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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윤의 근본 없는 이장 일기'는 귀농 3년차이자 함평군 대각리 오두마을의 최연소 이장으로,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27살 한대윤 시민기자의 특별한 귀농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오두마을 주민들이 쓰레기장을 설치한 뒤 바닥을 마감하고 있다.
▲ 마을쓰레기장 설치 오두마을 주민들이 쓰레기장을 설치한 뒤 바닥을 마감하고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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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오두마을에서 안내 말씀드립니다. 오늘은 오두마을 쓰레기장 청소가 있을 예정이니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1시까지 쓰레기장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약속한 오후 1시가 다 되어도 마을 형님과 반장님을 제외하고는 주민들이 없었다. 지난해 10월 11일, 내가 이장 임기를 시작한 지 약 8달째 되던 날이었다. '지지고 볶는 우리 마을엔 정말 희망이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절로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인 10월 10일 마을 총회에서 주민들끼리 대판 싸우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우당탕탕, 어디 니들끼리 잘 먹고 잘 살어라!"

한 주민분이 마을 총회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다른 주민분들은 이를 황망히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마을회의를 할 때마다 이 주민분의 남편이 과거 마을 일을 맡았을 때 벌어진 문제가 거론되곤 했는데, 이날도 그 논의가 격화된 것이다. 

이날 총회에서는 석 달 전 지은 마을 쓰레기장 운영에 대한 논의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 사안에 대한 의견은 듣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끼리 험한 말만 주고받았다. 총회는 엉망진창이 됐다.

"한 동네 사는 사람이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럼에도 이렇게 회의를 한 것이 의미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이 회의를 통해, 그간 마을 분들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얘기를 밖으로 꺼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분들이 가지고 있던 불만은 하루이틀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의 면전에 대고 직접 말해본 경험이 다들 없으시다.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터놓는 자리를 만들어 놓으니 그제야 다들 한 말씀 두 말씀 꺼내셨다.

평소에 마을 일과 관련해 불만이 많으시던 주민분께 조심히 여쭤본 일이 있었다. "아재, 이렇게 억울하신데 직접 말씀은 안 해보셨어요?" "한 동네 사는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지." 다른 분께 여쭤보니 "친척이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말씀만 돌아왔다. 수도권에서만 살았던 나로서는 사실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걸까?' 하는 생각만 있었다. 최근에야 알게 됐다. 그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내가 처음 오두마을에 내려와 이장을 맡아보겠다고 생각한 데도 이런 이유가 있었다. '다들 마음속에 응어리를 품고 사시는데 이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계시는구나.' 마음속의 응어리는 살아온 세월만큼 깊은데도 말씀을 못 하신다.

그러니 이전에 이장 선거가 파행된 날(관련 기사 : '폭망'한 선거 그 후... 26살에 마을 이장이 됐습니다), 마을 분들은 밤이 깊어질 때까지 날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셨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그 응어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본인이 겪으셨던 억울한 일들, 참아왔던 세월들, 길, 땅, 농사, 돈에 관한 길고 긴 이야기들을 선거 파행을 통해 다 같이 꺼내 놓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하루 만에 그 응어리를 다 풀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장이 된 후, 마을 회의를 할 때마다 항상 당부했던 말은 '욕 좀 자제해 주세요'가 1할, 그리고 '와서 하고 싶은 말씀을 해 주세요'가 9할이었다. 어르신들은 항상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시다. 그럼에도 '농촌만의 정서'가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풀어낼 기회들이 없었다. 그래서 맘껏 풀어 놓아주시라 말씀드려봤더니, 결과는 싸움으로 흐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 회의 장소를 박차고 나가더라도 마을 총회를 계속 이어나갔다. 욕설 안에서도 주민들이 바라는 염원들이 담겨 있었고 이를 잘 파악 해내는 것이 이장인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주민들의 애정 어린 말씀들을 잘 모아서 마을 숙원 사업도 하나 이뤄냈다.  

"어디 나가면 창피해서 우리 마을 이름을 못 내밀겠어. 마을 입구가 얼굴인데 이렇게 지저분해서야..."

오두마을은 마을 입구 큰 길가에 쓰레기를 버렸는데, 고양이들이 쓰레기 봉지를 뜯어놔 항상 쓰레기들이 나뒹굴었다. 이렇게 방치된 지가 어언 30년이 넘은 것이다. 주민들의 이런 불평불만을 모아 지난해 7월, 33년 동안 마을 분들이 염원하던 쓰레기장을 지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 될 것 같아도 포기하지 않고 주민들이 함께 무언가 해나가기를 계속 시도했다. 그 시도가 회의이기도 하고 마을쓰레기장 청소이기도 했다.

쓰레기장이 없던 시절인 2020년 4월 1일을 잊을 수 없다. 그때는 이장으로서 봉사라 생각하고 나 혼자 마을 입구 쓰레기를 청소했다. 참으로 힘든 시작이었다. 그리고 2020년 7월 1일, 일부 운영위원 분들, 마을 형님과 기술자 삼촌까지 여섯 분이 함께 쓰레기장을 청소하고 마을 생활 쓰레기장을 지었다. 마을의 가능성을 느낀 날이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한 쓰레기 청소
 
오두마을 7살 어린이가 마을쓰레기장에 안내장을 달고 있다.
▲ 오두마을 쓰레기장 설치 오두마을 7살 어린이가 마을쓰레기장에 안내장을 달고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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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의 그날로 돌아가서. 2020년 10월 11일, 오후 1시까지는 주민들을 거의 볼 수 없었지만 1시 30분경 마을 분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이제 막 이사 온 주민분들, 마을에 오래 사셨던 원주민분들, 그리고 전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던 주민분도 함께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쓰레기장 청소를 했다. 내가 마을에 와서 처음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진행한 일이었다. 

이장을 맡은 뒤로 '마을자치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많았다. 여러 복잡한 말들은 실제 마을 운영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배운 말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민주주의란 최대한 많은 사람이 최대한 적극적으로 의견을 꺼내 놓은 과정'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점잖고 논리적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가진 불만, 불안을 어려운 말로 포장하지 않아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민주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쓰레기를 정리할 때면 더러움이 묻고 냄새도 난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고 맡고 싶지 않은 냄새도 맡는다. 하지만 그 과정을 다 겪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이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당연하게도 쓰레기를 만들곤 한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더 잘 정리하고 어지럽히지 않을지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생활도 마을의 자치도 마찬가지다. 오두마을 쓰레기장은 이제 더 이상 예전만큼은 지저분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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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군 오두마을에서 시골살이를 시작한 마을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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