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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몸이 허약해서 운동을 잘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몸이 약한 나를 태권도 학원에 보내 주셨지만 거친 운동이 무서워 그만두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있던 곳은 운동장이 아니라 교실이었다. 교실에서 운동장을, 공을 쫒아 뛰는 아이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뜻밖에 운동은 입시와 같이 시작되었다. 중고등학교 때 체육시간은 체력장을 준비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서는 입시에 포함되어 있는 체력장을 통과해야 했다. 체력장은 말 그대로 극기 훈련에 가까웠다. 턱걸이와 멀리뛰기, 윗몸 일으키기, 포환던지기, 가장 고통스러운 오래달리기까지 마치 철인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처럼 모든 종목에 만점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정규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 땡볕 아래서 체력장 연습을 고되게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체력장을 거치면서 나는 오히려 운동을 싫어하고 멀리하게 되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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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운동은 더욱 멀어졌다. 주중에는 야근이나 회식이 일상이었고 주말이면 밀린 잠을 자느라 운동할 시간이 없었다. 가끔 산을 좋아하는 선배들이 따라 억지로 등산에 따라갔지만 적성에는 맞지 않았다.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가 삼십 대 어느 날 가슴속에 답답함과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누구의 탓을 할 수 없지만 숨 가쁘게 사는 것이 뭔가 억울했다. 일단 운동화를 신고 동네 공원으로 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운동을 시작하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하지만 멈추고 않고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때까지 뛰었다. 운동보다는 화풀이에 가까운 달리기였다.

갑작스럽게 시작한 달리기는 자연스럽게 습관으로 이어졌고 한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서 달렸다. 속상한 날, 우울한 날, 화가 날 때면 아무 생각 없이 지칠 때까지 달렸다. 달리다 보면 감정이 가라앉았고 몸이 힘들수록 생각이 단순해졌다. 삼십대의 달리기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달리기가 육체적으로 점점 힘들게 느껴졌고 기록에 집착하면서 의무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십대가 되면서 어느덧 피로가 누적되고 체력이 떨어졌다. 밤늦게까지 무리를 한 다음 날에는 피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모임이나 술자리가 부담스러워지고 만성피로로 의욕도 떨어지고 짜증이 늘었다. 그냥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합리화했지만 점점 먹는 영양제가 가짓수가 많아지고 뱃살이 조금씩 늘었다. 중년의 친구들 모임에서도 점점 건강을 걱정하는 이야기가 많아졌다.

"벌써 혈압약 먹기 시작했어."
"나는 노안이 와서 점점 눈이 안 보인다 어쩌냐."
"요즘 술도 많이 안 마시는데 난 간 수치가 높아서 걱정이다."
"병원에서 당뇨 수치가 높다고 관리하라고 하네."
"난 아예 병원도 못 가겠어. 안 좋은 결과 나올까 봐 건강검진받기도 무섭다."
 

중년의 아저씨들은 운동의 필요성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건강을 위해 하는 일들은 건강식품을 늘려가는 것뿐이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같이 운동을 하고 싶지만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자녀를 챙기고 이런저런 집안 행사에 참여하면 주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처럼 건강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내가 걱정에서 벗어나 중년에 시작한 헬스와 골프는 젊은 시절의 운동과 달랐다. 나는 골프 레슨 시간을 즐기게 되었고 몸을 쓰는 즐거움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뻣뻣한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고 러닝머신 위에서 천천히 걷고 달리면서 무거운 마음을 풀어냈다. 나는 그동안 몸을 돌보는 일에 서툴렀고 몸과 좋은 관계를 맺는 법을 알지 못했다. 운동을 시작하면 몸의 변화에 집중하게 되고 몸은 기계처럼 무리해서 다루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왕자가 알려주는 몸과 친해지는 방법

나는 아직 내 몸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서툴다. 자꾸 안 따라주는 몸을 다그치고 자책하기도 하고 골프 실력이 늘지 않아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운동하면 할수록 몸과 친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득 어린 왕자의 문구가 떠올랐다. 어린 왕자와 여우는 처음에는 서먹서먹한 관계였다. 그러나 함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서로의 모습을 알아가면서 점점 가까워지고 좋은 친구가 된다.
 
어린왕자가 말했다.
'길들인다'게 뭐지?'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만든다고?"
"그래." 여우가 말했다.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날 길들인다며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어린왕자가 말했다.
"우린 길들이는 것만을 알 수 있는 거란다." 여우가 말했다.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 줘."
"언제나 같은 시간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난 점점 행복해지겠지.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 <어린왕자>, 생텍쥐베리, 문예출판사 본문 중에서
 
나는 오늘도 골프라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러 골프 연습장으로 향한다. 비록 아직은 서툴러도 어린 시절 친구와 동네를 뛰어놀던 것처럼 즐겁게 운동을 할 것이다. 골프라는 녀석은 내가 새롭게 알게 된 매력 있고 멋진 친구다. 오늘도 골프라는 친구가 저녁 일곱 시에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미스 샷! 내일은 굿 샷!'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블로그와 브런치에 같이 싣습니다.


태그:#골프, #운동, #중년, #어린왕자, #정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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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일상 여행자로 틈틈이 일상 예술가로 살아갑니다.네이버 블로그 '예술가의 편의점' 과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그림작가 정무훈의 감성워크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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