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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이라고 하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그들은 '국산품을 애용합시다'나 '독도를 지킵시다' 같은 구호를 외치며 어깨띠를 두른 사람들을 떠올리는 듯싶다. 그 구호를 '박근혜를 석방하라', '세월호를 기억하자'로 바꿔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캠페인은 캠페인일 뿐이니까. 잠시 소란스럽다가 오랫동안 잠잠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 하지만 지나고 나면 크게 변한 건 없으니까.

하지만 캠페인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며 정치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이 말은 원래 군사 용어로 사용되었다. 전쟁의 일정 단계를 구성하는 일련의 군사 작전이 그것이다. 정치 영역에서 캠페인은 특정한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펼치는 일련의 조율된 행동 프로그램이다. 그 행동에는 대의를 위한 입장의 개진과 그 입장을 뒷받침하는 교육, 조직, 선전, 시위, 동원 등 정치 활동의 거의 모든 요소들이 망라되어 있다. 전쟁에서나 정치에서나 캠페인의 누적된 성과는 공동체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선거 캠페인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아니 정부 권력을 얻기 위해 시민-유권자의 지지와 성원을 호소하는 활동이기에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특히나 더 중요하다. 다만 선거 캠페인에도 그 나름의 특성은 있다. 인물, 즉 한 사람의 이름과 외모, 삶의 이력과 태도가 그의 정책 공약과 함께 모든 활동의 초점이 된다는 것이다. 함께 하는 정당이 강한 경우라도 부담은 덜겠지만 이런 특성에 큰 변화는 없다. 리더/후보는 캠페인의 선봉에 선다. 동료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기 위해 이슈와 정책을 말하고, 그의 말과 행동이 신뢰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거꾸로 상대 후보는 그렇지 않음을 알리고자 한다.

분열과 대립, 냉소와 비아냥 속의 선거운동  

<라스트 캠페인>은 우리가 익히 아는 존 F. 케네디의 동생이자 케네디 행정부 시절 법무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케네디의 선거 캠페인을 다룬 책이다. 캠페인 앞의 '마지막'이란 수식어는 로버트 케네디가 선거운동 기간에 받았던 엄청난 관심과 사랑, 지지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 예비선거 승리를 끝으로 더 이상 캠페인을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형, 그리고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어느 괴한의 총격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라스트 캠페인>(서스턴 클라크 저, 박상현 역, 2020, 모던아카이브)
 <라스트 캠페인>(서스턴 클라크 저, 박상현 역, 2020, 모던아카이브)
ⓒ 모던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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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가 대통령 예비후보로 나선 1968년은 말 그대로 격동의 시기였다. 1960년부터 시작된 흑인 민권운동은 북부지역 백인 중산층의 지지를 얻으며 64년 민권법 제정으로 각종 인종차별 제도를 금지하고 65년 투표권법 제정으로 북부 뿐 아니라 남부 지역에서도 흑인 투표권을 보장했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로 인해) 민권운동은 내부 분열을 겪었고 그로부터 나온 급진파의 선전․선동 속에 도심 흑인 폭동이 이어져 백인들의 반감과 공포, 분노를 자아냈다.

민권운동을 둘러싼 갈등과 반목은 반전운동으로 더욱 증폭됐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냉전의 관리자로 나서 전 세계에 걸쳐 반공의 보루를 구축했다. 동아시아에서 그것은 프랑스로부터 독립과 함께 분단된 베트남의 남측 정부에 대한 지원으로 나타났다. 내전이 한창인 베트남에 대해 미국은 64년 통킹만 사건 조작을 통해 전쟁에 본격 개입했다. 정계 엘리트의 바람과 달리 이 참전은 대중적 정당성을 얻지 못했고, 67년부터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전운동이 일어났다. 전국 곳곳의 캠퍼스에서 점거와 휴교, 대규모 시위와 유혈 진압이 벌어졌고, 진압 과정에서 학생들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인종 문제에 이어 반전운동이 다시 한 번 온 나라를 반으로 나눈 것이 1960년대 후반이다. 여기에 더해 여성 운동, 환경 운동, 성소수자 운동, 라티노와 원주민 운동, 참여, 직접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신좌파 운동이 분출한 것도 이 시기였다. 로버트 케네디는 그런 분열과 대립, 열정과 폭력, 냉소와 비아냥이 비등하던 시대의 한 가운데서 선거 캠페인을 통해 전쟁 종식과 인종·계층 간 불평등 완화로 미국 사회를 통합하고자 했다.

책에는 케네디의 선거 캠페인이 거의 일단위로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감동을 안겨주는 대목도 많고, 위트 넘치는 장면도 왕왕 보이며, 그의 죽음과 함께하는 결말에서는 안타까움을 지우기 어렵다. 그의 캠페인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적어도 다섯 가지 교훈 정도는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반인륜 범죄 저지른 대통령 존슨을 수배한다"
 “반인륜 범죄 저지른 대통령 존슨을 수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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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판은 민주주의의 비밀 무기"

케네디는 보좌관 존 마틴에게 연설문 초안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그가 예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아들레이 스티븐슨을 위해 썼던 긴 글은 피해달라고 요청했다. 마틴은 미리 써둔 초안을 보여주었고, 케네디는 스티븐슨을 인용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비밀 무기"라고 말한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아마도 자신의 정치 이력과 선거운동을 통해 이를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로버트 케네디는 처음부터 인기 있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진보적 지식인과 청년, 민주당 내 리버럴들은 케네디를 조셉 매카시의 반공주의 캠페인을 도운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상원 부당노동행위 특별위원회 고문 변호사로 일할 때는 노동조합과 범죄조직 간의 연계를 가차 없이 조사한 탓에 조직노동의 호의를 얻기도 어려웠다. 법무부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철강제품 가격인상을 둘러싼 정부와 경영진 간 갈등에서 호전적 전술을 구사해 기업계의 반감을 샀고, 민권운동과 거리를 두며 킹 목사에 대한 FBI의 전화 도청을 승인하기도 했다. 외교정책에서는 대통령이 남베트남 정부를 지원하고 한국의 군부 쿠데타를 인정하는 데도 관여했다.

그러나 형이 사망한 후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하면서 케네디는 과거 냉전반공주의자나 엄격한 법집행자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멕시코 출신 농장노동자들의 조직화를 도왔고 미국에서 가장 열악한 지위에 있던 원주민들의 권익 향상에도 크게 힘썼다. 흑인들을 지원하는 여러 정책 프로그램을 추진하며 민권운동 주류와 급진파 모두로부터 지지를 얻고자 했다. 베트남전에 대해서도 기존의 유보적 입장을 거두고 도덕적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비난하며 전투 중단을 촉구해 반전운동 지지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이런 태도 변화는 케네디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고, 그의 가치관이 크게 바뀐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 선택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로서는 기존 민주당 지방조직 외에 노동자와 농민, 소수 인종과 청년들의 지지를 폭넓게 끌어내야만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케네디가 과거 자기 결정과 행동의 오류를 솔직히 인정하고, 그런 방식으로 시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캔자스주립대 연설에서 케네디는 존슨 대통령의 베트남 정책에 대한 비판을 고백과 사과로 시작했다. "저는 베트남에 관해 초기에 내렸던 여러 의사결정에 관여했습니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경로로 가게 만든 그 결정들 말입니다." 그리고 케네디 행정부가 지지했던 남베트남 정부가 "부패와 비효율, 탐욕으로 가득했음"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이 그렇다면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크니, 저는 역사와 동료 시민들 앞에서 제가 져야 할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오류를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그 오류가 지속되는 상황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비극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삶의 지혜를 얻도록 도와줍니다. … 소포클레스가 쓴 <안티고네>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지만, 훌륭한 사람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고친다. 유일한 죄악은 자만이다.' 그 어느 때보다 바로 지금, 우리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기준에 따라 우리 삶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당신은 정치적 공룡이군요"

"당신은 정치적 공룡이군요." 기자 워렌 로저스가 케네디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가 공룡 같이 거대하게 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말끔하게 잘 짜인 TV 광고' 같은 최신 선거운동 방법 대신 길거리 유세를 고집했기에, 앞으로는 찾아볼 수 없는 멸종 직전의 공룡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로저스의 예측대로 오늘날 정치인들은 TV 광고와 토론, SNS 글쓰기와 댓글, 유튜브 방송과 '좋아요', '구독'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이런 현상은 대면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가 많은 한국에서 특히 더 두드러져 보인다.

이제 선거운동은 참여와 동원이 아니라 연출과 광고가 중심이 되는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는 자원봉사자나 당원, 지지자보다 정치컨설턴트, 여론분석가, 스핀닥터로 불리는 언론담당관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들 덕분에 후보는 준비된 발언, 사전검열을 거친 질문, 자연스럽도록 의도된 행동으로 여론을 좇거나 조작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성공한 대표적 정치인이 있다. 케네디가 나서려 했던 그 대선에서 승리한 리처드 닉슨이다. 그의 선거운동 비밀 지침서에는 이런 말이 나와 있었다고 한다. "일정 짜기의 핵심은 선거운동이 상징적이라는 것이다. 즉 후보가 실제로 무엇을 했느냐보다 무엇을 한 것처럼 보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케네디는 자신이 거리 유세나 자동차 행진, 대중 집회에 집중하는 마지막 후보가 될지 모른다는 데 불편함을 느꼈다. 정치인은 그 일을 잘하든 못하든 유권자들과 직접 만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케네디는 함께 산책하던 보좌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토크빌이 말했듯이, 민주주의에서는 시민들이 우주를 다스리는 신들처럼 최고 권력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이 나라에서 최고의 영예를 얻으려면, 사람들이 교회로 가서 신께 예배 드리듯 시민들을 찾아가 만나야 해요. 그들에게 권력이 있으니까요. TV 카메라 앞에 앉아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죠. … 그런 건 정치가 아니에요. 그러면 사람들이 바라는 것들과 동떨어지게 돼요."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때도 있다. 선거에 익숙한 전문가들 도움 없이 자원봉사자와 지지자들만 믿고 캠페인에 나서는 것도 무모하다. 의심할 여지없이 케네디는 정치적 공룡이 되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렀고 정치 환경도 크게 바뀌었다. 이런 변화를 인정하지 않은 채 케네디가 좋다고 그의 선거운동 방식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고 그의 선거운동에 대한 인식마저 내치는 것은 더 바보 같은 짓이다. 케네디는 "거리 유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고,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직접 만나고 만져본 후보에게 표를 준다"고 생각했다.
 
지지자들 속의 로버트 케네디.
 지지자들 속의 로버트 케네디.
ⓒ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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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정부가 아니라 우리들 각자에게 있습니다"

케네디는 생각이 빠르고 유머 감각을 갖췄을 뿐 아니라 경쟁심도 강했다. 그래서 통상적인 연설보다 질의응답 시간을 더 좋아했고, 적대적인 청중과의 대화도 꺼리지 않았다. 이런 면모는 '큰 정부'를 싫어하는 부유층 자제들이 청중으로 하는 인디애나대학 의과대학원 연설에서도 나타났다. 케네디는 학생들 앞에서 의료계가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해왔다고 지적하며 자신은 의료제도를 뜯어고쳐 전문 의료인이 아닌 사람도 동네 의료센터에서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고 그 비용은 국가가 부담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의료서비스가 부자들을 위한 사치품이 되지 않도록 할" 책임이 학생들에게도 있다고 주장했다.

의대생들은 대체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이는 동네 클리닉은 불필요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했다. 왜 노인사회보장에 지출을 늘리려 하냐고 묻는 학생도 있었다. 흑인은 어차피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도 않는데 도심 빈민가에 있는 의료센터 질이 낮은 게 왜 문제가 되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또 다른 학생은 정부 지원에 대해 이렇게 물었다. "말씀하신 정책들은 다 좋고 훌륭한데, 그 돈은 누가 다 내나요?"

케네디도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질문한 학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큰 소리로 답했다. "학생이 내야죠!" 그리고 강당에 있던 청중들을 향해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리키며 소리쳤다. "학생도! 학생도! 학생도 내야 하고요! … 여기 있는 여러분들이 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잠시 멈췄다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던진 질문의 취지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죠. 중요한 사실은 이 나라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선거 때만 되면 국민을 위한다는 무수한 공약들이 제시된다. 이런 공약, 저런 공약만 제대로 실현된다면, 모든 국민이 행복하고 나라는 선진국 반열에 오를 듯하다. 왜 그러지 못할까? 정치인들이 거짓을 말하고 약속을 어긴 탓일 수도 있다. 야당과 언론이 발목을 잡았을 수도 있다. 관료들의 복지부동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러나 잘 드러나지 않는 진짜 문제는 정부에 모든 책임이 있고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은 정부 대책을 조르고 기다리면 되는 민원인 정도로 남겨둬도 괜찮을까? 후보들 공약처럼 정부가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직장과 지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 영역에 개입하고 규율하고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고사하고 가능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에서 시민권은 통치하고 통치 받는 일을 번갈아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물론 현대 사회와 같은 대규모 공동체에서 일반 시민이 직접 통치에 나서기는 불가능하다. 그들은 대개 정당, 노동조합, 지역모임, 각종 협회 등의 구성원으로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통치에 참여하고 협력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통치는 높이 평가받는 일이고, 통치 받는 것은 민주주의 작동을 위해 수용해야 할 일이다. 정치인들은 통치하기 위해 통치 받을 시민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내며, 마을과 직장의 작은 일부터 나라 전체의 큰 문제까지 모두 해결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한다. 하지만 그 문제의 책임은 시민들에게도 있으며, 따라서 문제를 함께 해결할 책임도 시민들에게 있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 같다.

비록 통치할 수 없지만 통치에 동의하고 협력해야 할 시민에게 책임감을 불어넣는 것은 좋은 선거 전략이다. 그래서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법이나 정책만으로는 인종 간 화해를 보장할 수 없고, 둘로 쪼개진 나라를 하나로 합치는 책임은 모든 미국인들에게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일과 국내에서 소수 인종과 빈곤층을 배려하지 못한 것은 시민들 개개인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로버트 케네디의 연설 장면.
 로버트 케네디의 연설 장면.
ⓒ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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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인 목표를 위해 보수적인 전략을"

이념은 매력적이다. 우리는 이념 내지 이데올로기로 불리는 것의 도움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정치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거리에서 시위대와 마주쳤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여기 대중적 의사의 자발적 표현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집단행동을 통해 우리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정부로부터 정치를 되찾아와야 한다. 무정부주의자의 입장이다. 정상적인 정치과정으로 목표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위험한 행동을 저지르려 한다. 저들의 부당하고 불법적인 행동을 경찰이 나서 저지해야 한다. 보수주의자의 시각이다. 표현과 결사, 이견의 자유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현장이다. 우리 사회의 개방성과 다원주의를 위해 보장하고 장려해야 할 일이다. 자유주의자의 견해이다. 사실이 스스로 말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는 이념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평가하고 바꾸려 한다.

그러나 이념은 매력적인 만큼이나 위험하다. 정치는 이념이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유동적인 때가 많다. 형해화된 이념은 이익과 열정의 여러 조합들이 만들어내는 가능의 공간을 축소한다. 오랫동안 변치 않는 이념, 소수의 전문가들과 정파 구성원들이 만들어낸 이념, 전체를 빈틈없이 아우르며 연결하려는 이념은 파괴적인 효과를 낳는다. 현실을 왜곡하고, 권력자를 위해 남용되며, 공동체를 대립과 반목, 쇠락의 길로 이끈다. 이념 또한 현실의 한 부분이다. 그런 것이 현실보다 더 큰 권력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케네디는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웠다. 이념을 따르기보다 자신이 자라면서 받은 교육, 종교, 경험에 바탕을 둔 원칙을 따랐다. 그 원칙들 중 일부는 보수적으로 비쳤고, 그래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다른 원칙들은 급진적으로 보였고,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케네디는 당시나 지금이나 이념의 기준에서는 누가 봐도 선명하지 않았다. 그는 경제 성장과 개인의 행복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에 회의적이었다. 큰 정부의 정책이 개인의 진취적 태도를 망치지 않을까 우려했고, 지역 단체들의 권한과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연방 정부는 소수 인종을 차별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다른 방법이 없다면 정부가 그들을 고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념에 구속받지 않는 케네디의 태도는 복지정책에 대한 그의 접근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상원의원 케네디는 과거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제거하고자 할 때 보였던 그 맹렬함으로 빈곤 문제를 다뤘다. 빈곤 문제를 이념이 아닌 마음으로 대했기에 그의 제안은 이데올로기와 무관했다. 그는 기존 복지 정책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그런 정책은 개인들로부터 자존감과 공동체 속의 지위를 빼앗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케네디는 지역 거주민들의 참여 없이 도심 지역 환경을 개선할 수 없다고 믿었으며, 빈곤 정책은 지역 단체가 계획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빈곤 퇴치를 위해서는 일자리가 가장 중요한데, 가난한 지역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역 주민과 민간 기업 간의 협력이라고 확신했다.
 
빈민가의 소년을 바라보는 로버트 케네디.
 빈민가의 소년을 바라보는 로버트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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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는 자신의 보수적 입장을 얼마나 강조해야 할지를 두고 보좌관들과 자주 충돌했다. 어떤 때는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케네디는 빈곤 문제와 인종 간 화해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흑인들을 위한 정부 지원이 그들의 폭동에 대한 '보상'이라는 낌새만 보여도 백인 유권자들이 떨어져 나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케네디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지만, 선거운동을 통해 인종 차별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도 시작하고 싶었다. 극단적으로 분열된 나라의 리더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념보다 이성에 의지하며, 진보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보수적인 전략을 사용하자고 호소했다.

"이 나라가 정의로울 때 가장 사랑합니다"

선거운동 기간 중 가장 불미스러운 사건은 케네디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연설할 때 벌어졌다. 어떤 학생이 연단으로 올라가던 케네디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 파시스트 돼지야!"라고 소리쳤다. 연설을 시작하자 평화와자유당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베트콩에게 승리를!" 결국 연설을 중단하고 질문을 받기로 했다. 케네디가 대학생 징집유예와 징집거부자 사면에 반대한다고 하자 한 소년이 고함쳤다. "케네디, 넌 쓰레기야!" 잠시 후 누군가 "옳건 그르건, 이 나라를 믿느냐?"고 물었다. 케네디는 카뮈를 인용하며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지만, 이 나라가 정의로울 때 가장 사랑합니다"라고 답했다.

케네디에게 이념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희생과 가족, 공동체와 애국심에 대한 믿음이었다. 케네디가 전쟁 종식을 강력히 주장하면서도 대학생 징집유예에 반대한 이유는, 그가 가진 애국심의 중심 원칙인 '희생의 평등'에 반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미국인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따라서 미국 정치와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참여할 동등한 책임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대학생 징집유예는 자기 집안 사람들이 전시에 감내했던 희생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큰 형 조지프와 매형 빌리 하팅턴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했다. 둘째 형 존도 2차 대전에 참전했고, 나라를 위해 일하던 중에 사망했다.

케네디는 빈곤과 불평등을 개인 역량이나 계급·인종 격차로 인식한 만큼이나 공동체의 문제로 이해했고, 시민들도 그렇게 받아들이기를 촉구했다. 자신이 참여한 첫 번째 예비선거 지역인 인디애나주에서, 케네디는 '배고픈 미국인들에게 먹을 것을'이라는 제목의 연설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이 지역 지지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인종평등 정책에 반발한 백인 유권자나 정부지출 축소를 바라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공약, 경쟁 상대인 유진 매카시 지지자들을 돌려세울 베트남전에 관한 주장, 인디애나 주민들의 자부심을 북돋울 만한 내용은 없었다. 연설은 인디언 보호구역과 소작농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의 고통 같은 것들로만 채워졌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 우리 조국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식량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풍요 속에서도 미국 어린이들은 굶주리고 있고, 그들의 몸과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상해 있습니다. 미시시피 델타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하고, 그 한 끼조차 빵과 육즙 소스, 옥수수 죽이나 쌀과 콩이 전부인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면서 동료 시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미국이 진정 어떤 나라인지, 미국이 진정 무엇을 대표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질의응답 시간 케네디는 평소 주장을 다시 꺼내들었다. 굶주림과 빈곤을 제거함으로써 베트남전이 이 나라의 영혼에 입힌 상처를 치유하고, 선행을 통해 이 나라를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무기나 재산, 무력이 아닌 이 나라의 행동에서 만족감을 찾으며 우리나라를 명예로운 길로 향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애국심은 철지난 유행가나 시대착오적인 망상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와 같으며, 보편적 이상과 인류애를 지향하는 세계주의를 위해 버려야할 감정이다. 한국에서 그것은 지난 권위주의 시절 암송해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이나 그 시절을 잊지 못한 어르신들이 흔드는 태극기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애국심은 우리의 정치 교육과 이해에 따라 그런 오해와 편견을 넘어서는 덕목이자 가치일 수 있다.

우리는 특정 가족, 특정 동네, 특정 직장, 특정 나라의 구성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살아간다. 이 특정한 것들의 조합이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며, 내가 속하고 나와 가까운 사람, 지역, 직업, 국가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인류와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는 법도 배운다. 다른 한편,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정의 같은 보편적 이상도 권리, 의무와 함께 역사와 전통,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아니고서는 실현될 수 없는 관념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미국 독립선언문의 이 문장은 미국 역사뿐 아니라 한국과 다른 많은 나라들의 역사를 이끈 명제이기도 하다. 공동체적 결속 없는 세계주의는 공허하고, 보편적 이상 없는 민족주의는 맹목이다. 애국심은 특정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보편적 도덕주의를 함께 구현할 수 있는 삶의 태도이다. 케네디는 이와 같은 사랑의 감정을 정치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생각에 잠긴 로버트 케네디.
 생각에 잠긴 로버트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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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의 연설은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지금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공동의 관심으로 단합하고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에게 시급한 국가적 과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명예를 끝내야 합니다. 하지만 물질적 가난을 없앤다 해도 또 다른 큰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만족의 결핍, 목적과 존엄의 결핍에 대처하는 것입니다. 너무 지나치게,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물질적인 것들을 축적하느라 공동체의 탁월함, 공동체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케네디는 분열된 나라를 통합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어느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가 민주당과 미국을 뭉치게 할 적임자라고 하는데, 진짜 분열이 뭔지 모르고 말하는 거예요. 노사를 하나로 묶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둘은 이미 하나예요. 기업계, 노동계, 정계의 기득 집단은 모두 하나로 뭉쳐 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은 젊은이고, 가난한 사람이고, 흑인이에요. 문제는 그들이 겪고 있는 분열입니다."

케네디는 뉴딜 연합을 복원하고자 했다. 그러려면 루스벨트, 트루먼, 형 케네디를 대통령에 당선시켰지만, 민권운동과 베트남전을 둘러싼 이견 속에 산산조각 난 지지자들을 다시 끌어 모아야 했다. 블루칼라 노동자, 흑인과 소수 인종, 가톨릭교도, 농민, 남부지역 주민, 북부 리버럴로 구성된 지지 연합이 그들이다.

책의 저자 서스턴 클락크는 케네디에게 처음으로 승리를 안겨준 인디애나주 예비선거를 소개하면서 케네디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인디애나 주민들은 정부 정책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한 건 리더십이었다. 정부 정책에 대해 지겹게 들어도 나라꼴은 엉망이었다. 주민들은 진짜 리더를 원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당긴 이가 로버트 케네디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수형씨는 정치학 박사로 서울시의회 입법조사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역서로는 <운동은 이렇게>(역서, 2021),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공저, 2013),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공역, 2016), <절반의 인민주권>(공역, 2008)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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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 입법조사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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