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 대한민국 전통심마니 한서심마니산삼협회 "홍영선"어인마니 .
ⓒ 최미향

관련사진보기

 
충남 태안군 9급 지방행정직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가 피치 못할 집안 개인 사정으로 10여 년 만에 퇴직하고 심마니의 길로 접어든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가 있다. 그는 전통심마니를 고집하며 자료 수집과 산삼에 대한 데이터를 차근차근 구축하여 두 권의 산삼 관련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의 저서에는 "천둥마니는 온 산을 헤맨 끝에 우연히 산삼이 보이고, 둘째마니는 머릿속이 산삼으로 가득할 때 심(산삼)이 보이고, 어인마니는 아무 생각이 없을 때 비로소 진(산삼)이 보인다"고 적혀 있었다.

서산 IC를 빠져나와 바로 운산면 소재지에서 해미 개심사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이름 이쁜 가좌리가 나온다. 그의 아내는 가좌리에서 '한서전통산삼백숙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고, 그는 현재 한서심마니산삼협회를 이끌고 있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그는 대한민국 산삼업계의 최고의 어인마니로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 7일, 커다란 키에 편한 복장의 산삼도사 어인마니 홍영선 심마니를 만났다. 현재 그는 고려인삼 복원사업에 매진하고 있으면서, 전통심마니 교육 모둠에서 전통심마니들을 배출해내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배출한 교육생만도 자그마치 7천 명이 훨씬 넘는단다.
 
.
▲ 입산하면서 산신당을 만들어 놓고 산신에 대한 인사로 "입산제"를 지내는 모습 .
ⓒ 최미향

관련사진보기

 
- 심마니들에게 일종의 룰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심마니들은 미리 산에 오르기 전에 심메상의를 한다. 공동으로 캐서 공동으로 분배하는 것을 '원앙메'라 하고, 캔 사람이 다 갖는 것을 '독메'라고 칭한다. 사실 삼은 있는 자리에만 있으므로 캔 사람이 다 가지는 '독메'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는 '심 봤다'를 크게 외치면 다른 심마니들은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있어야 한다. 다 캔 후 인솔자인 어인마니가 '심메하세요'하면 해제의 뜻으로 알고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하던 일을 계속한다. '독메'일지라도 '어인마니'에게 처분을 맡겨야 하는 불문율이 있다. 여기서 어인마니란 심마니들의 은어로, 심메산행 경험이 많고 인솔할 수 있는 대장심마니를 칭한다."

- 언제부터 산삼에 관심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내 고향은 태안군 근흥면이었다. 나는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학번으로 대학교 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50대의 나이를 가진 세대다. 그 당시에는 공부 좀 한다고 하면 대부분 도시로 유학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여의치 않아 다시 내려오고 또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했던, 어찌 보면 추억을 소멸한 시기가 바로 그때였다. 이러다 보니 안타깝게도 어디 하나 제대로 꾸준히 학교에 다녀본 기억이 없다.

지금은 폐교됐지만 태안군 근흥면 방두초등학교를 기점으로 서울 대방초등학교, 강남중학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태안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천안고등학교, 예산농업전문대학교를 다녔다. 아이고 짚어나가는 것도 숨차다(웃음).

우리 부모님은 농사꾼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농사짓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부분 부모님은 '내 자식만은 농사꾼을 만들지 않는다'고 하셨다지만 우리 부모님은 달랐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나는 9급 공무원이 됐다. 당시 공무원 면접 때도 당당히 말했다. '나는 10년 정도만 다니고 농사지을 준비가 되면 그만두겠다.'"
 
.
▲ 한서심마니산삼협회 "홍영선"어인마니가 산삼을 발견한 모습 .
ⓒ 최미향

관련사진보기

 
- 그럼 약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였나?
"어릴 때부터 산을 보며 자랐다. 아버지를 따라 산으로 들로 다니며 산나물을 채취했다. 그러면서 나물 이름을 하나하나 배워나가며 신기해했다. 커가면서도 약초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연구나 실험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만 취미 수준으로 조금씩 했던 것이 다였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고교 시절, 우리집 뒤에는 대나무밭이 있었다. 대나무 그늘이 뒤뜰에 내려앉으면서 늘 습기와 함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곳에 인삼과 더덕, 방풍, 옻나무 등을 직접 심었다. 고등학생이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지금 생각해도 참 웃긴다.

공직에 있으면서 강원도청을 통해 약초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을 수소문하여 배우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미 내 운명은 심마니로 정해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
▲ 80cm 산삼 뿌리 .
ⓒ 최미향

관련사진보기

 
- 산삼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가 기억나나?
"물론이다. 산나물을 뜯을 요량으로 집사람과 함께 산에 올랐다. 집사람 혼자 산에만 가면 뱀을 보기에 나를 뱀 보디가드로 세운 거다. 내가 가면 뱀이 도망가니까.
나물은 눈에 차지도 않고 오로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산삼을 찾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삼이라곤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정도 지났을까. 집사람이 급하게 나를 불렀다. 뛰어가 보니 '혹시 이거 삼이야?'라는데 글쎄 큰 나무가 있고 아래 조그마한 관목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 자그마치 5뿌리의 산삼이 있는 게 아닌가.

아내와 함께 감사의 절을 올렸다. 그동안 거친 산을 오르내렸던 순간들이 숱하게 있어도 이렇게 쉽게 보이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조심스럽게 캐고 난 후 주위를 둘러보니 수십 뿌리의 산삼이 그 주위에 널려있는 게 아닌가. 그동안 그렇게 다녔던 곳인데도 신기하게 내 눈에만 안 띈 걸 보면 아내가 덕을 많이 쌓은 것 같다.

장인어른 친구분인 상도동파출소 소장님을 대동하고 씩씩하게 제기동 약초방으로 감정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감정은 제대로 하지 않고 그냥 현장에서 매입하는 수준이었다. 만약 내가 지금처럼 유명해졌다면 적정한 가격을 냈을 것이다. 결국 첫 삼은 가족들과 나눠 먹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때부터 전국의 심마니들을 찾아다니며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나는 산속으로 들어가 2년 동안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
▲ 한서심마니산삼협회 "홍영선"어인마니 .
ⓒ 최미향

관련사진보기

 
- 고생이 많으셨겠다. 산속에서 생활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무섭지는 않았나?
"독하게 마음먹었는데 무서울 리가 있나. 내 인생을 걸고 끝장을 보려고 산속으로 입산했는데. 나는 원래가 바다에 가면 몸이 무겁지만, 산에 들어가면 굉장히 편안하다. 만약 '나는 자연인이다'란 TV 프로그램이 당시에 있었으면 아마 첫 번째 출연자가 됐지 않을까. 그처럼 순수 자연인으로 살았다.

투명한 비닐로 임시 모둠(움막)을 지었다. 하늘의 별빛들이 지붕을 만들어 주었다. 비록 낮에는 눈에 불을 켜고 산을 헤맸지만, 저녁이면 아주 감성적인 사람이 되어 마치 시인이 된 듯 가슴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사실 심마니들은 의외로 감정이 별로 없다. 그냥 생존이니까 덤덤할 뿐이다. 연말 연초 일출과 일몰을 봐도 감흥이 없다. 자연의 섭리를 매일 눈앞에서 보니 유의 무의한 것도 같다.

참 위에서 무서운 게 없다고 얘기했는데 지독하게 무서운 존재가 있긴 있었다. 바로 모기였다. 작고 새까만 녀석 때문에 날마다 전쟁이었으니까. 벌에 쏘여도 잘 타지 않는 체질인 내가 모기에게 공격을 당하면 속수무책이었다. 참 모를 일이었다.

또 있다. 바로 사람이었다. 나는 산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제일 무섭다. 사람 소리가 나면 금방 나타나는 게 아니니 더 그랬다. 상대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 피해서 다녔다. 더구나 심마니들은 등에 산삼을 넣은 삼통을 멘 짐이 있지 않은가. 그 뒤부터는 상상에 맡긴다(웃음)."
 
.
▲ 홍영선 심마니가 출간한 "전통심마니가 전하는 산삼감정기법’ .
ⓒ 최미향

관련사진보기

 
- <진의 비밀>과 <산삼감정기법> 저서 두 권을 출간했다. 어떤 책인지?
"모두 산삼에 관한 얘기들이다.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나오면서 제일 먼저 시작했던 것이 산삼에 관한 연구 자료를 웹사이트에 축적했던 일이었고, 또 산속에서 2년 동안 생활하면서 연구하고 터득한 지식을 데이터로 저장했던 일들이 기반이 되어 두 권의 책이 탄생했다.

어인마니용 저서 '진의 비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 중 부작용이 없는 것이 두 개 있는데 그것이 뭐냐는 질문에 잠시 당황은 했지만, 머릿속은 민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물, 공기, 밥, 쑥, 산삼…. 아마 선배 심마니가 내 머리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나 보다. 세상에는 부작용 걱정 없이 먹어도 되는 것이 산삼하고 엄마 젖이다.'

또 전통심마니가 전하는 '산삼감정기법'은 20여 년간 산삼만 고집해오면서 전국의 산을 헤매며 발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쓴 책이다. 심마니의 서열 중 중간 단계인 둘째마니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기록했다. 벌써 10년도 넘은 얘긴데 내가 쓴 책들은 전통심마니들에게 교과서처럼 읽혀지고 있다."
 
.
▲ 한서심마니산삼협회 홍영선어인마니 .
ⓒ 최미향

관련사진보기


- 최근에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있나?
"2004년부터 우리 협회 사람들과 함께 고려인삼 복원사업을 하고 있다. 선배전통심마니들이 하던 방식 그대로 한다. 자연삼을 캐다 보면 밑에 소생과 씨앗들이 있다. 모아다가 자생지 좋은 장소에 씨앗을 심는다. 누구보다 삼의 최적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다.

그리고 야학처럼 심마니모둠에서 후진들을 교육시키기를 20여년을 하다가 올해부터는 한서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산삼감정인전문과정으로 전통심마니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전통심마니들의 집합체인 사단법인도 준비하고 있다."
 
.
▲ 홍영선 심마니가 한해를 마무리하며 종산제를 지내는 모습 .
ⓒ 최미향

관련사진보기

 
-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젠가?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나는 심마니다. 여전히 산에 갈 때가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요즘 산에는 삼이 없단 사실이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할 거 없으면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이제는 할 거 없으면 산에 간다고 한다.

통계를 보면 전국에는 약 200만 명의 심마니가 있다고 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산이 쑥대밭이 된 거다. 10년 전부터는 목숨 걸고 삼을 지켜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야기한다. '이제 삼도 한계가 왔다. 이제는 삼을 길러라.'"
 
.
▲ 제자들과 함께 실전 감정교육을 하고 난 후 단체사진 모습 .
ⓒ 최미향

관련사진보기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심마니의 고유영역인 산삼의 심메(채심)와 어인마니의 고급 노하우인 산삼 감정 부분, 전통심마니만이 느낄 수 있는 '약'이 되는 산삼을 꼭 필요로 하는 임자에게 찾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통심마니들이 한자리에 모여 만든 것이 바로 '한서심마니산삼협회'다.

우리는 심마니의 명예와 전통을 유지 계승하고 하늘이 내려 준 령초 '산삼'을 보호·보존하고 있다. 또 토종고려인삼인 자연야생산삼을 복원하여 양질의 산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무엇보다 전통심마니의 모든 정보와 자료를 후대에 물려주고자 노력한다.

우리 전통심마니들은 일 만 개의 산삼 씨앗을 뿌려 단 한 개 양질의 산삼 '진'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떠한 인고의 시간일지라도 행복한 마음으로 견뎌 나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태그:#홍영선어인마니, #산삼 인생 33년, #대한민국 전통심마니, #지방행정직 공무원 출신, #홍영선 심마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