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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회에는 '아이들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편집자말]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학교폭력으로 K는 학교에 가는 것을 거부하다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처음 K를 만났을 때 마스크를 쓰고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얼굴과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손목에는 잔금이 간 붉은 흔적이 있었다. 날카로운 파일 끝으로 피를 낸 자국이라고 했다. 마음이 답답할 때, 피를 내면 후련한 마음이 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S가 고등학생일 때 불면과 우울이 심각해서 상담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배, 허벅지 안쪽 등에 상처를 낸다고 했다. 성적도 상위권이어서 친구들 사이에서 완벽한 모범생으로 인정받는 S는, 명문대를 가야 부모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성적이 잘 안 나오거나 엄마의 잔소리가 압박감으로 느껴지는 날이면 방에 들어가 엄마 몰래 자해를 해왔다고 이야기했다.

비자살적 자해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방식으로 마음의 병을 표현하는 요즘 아이들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방식으로 마음의 병을 표현하는 요즘 아이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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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청소년 상담사로 아이들과 만난 지 십여년이 되었다. 한국과는 조금 다른 환경이지만 이곳에서도 마음이 아픈 청소년 아이들이 상담실 문을 두드린다. 최근 몇 년간, 마음이 아파서 나를 찾아온 아이들 중 몸에 상처를 내고 흔적을 남기는, 자살 시도가 아닌 자해(비자살적 자해)에 중독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체험한다.

'비자살적 자해'는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단순히 현재의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감정을 발산하는 방법으로 시도하는 자해를 말한다. 스트레스 상황이나 불안, 우울의 감정으로 인해 생기는 마음의 압박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할 때, 자신의 신체에 흔적을 남기고 피를 보며 마음을 달래고 긴장을 푸는 부정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해는 음주나 쇼핑, 마약처럼 한번 시작하면 잘 멈추어지지 않는 중독의 양상을 띠고 있어서 갈수록 심해지거나 끊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자해는 SNS로 소통하고 생활을 공유하는 문화가 청소년의 삶에 깊이 확산이 되며 좀 더 표면화되고 과감해지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인스타그램은 지난 2019년부터 자해와 관련된 이미지들을 삭제하고 자해 사진에 대한 검색과 해시태그를 모두 금지시켰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해를 인증하고 과시하는 게시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났던, 자해를 하는 친구들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공통된 심리가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도 서투르고, 만약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감에 잠겨 있는 아이들이었다.

자신이 변화시킬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아무것도 없다는 막막한 심정일 때, 유일하게 자신이 콘트롤할 수 있는 자신의 신체에 흔적을 남기고 괴롭히며 쾌감을 느끼는 일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다

아이들이 이러한 막막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해받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리고 미숙하다는 이유로 감정이 무시되어 왔거나, 아이가 가진 문제를 하찮게 취급하면 아이들은 건강한 정서 조절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이 자라게 된다.

자신의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 수치심이 들거나 스스로가 싫어지는 순간에 그 마음을 안전하게 털어놓고 이해받을 수 있는 대상이 없다면,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방에 들어가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게 된다. 그 어둡고 외로운 세상에서 자신의 감정이 일시적으로라도 위로받는 경험을 자해를 통해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해는 심리적 위안을 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아이들이 스스로를 체벌하는 행위일 수도 있고, 자신의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외부에 알리고 도움을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자해 문제를 알게 되었을 때, 무조건 야단을 쳐서도 안 되고, 별일 아닌 일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자해 행동'을 문제삼기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아이의 마음이 무엇인지 살피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 스스로도 자해가 옳지 못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기 때문에 자해 자체를 함부로 나무라거나 막으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자해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자해 행동 자체만을 나무라거나 금지한다고 해서 멈출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해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아이의 마음과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주고, 자해 행동 이외에 자신의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조금씩 실천해나가며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전에도 지금도 학업 스트레스와 가정 문제, 교우 관계 등으로 인한 우울과 불안이 청소년 문제의 주요 이슈였다. 그런데 표현 방식이 예전과 다르다.

과거의 청소년 문제는 조금 더 격렬하고 과격한 문제들이 많았다. 가출이나 폭력, 또는 자살 시도 같은. 이에 반해 최근 몇 년간은 '비자살적 자해'나 방에서 나오지 않고 대화 단절, 등교 거부 등을 하는 무기력한 아이들의 사례를 많이 만난다. 수동적이고 내면으로 파고드는, 조용하고 음울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가 많아짐을 느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의 십대를 키우는 부모는 대부분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고 육아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온 세대이다. 그만큼 아이들은 학업적인 성취와 재능 발견을 중요시하는 부모의 관심과 지원을 충분히 받으며 부모가 생각하고 계획한 방향으로 키워진 경우가 많다.

그러느라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기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방법을 자율적으로 배우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 문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감정을 외부로 표현하고 다루는 방법을 몰라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방식의 대응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과거와 달라진 청소년들의 표현 방식

지금, 우리는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SNS와 메신저로만 소통하고 있는 아이들은 경험의 질이 낮아졌고, 감정과 정서를 공유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폐쇄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 속에서 마음이 다치고 아픈 아이들은 소통할 대상도 별로 없고, 이해받을 수 있는 기회 또한 한계가 있다. 아이들이 방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식의 대응을 하는 것을 이해해줄 수밖에 없는 시대인 것이다.

폭력이나 비행처럼 과격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무기력이나 비자살적 자해와 같은 수동적이고 조용한 마음의 병은 빨리 발견되기도 어렵고 위급한 문제로 취급되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겉으로 표출하지 않는 이러한 마음의 문제가 좀 더 깊고, 심각한 상황을 야기시킬 수 있다. 자해로 '나 마음이 너무 아파요'라는 사인을 보내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함께 찾아주는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S의 엄마는 상담을 병행하며 아이의 성과에만 집중해온 양육방식을 많이 고치려 노력하셨고, 아이가 가진 장점을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이해하려고 애쓰셨다. 대학생이 된 S는 더 이상 자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에서 일어나고, 밥을 먹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일들이 납덩이처럼 무겁기만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또는 자신의 몸에 흔적을 남기며 위안을 삼는 아이들의 삶이 도처에 있다. 비에 젖은 잎사귀같은 기분으로 학교와 학원에 가고, 시험을 치르고, 집에 들어오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방문을 걸어 잠그고 유튜브와 틱톡 속 영상에 위로받으며 혼자만의 세상으로 몰입하는 아이들. 어른들이 나서 그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요즘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개재됩니다. https://brunch.co.kr/@writeurmind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낀40대, #십대자녀, #사춘기, #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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