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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인형 관절마다 실을 연결해서 그 줄을 쥐고 움직이며 연극을 하는 마리오네트(Marionnette)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요. 줄을 많이 연결할수록 인형은 살아있는 것처럼 무척 섬세하게 움직입니다. 실감 나게 움직이는 인형을 보다가 문득 우리 처지가 마리오네트와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심이 있든 없든, 필요하든 필요치 않든 광고는 우리에게 무차별적으로 쏟아져요. 얼마나 멋진 물건인 줄 아느냐며 보여주고, 이걸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속삭이고, 이 정도 차는 타야 하지 않느냐고, 이런 아파트가 바로 당신이 살아야 할 집이라며 눈앞에다 펼쳐 보여줍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듣는 동안 광고 속 제품은 우리 마음에 줄을 붙여요. 그리고는 우리를 조종합니다. 그 제품을 소유하지 않으면 남보다 못한 허접한 인간이 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일거든요. 광고 카피는 우리에게 경전이 돼 버렸어요. 우리 마음에 들러붙은 줄을 조종하는 자본에 마구 끌려다닙니다. 그 줄은 우릴 더욱 거세게 몰아세웁니다. 물건을 소유하라고 다그칩니다. 필요한지 아닌지 따질 이성은 어느덧 휘발돼 버려요.

사람 얼굴을 인식하는 스마트폰이 있어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쳐다보기만 해도 잠금장치가 풀리고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는 광고에서 멘트가 나옵니다. "나이스~ 쏘 나이스~" 저음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그 물건을 소유하면 마치 멋진 사람이 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그 순간 광고는 우리 마음에 또 하나의 줄을 갖다 붙입니다. 그 줄은 '멋지지?', '얼른 바꿔!', 이런 생각을 자꾸 부추깁니다. 접을 수 있는 스마트폰도 나왔더라고요. 폴더폰이 있었지만 그동안 기술이 진일보해서 딱딱한 전자제품을 손수건처럼 접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그런데 스마트폰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때마다 그저 기술만 있으면 되는 걸까요? 기술이 스마트폰에서 구동되려면 어떤 물질이 필요할 테죠.

스마트폰 한 대 만들려면 40여 가지 광물 필요하다  

스마트폰만 놓고 보면 그걸 만드는 데에 물이 한 방울도 필요할 것 같지 않아요. 그걸로 숲이 사라진다는 상상도 토양과 물을 오염시키는 화학약품도 떠오르지 않아요. 그러니 세련된 스마트폰이 환경오염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처음 전자책이 나왔을 때 더 이상 숲의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된다며 '친환경'이라는 말까지 나온 적이 있어요. 정말 그럴까요? 스마트폰 한 대를 만들려면 광물이 대략 40여 가지가 필요하다고 해요.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스마트폰이 개발될 때마다 그 기능을 작동시킬 새로운 광물이 점점 더 많이 필요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몰려있는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는 온갖 천연자원이 매장돼 있어요. 매장량만 보면 이들이 세계의 부를 주도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 광물 때문에 내전을 비롯한 비극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 르완다가 그랬고,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이 그렇습니다. 채굴지역을 놓고 벌이는 내전이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과 무관하지 않은데도 국제사회는 물론, 소비자들 역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자원이 매장된 지역은 채굴과정에서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지는 비극을 또 한 번 겪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요. 새 제품을 사면서 버려지는 스마트폰은 어떻게 될까요? 돈이 될 부품을 얻으려고 저개발국가들이 수입하는 전자 폐기물에는 여러 중금속 등 유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요. 아프리카 가나에는 전 세계 전자 쓰레기가 모여드는 지역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키운 닭이 낳은 달걀에서는 유럽연합 권고 성인 하루 섭취 허용량의 220배가 넘는 다이옥신이 검출되었어요.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다고 해서, 먹지 않을 선택지가 과연 그들에게 있을까요?  
  
홍콩 애플 스토어 앞 시위를 벌이는 활동가들. 2010년 애 하청업체 폭스콘 중국 공장에서 젊은 노동자 18명의 연쇄자살 사건이 일어나면서 열악한 노동 환경이 세상에 알려졌다.
 홍콩 애플 스토어 앞 시위를 벌이는 활동가들. 2010년 애 하청업체 폭스콘 중국 공장에서 젊은 노동자 18명의 연쇄자살 사건이 일어나면서 열악한 노동 환경이 세상에 알려졌다.
ⓒ 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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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새것을 사는 문화에서 수리하고 고쳐 쓰는 문화로 

인스타그램에 음식 사진을 올리고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을 올리려면 와이파이 단말기, 라우터(공유기), 안테나와 서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디지털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인프라 구축을 위해 또 자원 채굴이 필요합니다. 전 세계는 지금 대용량 서버를 구축하느라 경쟁하고 있어요. 저장에 실수가 없어야 하기에 구글의 경우 데이터를 일곱 개나 복사해서 저장한다고 해요. 이렇게 서버에 저장하는 데 쓰이는 전기며 서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 채굴로 지구는 어떻게 될까요? 

아프리카에서 채굴한 광물은 중국 폭스콘(Foxconn)➊ 공장으로 실려 갑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제조된 스마트폰은 전 세계 소비자들을 향해 곳곳으로 유통됩니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에 치여 평균 2.7년을 쓰고 버려진 폐(廢)스마트폰은 다시 아프리카로 모여듭니다. 지구를 갉아먹고 기후 문제를 가속하며 인류의 미래를 빠르게 삼켜버리는 이 행태가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그렇다고 스마트폰 없이 살 수도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하냐고요? 쓰지 말자는 게 아니라, 버리고 새것을 사는 문화에서 수리하고 고쳐 쓰는➋ 문화로 바꾸자는 겁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 마음속 욕망을 부추기는 줄부터 잘라내야겠습니다.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에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➊ 대만 OEM 전자제품 제조 업체. 세계 아이폰 생산량의 50%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➋ 지난 9월 13일, 김상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은 소비자의 휴대폰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는, 이른바 '소비자 수리권 보장법(단말기 유통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환경생태작가입니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착한 소비는 없다> 등을 썼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


태그:#스마트폰, #폭스콘, #애플, #생태,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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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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