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맨> 포스터

<플랜맨>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대만은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을 가장 잘 막아낸 나라 중 하나다. 전 세계 78억 인구 중 2억5000만 명이 확진된 현재까지, 단 1만6000여 명만이 확진 판정을 받았을 뿐이다. 인구수 대비 0.0006%만 확진돼 3.2%가 확진된 전 세계 평균보다 크게 뛰어난 방역 능력을 자랑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상황을 관리한 한국은 0.007%로 대만의 성과엔 미치지 못했다.

안정적인 방역은 사회 전 부문이 활기를 띄게 했다. 영화산업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대만에서 개봉한 대만영화 <괴짜들의 로맨스>는 한화로 500억 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대만 박스오피스 1위, 역대 5위 기록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 <나의 소녀시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로 한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구가한 대만영화이니만큼 한국에도 수입돼 다음주 개봉할 예정이다.

공개된 시놉시스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강박증을 앓고 있는 남녀가 우연한 만남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세균공포와 대인접촉 공포 같은 설정이 특히 눈길을 끈다. 소위 선진국병이라고도 불리는 강박장애는 최근 몇 년 간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방송인 노홍철씨와 서장훈씨, 허지웅씨가 집안을 과도하게 청결히 관리하는 모습이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게 대표적이다.
  
 <플랜맨> 스틸컷

<플랜맨>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급증하는 선진국병 '강박'

실제로 강박장애는 한국에서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매년 5% 이상 늘어난 강박장애는 2019년 처음으로 3만 명을 넘겼다. 병원치료를 받은 이들만 잡힌 통계이니만큼 실제 강박장애를 가진 이들은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강박장애를 호소하는 환자 중 20대 젊은 층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해 향후 강박장애가 사회문제로 떠오를 가능성도 충분하다. 20대 환자비율은 무려 83.6%다.

이 같은 현상을 반영한 한국영화도 있다. <괴짜들의 로맨스> 시놉시스를 접하는 순간 바로 떠오르는 영화다. 정재영, 한지민, 차예련이 출연한 2013년작 <플랜맨>이 그 주인공이다. 성시흡 감독의 미흡한 연출과 다소 시대를 앞서나간 설정 탓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강박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1만 명이나 늘어난 현 시점에는 되새겨볼 만한 작품이다.

특히 대만에 앞서 한국에서 기존엔 잘 다뤄지지 않던 강박장애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시대적 현상을 앞장서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할 지점도 있다.
 
 <플랜맨> 스틸컷

<플랜맨>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대만에 7년 앞선 강박 소재 로코

영화엔 강박증을 호소하는 남녀가 등장한다. 6시 정각 기상, 6시35분 샤워, 8시 정각에 옷을 입고 8시30분에 집을 나서서는, 8시42분에 직장 앞 횡단보도를 건너기까지, 꼭 짜인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해야하는 남자 정석(정재영 분)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는 그의 유별난 모습은 동료 직원들에게도 경악의 대상이다. 그가 어찌나 남달랐는지, 영화 속 한 차례 지각을 한 걸 갖고 전 직원이 박수를 아끼지 않았을 정도다.

그런 그의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정석에겐 운명이라 할 만한 이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현호(차예련 분)다. 모든 상품을 강박적으로 정리하고 매장 내 청소도 완벽이란 말이 어울릴 만큼 해내는 그녀는 정석에겐 세상 유일무이한 짝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완벽한 계획을 짜 현호에게 접근하려는 정석의 결심으로부터 출발한다.

강박증을 가진 남녀의 로맨스를 다룰 것 같았던 영화는 어느 순간 방향을 급선회한다. 정석의 곁에 현호 대신 세상 털털한 여인 소정(한지민 분)을 다가서게 하는 것이다. 정석을 현호와 이어주는 조건으로 정석을 자신의 밴드에 영입하려는 소정의 계획이 먹혀들어가며 영화는 로맨틱코미디의 급물살을 탄다.
 
 <플랜맨> 스틸컷

<플랜맨>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가까이 다가온 강박, 한국과 대만 어떻게 다를까

한국에서 강박장애는 주로 공포나 스릴러의 소재로 단편적으로 활용돼 왔다. 낯선 삶을 흥밋거리로 다루는 TV프로그램처럼 결벽장애나 저장장애를 가진 인물을 낯설게 등장시켰던 것이다. 희대의 악역인 <공공의적>의 규환(이성재 분)이나 <숨바꼭질>의 성수(손현주 분) 같은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자연과 인간을 떨어뜨려놓는 현대사회에서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적 인식은 모든 걸 통제해야만 한다는 강박의 제반환경을 제공한다. 여기에 마음처럼 되지 않는 무력감이 더해지며 인간은 제 손이 닿는 한 모든 걸 통제하려 한다. 현대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불안과 스트레스는 이 같은 강박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강박 역시 심해질 것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향후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소재가 끊이지 않고 발굴될 것이다.

<플랜맨>은 강박증 환자와 또 다른 상처를 안은 이가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결말로 이어졌다. <괴짜들의 로맨스>는 그와는 다른 각도로 강박장애를 바라본 것으로 알려졌다. 강박장애를 대하는 두 나라의 시선이 얼마나 다르고 또 같을지 몹시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플랜맨 롯데엔터테인먼트 강박장애 성시흡 김성호의 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