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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 섬 여행에서 만났던 섬 해설사 주민은 그곳에서 11대째, 350년을 살고 있다고 했다. 섬 주민들의 근황은 물론이고 숲에서 자라는 나무 하나하나, 갯벌의 낙지와 곱창김의 성장 상태까지 훤히 꿰고 있었다. 100여 명 남짓이 모여 사는 작은 섬이니 오죽할까.

도시는 돈 벌기 쉽고 생활이 편리하지만, 우리 동네에 누가 살고, 하물며 무슨 꽃이 피고 지는지 잘 알지 못한다. 우리 동네, 우리 마을이란 유대감은 도시 생활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편하지만 외로운 도시 생활의 자화상이다. 가끔은 이웃끼리 서로 알고 지내는 작은 마을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연둔리 숲정이
 
동복천이 흐르는 숲정이 다리
 동복천이 흐르는 숲정이 다리
ⓒ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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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 마을이 만들어지면서 가꿔온 마을 숲이 지금까지도 보존된 전남 화순 동복면 연둔리 '숲정이'를 찾았다. 숲정이는 마을 근처의 숲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숲정이! 뜻도 어감도 예뻐서 자꾸 불러보고 싶어진다. 오래된 시골 마을 숲정이에서 느껴보는 여유와 쉼에 마음이 스르르 편안해진다.

마을 앞을 흐르는 동복천을 따라 왕버들, 느티나무, 서어나무, 팽나무 등 200여 그루가 길게 늘어선 풍경이 평화롭다. 밑동이 굵은 왕버들은 마을이 형성될 시기에 심어진 것으로 세월의 흔적이 깊다. 하천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 숲에서는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온 오래된 마을의 지혜와 온기가 느껴진다. 하천을 따라 천천히 걸어도 보고, 벤치에 앉아 흐르는 강물과 숲정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푸근해진다. 

화순적벽과 야사리 은행나무
 
화순적벽(창랑적벽)
 화순적벽(창랑적벽)
ⓒ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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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가 깊은 화순에는 강가 절벽 비경이 숨어있다. 화순적벽이다.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 시대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도 화순적벽에 반해 화순에 오래 머무르다가 결국 이곳에서 눈을 감았다.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즐겨 찾는 화순적벽은 1985년 동복댐 건설로 세간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다. 댐 건설로 인근 마을이 수몰되고 상수원 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접근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4년 화순군에서 관광 활성화를 위해 버스 투어를 시작하면서 다시 길이 열렸다. 

화순적벽은 7km에 걸쳐 늘어서 있는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을 포함한다. 그중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는 화순군 적벽투어로만 만나볼 수 있다(현재는 코로나19로 투어가 중단된 상태다). 대신 창랑적벽과 물염적벽은 아무 때나 자유롭게 들리는 게 가능하다. 화순적벽은 특히 붉은 절벽이 단풍과 어우러지는 11월 풍경이 볼 만한데, 운 좋게 해 질 무렵 적벽에 방문한다면 멋진 인생 풍경도 기대할 만하다.

화순 야사리 은행나무는 마을과 함께 500년 세월을 간직한 노거수다. 여러 갈래의 가지 사이에 혹처럼 생긴 유주乳柱(오래된 은행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으로 땅을 향해 자라는 일종의 나무고드름)가 주렁주렁 매달린 모양이 독특하다. 천연기념물 303호로 지정된 야사리 은행나무는 작년 태풍 마이삭으로 가지 일부가 피해를 봤지만 다행히 올해도 무성한 은행잎을 키우며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태풍의 모진 바람을 이겨낸 것처럼 수백 년을 그렇게 견디며 살아왔을 것을 떠올리면 숙연한 마음이 든다. 마을 주민들도 마을 수호신으로 보호하며 매년 정월대보름 제사를 지내는 등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화순적벽 버스 투어가 시작되는 화순군 이서면 커뮤니티센터 옆에 위치해 있어 화순적벽 갈 때 들러보면 좋을 것이다. 

유마사 단풍 숲
유마사 단풍 숲과 일주문
 유마사 단풍 숲과 일주문
ⓒ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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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화순을 방문한다면 모후산 자락에 자리한 유마사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해련부도탑 주변의 아름다운 단풍 숲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백제 시대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과 그의 딸 보안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유마사의 전각은 모두 근래 새로 지은 것이다.

하지만 전설을 품고 있는 계곡가의 돌다리와 보물로 지정된 부도탑, 사찰 입구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울창한 단풍나무숲이 사찰의 역사와 깊이를 짐작게 한다. 무엇보다 고즈넉한 단풍 숲은 은은한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다. 개인적으로 처음 유마사 단풍을 만났을 때 받았던 따뜻하고 평화로운 아름다움을 잊을 수가 없다.

화순의 남쪽 지역에 위치해 보성과 맞닿은 곳에는 쌍봉사가 있다. 통일신라 시대 만들어진 천년고찰 쌍봉사는 수도권을 기준으로 찾아가기 멀고 외진 곳이지만, 꼭 한번 가볼 만한 유서 깊은 곳이다. 통일신라 시대 이 사찰을 부흥시킨 철감선사의 부도탑과 탑비가 깊은 역사를 말해준다. 각각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3층 목탑형식의 독특한 대웅전, 단풍나무 두 그루가 호위하는 극락전과 아담한 차밭 등 볼거리가 쏠쏠하다. 

인파 걱정이 필요 없는 곳, 뛰어난 자연경관과 문화유산, 무엇보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화순으로 가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지인 님은 여행카페 운영자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11월호에 실렸습니다.


태그:#화순, #숲정이, #화순적벽, #야사리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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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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