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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유부남들의 비밀스러운 대화가 있었다. 아내 몰래 품어 왔던 많은 이야기가 그 자리에 쏟아져 나왔다. 다소 충격적이기도 하고 으레 당연하면서도 사뭇 어색하기도 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다들 비슷하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연락이 두절된 채 집 앞 잔디밭에서 만취 상태로 발견되어 걱정을 끼쳤던 일, 출산 후 몸이 좋지 않다는 아내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서운한 말을 내뱉었던 일, 아이가 조금 다쳤을 때 자식을 도맡다시피 키우는 아내에게 잔소리를 한 일.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들은 반성했고,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말했다. 

이 유부남들은 반성의 마음을 술자리에서나 털어놨다. 아내에게 직접 전하자니 부끄럽기도 하고 이미 늦었단다. 가슴에 품은 마음을 뚫린 입이 전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남편상. 자연스레 내 입에선 10년이 늦은 나의 프러포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내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반짝였다. '너 같은 놈도 있구나'라나 뭐라나. 혹시 그 눈을 반짝일 만한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철 지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 놓는다.

리마인드 웨딩을 하고 싶다고?
 
2006년부터 사용한 추억 보관 와인병
▲ 타입캡슐 와인병 2006년부터 사용한 추억 보관 와인병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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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새해맞이 행사가 하나 있다. 지난 한 해의 감흥과 올 한 해의 소망을 적어서 와인병에 보관하는 일이다. 작년에 작성한 비밀스러운 쪽지는 그날에야 확인할 수 있다. 나름 경건한 이 의식은 자연스레 더 이전의 쪽지들까지 열어 보게 만드는데, 그 과정이 또 하나의 재미다.

2021년 1월 1일에도 역시 와인병을 꺼냈다. 빽빽하게 들어 있는 쪽지를 하나씩 꺼내면서 지난 추억을 소환했다. '아, 이때 이랬구나', '작년에 이런 소망을 적었었구나. 쩝. 이뤄진 건 없군'. 그렇게 감탄과 한숨으로 즐겁게 쪽지를 펴가던 중, 아내의 바람이 담긴 쪽지를 손에 들었다. 오빠의 프러포즈가 낭만적이고 로맨틱하면서도 매우 서프라이즈 했으면 한다는 14년 전의 소망. 쪽지를 읽어 나가던 즐거운 마음에 '이번에도' 미안함이 뱄다.

평생 이벤트라곤 신혼집에 초와 장미 부스러기를 흩트려 놓은 것이 다였다. 그럴싸한 프러포즈도 없었고 연애 기간 동안은 톡톡 쏘아대기만 했지 달콤한 적이 없었던 남자였다. 매력이라든지 재력이라든지 하다못해 체력이나 근력이라도 있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쁜 남자 콘셉트를 표방하며 싹수까지 없었던 나를 떠올리니, 그럼에도 나를 좋아해 주었던 이 여인의 소망이 더 안타까워 보였다.

'이래저래 없는 것 투성이었던 나와 결혼한 아내'와, '희망과 기대가 가득 담긴 쪽지'를 번갈아 봤다. 아무리 뻔뻔한 나라도 연애 6년, 결혼 10년의 고마움을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퉁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다가도 '이제 와서?'라는 생각에 조금씩 고개가 숙여졌다. '아,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어...'

뜻하지 않은 번뇌 속에서 다음 쪽지를 꺼내 읽던 내 앞에 밝은 빛 한 줄기가 열렸다. 그것은 결혼 10주년에 리마인드 웨딩(Remind Wedding)을 하고 싶다는 2020년 아내의 소망 글이었다. 툭 튀어나온 쪽지 덕분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의 고개도 툭 튀어 올랐다. 그렇게 리마인드 웨딩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결혼기념일은 1월 15일. 2주가 남은 시점이었다.

안 하던 짓을 하면 잘 되진 않지만

계획은 이랬다. 14일에 감동적인 서프라이즈 재혼(?) 신청을 한다.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한다. 15일로 예정된 결혼식 초대장을 건넨다. 다시 한 번 아내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나는 멋쩍어하며 살포시 안아준다.

대망의 재혼식 날, 멋지게 꾸며진 초와 꽃 사이로 아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식을 거행한다. 그리고 몰래 치장해 둔 웨딩카에 감동받은 가족을 태우고 바닷가에서 멋진 사진을 찍으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아이들의 웃음꽃이 만개하고, 세상 환한 미소의 아내가 눈물이라는 행복의 보석으로 눈을 반짝인다.

캬~ 순식간에 세워진 완벽한 계획을 곱씹으며 '완전 대박 짱 감동이겠지?' 하고 흐뭇해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못하고 있지만, 이벤트가 벌어지면 몇 시루의 떡은 거뜬히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맞다. 김칫국을 수십 사발은 족히 들이켰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일복이 터졌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야근에 야근에 야근을 하며 내일은 꼭이라는 다짐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14일이었고 당일도 야근으로 늦은 퇴근을 하고 말았다. 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더니 거기엔 환경도 한몫했다. 안 하던 일은 여간해선 쉽게 되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계획을 접을 순 없었다. 아직 뱃속엔 김칫국이 찰랑거렸고 어서 떡을 먹고 속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별수 없이 일정을 하루씩 미루기로 하고 15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작업에 착수했다. 10년의 느림에 하루가 보태졌다.
 
두 시간동안 영혼을 담았는데, 영혼이라 없어 보인다.
▲ 재혼 청첩장 두 시간동안 영혼을 담았는데, 영혼이라 없어 보인다.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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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청첩장을 만들어야 했다. 적당한 이미지를 찾아 파워포인트에 넣은 후 청첩장을 꾸미기 시작했다. 깔끔하고 단순한 디자인에 다소 싱거운 유머 코드를 삽입했다. 만들고 보니 별것 없는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영혼을 실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영혼인 탓에 없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전날 몰래 빼둔 정장 안 주머니에 청첩장을 넣고 프러포즈 장면을 찍기 위한 액션 캠도 챙겼다. 차에 올라 준비물을 재점검하고 스마트폰 영상에 마음을 담았다. 본의 아니게 새벽부터 뭉클. 왠지 오늘 하루, 많이 행복할 것 같았다.

계획은 오후 3시에 퇴근해서 용품을 사고 웨딩카를 꾸미는 것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계획은 계획. 어제까지 바빴던 사람이 오늘 한가할 리 없었다. 정신없이 일하다 오후 4시 반이 되어서야 겨우 회사를 빠져나왔다. 2021년 새해가 되면서 '순탄'이란 단어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부랴부랴 마트와 문구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부케, 초 모양 꼬마전구, 화환, 웨딩카 장식 물품 등 목록에 있는 물건들을 구매했다. 그리고 이동 간에 짬짬이 지인들의 재혼 축하 영상을 촬영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함경도 지역의 지인들이 메시지를 보내는 콘셉트로 헤어스타일만 바꿔가며 1인 4역의 열연을 펼쳤다. 어설픈 내 사투리 모사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한 이벤트 속 작은 이벤트였다. 드디어 15일 당일의 준비는 모두 마쳤다. 이제 프러포즈의 시간이다. 두근.

10년 만의 프러포즈가 재혼 신청이라니
  
나는 참 염치가 없다. 결혼 10년 만에 처음으로 프러포즈를 했다. 그런데 그게 재혼 신청이다. 어감이 좀 이상하긴 한데 다시 하는 결혼이니 재혼이라는 덴 변함이 없다. 아무튼 나의 염치없음에도 아내는 기꺼이 눈물을 흘려줬고 그 눈물에 나는 또 고마움을 느꼈다.

긴 시간 멈출 줄 모르는 아내의 눈물을 보며, 이게 그렇게나 행복해할 만한 일인가 생각해봤다. 연애 6년, 그중 3년은 장거리 연애. 그리고 결혼 10년 차. 아내에겐 그간 말하지 못한 서운함이 깊게 배어 있을 법도 했다. 연애 기간 그리도 따뜻하지 못했던 연인에게, 프러포즈도 없이 우격다짐으로 결혼할래 말래라고 물었던 남자에게, 인생을 걸고 묵묵히 걸어오며 많은 것을 삭혔으리라.

미루는 게 천성이어서인지 프러포즈마저 10년이나 늦었다. 나 스스로야 결혼 후에 다정하게 변했다고 자부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디 지난 설움이 가시기야 했을까. 그래서 하염없이 우는 아내 앞에서 나는 초연해지고 만다.

2021년 1월 16일. 우리는 이렇게 다시 결혼했다. 변한 것은 없었다. 변하지 않아도 충분했고 변한 것이 없어 다행이기도 했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는 말을 알 것 같았다. 못내 미안함으로 남았던 일을 고마움으로 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엄마 아빠의 결혼식을 보지 못한 아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추억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은 내내 즐거워했고 그런 아이들의 축복은 최고의 재혼 선물이었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웃으며 얘기했다.

"딸들, 너희들도 커서 아빠처럼 멋진 남자 만나~"
"아들들, 너희들은 커서 아빠처럼 멋진 남자 되자~"
"네~~" (x4)


순간 나도 모르게 "연애시절 아빠는 안 된다"며 다급히 덧붙였지만, 그 말들은 내게 최고의 찬사였다. 아내와 아이들의 과분한 칭찬에 그만 목이 메고 말았다.

마음을 전하는 일에 늦은 시기란 없음을 알았다. 비록 10년이 늦었지만 마음은 전해졌고 그 긴 기간 덕분에 그 마음은 조금 더 진한 진심이 되었다. 어찌 보면 더 예쁘게 다듬어진 듯도 하다. 뭐든지 느린 나란 사람에겐 참으로 다행일 수 없다.

1월에 작성하기 시작한 글을 이제야 마무리하면서 바라게 된다. 종종 들여다보며 채우고 다듬어온 이 글이 품었던 시간만큼만이라도, 그때의 산뜻한 놀람과 저릿한 기쁨과 충만한 온전함이 진득하게 지속될 수 있기를.

이제 곧 마흔을 맞이하는 아내가 문득문득 서글퍼지려 할 때, 리마인드 웨딩이 리마인드 되어 서글픔에 앞서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그리고 혹시 지금처럼 늦더라도 언제고 마음을 전할 수 있기를, 부디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도 당신도.
 
오래 오래 기억되길...
 오래 오래 기억되길...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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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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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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