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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1월 16일 오후 4시 40분] 

날아가는 비행기도, 공사장의 기계 소리도 멈추게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바로 2022학년도 대입수학능력고사, 이른바 수능 시험일이다. 올해는 11월 18일이다.

많은 학생들에게 짧게는 고등학교 3년, 길게는 학창시절 12년을 단 하루의 시험으로 정리하는 날이기도 하고, 자기의 진로 또는 미래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들과 딸의 운명이 결정될 것 같은 착각 아닌 착각을 하게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수험생 모두와 학부모들에게 수능 관련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면서 수능감독으로서 소망을 몇 자 적어 본다.

교사, 특히 고등학교 교사에게는 또 한 번의 시험 감독을 해야 하는 날이다. 시험 감독이야 학교에서 수도 없이 해본 것이지만, 그 중압감이 수능 시험 감독에 비하면 말 그대로 '새발의 피'에도 못 미친다. 수능 감독은 교사들에게 그만큼 부담스러운 일이다.

수능 감독을 하면서 교사의 입장에서 해마다 느끼는 게 있다. 해마다 비슷한 문제 제기를 하지만 교육 당국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관행이라고 생각해서, 이전에도 그렇게 해 왔기에 그냥 하자는 복지부동의 전형이라고 생각된다. 제발 올해 수능 감독에서는 이런 거 좀 없애면 안될까? 

① 수능 감독관 회의에서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

수능 감독을 하는 교사들은 두 번의 감독관 회의를 한다. 한 번은 수능 전날 오후에 감독하는 학교에 미리 가서 하고, 두 번째는 수능 당일 아침에 고사장 학교에서 한다.

수능 감독 관련하여 공지 사항을 전하고 감독관 준수 사항과 감독 요령 등에 대해서 알아야 하니 감독관 회의가 필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수능 감독하러 간 자리에서 국민의례에 애국가 제창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해마다 하면서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교사들이 수능 감독하는 것과 애국가 제창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교사들이 공식적으로 하는 모임이니까 애국가 제창과 국민의례가 필요하다고?  

코로나 시국에서 두 번째 치르는 수능인 올해에도 수능 감독 관련 학교에 수없이 많은 공문이 오고 있는데, 교사들 감독관 회의에서 국민의례와 애국가제창 하지 말라, 적어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의 공문은 오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에 꼭 그걸 해야 할까? 

② 서약서 폐지했더니 수능 감독관 위촉 확인서 내라?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 당일인 2020년 12월 3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마련된 수능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 당일인 2020년 12월 3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마련된 수능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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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도 다른 학교에 수능 감독관으로 차출되어 갔다. 첫날 수능 감독관 회의에 갔는데 수능 감독관 서약서를 제출하라고 해서 "이런 서약서를 강제하는 건 인권 침해"라고 했더니,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수능이 끝난 후 교육부와 서울교육청에 "수능 감독관 서약서를 왜 받냐? 아무런 실효성도 없고, 법적 근거도 없으며, 수능 고사장 준비하는 교사들 힘들게 하는 탁상행정"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그냥 관행대로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에 수능감독관 강제 서약서 제출에 대해서 인권 침해 진정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7월 "교육부 장관에게, 향후 '대학수학능력시험 업무처리지침'을 마련할 때 수능 감독관에게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기를 권고합니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이 권고를 받아들여서 교육부는 수능감독관 서약서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런데, 올해 업무처리지침에는 서약서 대신 '수능감독관 위촉 확인서'라는 제목으로 똑같이 교사들의 서명을 강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내려왔다.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에서 밝힌 것처럼 "법적 근거도 없고, 필요성도 없으며, 헌법 제19조가 보장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폐지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교육부는 서약서를 없애는 대신 '수능감독관 위촉 확인서'라는 것을 별도로 만들어 이전과 똑같이 교사들에게 서명을 해서 제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학교 자율이라는 내용도 없으며, 교사 선택이라는 내용도 없다. 눈 가리고 아웅도 이런 아웅이 없고, 탁상행정도 이런 탁상행정이 없다.

이럴 거면 뭐하러 서약서를 폐지했단 말인가? 

③ 수능감독 빠지려면 '종합병원' 진단서만 제출하라? 

수능감독관 배정과 관련 또 교사들을 열받게 하는 탁상행정이 있다. 수능 감독을 해야 하는 것은 교사들의 의무가 아니다. 의무는 아니지만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수능 감독을 할 수는 있다고 본다. 문제는 수능 감독을 하기 힘든 교사들이 있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이유가 건강 문제다.

모든 학교에 수능감독관 명단을 보고하여 올리라는 공문이 내려온다. 모든 학교 교사들의 명단이 교육청에 있기 때문에 굳이 단위 학교에 명단을 올리라고 하는 공문을 보낼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해마다 공문이 내려온다.

이 공문에 의거해 학교는 자기 학교 교사들의 명단을 교육청에 보고한다. 그러면서 수능 감독이 어려운 교사 또는 수능 감독에서 제외해야 하는 교사들을 별도로 표시하여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질병, 장애 등의 이유로 수능 감독 업무 수행이 곤란한 교사'는 학교장이 확인하여 별도로 보고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종합병원'의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교사들은 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고 며칠 전에 공문을 보내고 교사들에게 종합병원 진단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왜 일반병원이나 전문병원의 의사가 발급한 진단서는 안 되고 종합병원의 진단서만 근거로 인정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종합병원의 의사가 발급한 진단서와 일반 또는 전문병원 의사가 발급한 진단서를 차별해야 하는 법적인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가? 

자신이 치료받고 있는 병원을 놔두고, 자신이 치료받고 있는 의사를 놔두고 별도의 종합병원에 가서, 자기를 치료하지도 않는 의사에게 진단서를 받아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서,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있는 교사가 자신이 치료받는 정형외과 진단서를 제출하면 충분하지 왜 종합병원에 따로 가서 자기를 치료하지도 않는 의사에게 진단서를 받아서 제출해야 하나? 난임 때문에 계속 시술을 받고 있는 여교사가 자신이 다니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 진단서면 됐지, 왜 자기가 다니지도 않는 종합병원에 가서 별도의 진단서를 다시 받아서 제출해야 하나? 

대한민국 종합병원이라는 곳이 누구나, 아무 때나 가면 바로 진단서를 끊어주는 그런 곳도 아니고, 사전에 의사 일정 확인하여 예약을 하고, 시간 맞추어서 가야 하고, 게다가 진단서 발급 비용도 별도로 내야 한다. 어떤 실익도 없는 일을 왜 교육당국은 교사에게 요구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학교에서는 이런 일 때문에 해다마 난리통이다. 왜 종합병원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느냐부터, 일반병원 진단서는 왜 안 되냐, 이걸 받으러 수업 빠지고 조퇴를 하라는 거냐에 이르기까지 교사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수능 감독관 준비 업무를 하는 교무부 담당 교사와 학교장 역시 이런 거 챙기느라고 짜증이 솟구친다. 왜 이런 불통을 해마다 반복해야 하는지 교육부와 교육청은 답하기 바란다.

④ 감독교사 학교 원거리 배정, 왜?
교사가 수능감독관으로 차출되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왜 굳이 자기 학교 놔두고 다른 학교에 배정되어야 하는지도 이해하기 힘들다. 교사가 가르치는 학생의 시험 감독을 하는 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별로 설득력이 없다.  
학생들은 모두 자기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수능 시험에 응시한다. 그러니 교사 입장에서 학생이 다른 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기 때문에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을 감독할 가능성은 아예 없다. 그런데, 왜 익숙한 자기 학교를 놔두고 다른 학교에 감독관으로 보내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백보양보하여 다른 학교로 간다고 하더라도 왜 그렇게 멀리 있는 학교로 보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기 학교가 아니면 자기가 익숙한 지역의 인근 학교에 배치하면 되지 왜 극과 극인 곳으로 감독관을 배치하는지 알 수가 없다. 멀리 있는 다른 학교로 배치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또 왜 교사들을 몇 명씩 찢어서 다른 학교로 보내는지도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왜 그런지 교육 당국은 이유라도 설명해주기 바란다.
 
⑤ 수능 감독은 연령순, 왜?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연령을 중요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수능 감독에서도 이 원칙은 어김 없이 등장한다.

먼저, 수능감독관 보고를 할 때부터 거의 모든 학교들이 연령순으로 해서 나이 많은 교사들을 아예 빼버리거나 맨 뒷순위로 배치한다. 일부러 수능 감독을 빼주기 위해서이다.

혹시 수능 감독으로 차출된다고 하더라도 나이 많은 교사들은 대체로 자기 학교에 본부 요원으로 배치하고, 상대적으로 젊은 교사들을 다른 학교에 보낸다.

모든 교사가 수능 감독을 똑같은 횟수만큼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 때 누구를 많이 배정하고, 누구를 적게 배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또 결정적인 기준이 대체로 연령순이다. 수능은 1교시 국어, 2교시 수학, 3교시 영어, 4교시 탐구(한국사 포함), 5교시 외국어 순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매 교시의 시간이 동일하지 않다. 시험 시간만 해도 1교시는 80분, 2교시는 100분, 3교시는 70분, 4교시는 90분, 5교시는 30분이다. 여기에 시험 준비 시간과 시험지 교체 시간 등을 포함하면 이것보다 훨씬 길다.

누구에게 몇 시간을 배정하느냐, 누구에게 가장 긴 시간 감독을 배정하느냐를 결정하는데 대체로 연령순으로 나이 많은 교사에게 가장 적은 횟수의 감독을, 가장 시간이 짧은 시간을 배정한다.

가장 황당한 것이 5교시 감독인 외국어이다. 외국어는 응시하는 학생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감독하는 교사수도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이 시간에 감독관으로 배정되지 않는 교사와 배정되는 교사가 나누어진다. 이 때에도 거의 모든 학교에서 '연령순'으로 배정하여 나이 많은 교사들을 빼주고 젊은 교사들을 우선 순위로 배치한다.

왜 이래야 하는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경험 미숙으로 인한 사고(?)를 이유로 교직 경력 2년이 안 된 기간제교사는 감독 배치에서 아예 제외하도록 하면서, 경력이 가장 많은 교사를 연령순 배려라는 원칙으로 가장 적게 수능감독을 배치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경력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오히려 수능 감독 많이 해본 순으로, 즉, 나이 많은 순으로 감독을 많이 배치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나이를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나이 많은 것을 벼슬로 여기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나이 많은 순으로 감독에서 제외하는 것이나, 거꾸로 나이 적은 순으로 많은 시간 감독을 해야하는 것이 연령에 의한 차별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차라리 중간을 기점으로 하여 어느 정도 경력도 있고, 나이가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은 교사를 우선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인다. 즉, 가장 경력이 적은 교사들을 제외하고, 또 가장 나이 많은 교사들을 제외하고 중간에 있는 교사들을 더 많이, 특히, 5교시 외국어 감독을 추가로 배치하는 것이 교사 입장에서도 가장 합리적이고, 학생 입장에서도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가장 적어지는 것 아닌가?

다시 수능일이 다가온다. 올해는 제발 없어지기를 바랐던 못된 관행들, 이해할 수 없는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구태들이 또 반복되고 있다. 교육 당국에 꼭 부탁한다. 제발 올해는 없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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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드립니다. 

애초 기사에 사용된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해 삭제조치하였습니다. 본인 동의없이 사진을 사용해 피해를 입힌 점에 대해 당사자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앞으로는 초상권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태그:#수능, #서약서, #연령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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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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