의미 있게 실현될 수 있는 고용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회서비스는 수가라는 공공 재원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사회서비스원도 수가 체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수가 체계가 개선되어야 할 과제도 있지만,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 효과를 살려 운영 모델을 만든다면 큰 추가 비용 없이도 상용직 중심의 월급제 고용을 정착시킬 수 있다. 좋은 돌봄은 좋은 일자리에서 나온다는 단순한 상식을 사회서비스원이 구체적 고용모델로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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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강민정·남우근 외, 2020. 『사회적 돌봄 노동의 가치 제고를 위한 연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양난주 외, 2020. 『사회서비스 공급 체계 개선을 위한 사회서비스원의 중장기 역할과 과제 연구』, 보건복지부 
-최경숙, 2020. 『서울시 장기요양기관 현장 성희롱피해근절 대책 마련 토론회』 자료집. 서울특별시의회·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1, 12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다.


태그:#돌봄노동, #사회서비스원, #공공성, #노동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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