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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골 입구 메타세쿼이어길에 단풍이 예쁘게 들었다
 고산골 입구 메타세쿼이어길에 단풍이 예쁘게 들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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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은 유명하지만 대구 남산은 없어져버렸다. 남산은 남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므로, 대구에서는 신라 때부터 핵심 군사시설이 설치되었던 달성토성을 기준으로 할 때 아미산 일대가 남산이었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면서 대구읍성 남문 바로 밖 남산 일원은 주택과 시장으로 가득찬 동네로 변했다.

대구의 주거지는 점점 넓어져서 비슬산 자락인 대덕산 비탈까지 사람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본래의 남산은 시내 중심 지역의 일부로 여겨졌고, 대구는 새로운 남산이 필요해졌다(우리나라는 집들을 남향으로 짓는 까닭에 고유어 앞산은 한자어로 바꾸면 남산이다).

하지만 대구 최대의 행정동인 대명동 앞을 가로막고 있는 대덕산은 남산이 될 수 없었다. 이미 기존의 남산이, 비록 산의 형태와 성격은 잃었지만, 중구에 '남산동'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덕산은 남산이 아니라 앞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자어 아닌 순 우리말 이름을 얻었으니 오히려 잘 되었다고 하겠다.

큰골, 안지랑골, 고산골 등 계곡 깊은 앞산

앞산에는 큰골, 안지랑골, 고산골, 강당골 등 계곡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골짜기들에는 공룡발자국, 건열, 연흔과 같은 빙하기 시대 유적도 남아 있다. 안일사, 은적사, 법장사, 성불사,  임휴사 등 사찰들이 상당수 건립되어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왕건이 견훤의 추격을 피해 숨어지냈던 왕굴 등 고려 유적도 있다.

그만큼 앞산이 자연과 역사의 깊은 유래가 깃들어 있는 명산이라는 뜻이다. 대구 일원에는 전국적 지명도를 자랑하는 팔공산과 비슬산도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도보로 충분히 입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산은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좋은 산이다. 단풍이 고운 가을을 맞아 앞산 고산골을 걸어본다.
 
고산골 공룡공원
 고산골 공룡공원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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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교 너머에서 시작되는 고산골의 입구는 식당들이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산들 중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대체로 그런 모습이니 고산골이 그렇다 하여 크게 탓할 일은 아니다. 게다가 고산골은 대구 '시내'의 산이 아닌가.

게다가 100미터만 들어서면 메타세쿼이어가 길 좌우로 늘어서서 사람을 반겨준다. 특히 요즘같은 철에는 나뭇잎들이 너무도 곱게 물이 들어 있어서 눈이 황홀할 지경이다. 공기가 맑고 하늘이 푸르른 날이면 더욱 발걸음이 상쾌해진다.

공룡발자국, 건열, 연흔 흔적도 둘러보고

세계 최저 출산 국가라는 걱정에 휩싸인 요즘이지만, 고산골에는 늘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재잘대는 말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아득한 옛날 대구는 땅이 아니라 거대 호수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증언해주는 공룡발자국과 건열 및 연흔 흔적이 남아 있는 덕분에 '공룡 공원'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공룡공원 입구의 안내소를 등지고 서면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가 눈앞에서 들려온다. 바로 그 계곡에 공룡발자국, 연흔, 건열 유적이 있다. 해설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어서 물까지 내려가지 않고도 육안으로 현장을 보고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앞산 고산골의 그네
 앞산 고산골의 그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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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공원을 지나 조금 더 산으로 들어서면 관리사무소가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는 '맨발길'이 꾸며져 있다. 날싸기 제법 추워진 탓인지 '맨발의 청춘'은 보이지 않는다. 맨발길을 계속 걸으면 강당골 입구에 닿는다. 강당골이라는 이름은 옛날 그곳에 강당, 즉 서원이 있었다는 뜻이다.

직진하면 바로 오른쪽에 계곡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해탈교를 넘어 성불사로 들어선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라는 가곡의 그 성불사는 아니다. 그 성불사는 북한에 있으니 가볼 수 없다. 그래도 이름이 같은 성불사에 들어선 감회가 생겨나서인지 기분이 색다르다.

성불사는 무엇보다도 아기자기한 조경이 인상깊은 곳이다. 자연석의 굴곡을 활용해 곳곳에 형형색색의 꽃과 식물을 심어둔 것도 눈길을 끌고, 사찰 건물과 계곡 사이의 비탈까지 국화를 비롯한 화초들이 예사롭지 않다. 이곳 스님과 종무소 사람들 덕분에 가을의 정취를 만끽한다.
 
아름다운 조경을 자랑하는 고산골 성불사
 아름다운 조경을 자랑하는 고산골 성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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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물소리를 들으며 점점 더 산속으로 들어간다. 좌우로 단풍이 우거져 있을 뿐더러 계곡의 바위와 가을 나뭇잎의 빛깔이 어우러진 정경도 요즘 같은 시기가 아니면 즐길 수 없는 자연의 극치다. 자꾸만 사진을 찍느라 걸음이 늦춰진다.

그러나 이내 사진을 찍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맛보아야 하는 지점에 닿는다. 나무다리가 놓여 있고, 건너편에 그네가 보인다. 그네 뒤로는 선홍빛으로 타오른 커다란 단풍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풍경에 젖어 마음은 저절로 그네를 타보고 싶은 유혹으로 빠져진다.

그네가 하늘로 오르면, 조금 전만 해도 우러러보던 단풍이 문득 땅으로 떨어진다. 이미 흙 위에 떨어져 있는 앞사귀들만이 아니라 가지에 매달려 있는 붉은 잎사귀들조차도 갑자기 땅을 덮고 있는 듯이 여겨진다. 누가 사진을 찍어주었으면... 싶지만, 날씨가 싸늘해진 때문인지 아무도 오지 않는다. 
 
고산골에서 볼 수 있는 지정 문화재로는 법장사의 3층석탑이 있다. 대구시 문화재자료 제5호이다.
 고산골에서 볼 수 있는 지정 문화재로는 법장사의 3층석탑이 있다. 대구시 문화재자료 제5호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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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골을 찾은 이들이 대체로 반환점으로 삼는 법장사에 닿았다. 등산객은 줄곧 산정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지만 가벼운 산책길이었던 사람들은 이곳 3층석탑을 보는 것으로 하루의 보람을 맛본다. 법장사의 본래 사찰명이 고산사(高山寺)였고, 그래서 이 골짜기에 고산골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그럴 만도 한 일로 여겨진다.

문화재청은 이곳 3층석탑을 두고 "탑신의 1층 몸돌은 면마다 양쪽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위층의 몸돌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 보인다. 일부가 손상되어 있는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며,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면서 "대체로 통일신라 석탑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듯 하나, 탑신의 1층 몸돌이 폭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 불안정한 비례를 보이고, 지붕돌받침이 4단으로 줄어있는 등 전형 양식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라고 해설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 타고 무너진 고산사

법정사 3층석탑은 대구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법장사가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면서 탑도 무너져 방치되어 왔는데, 1961년에 법당을 새로 지을 때 탑신(塔身)을 다시 차례대로 쌓았다. 그러나 기단부(基壇部)는 파괴되어 본래 모습을 알 수가 없다.

"이곳 법장사도 임진왜란 때 크나큰 피해를 입었구나!" 하는 탄식 뒤로 "왜놈들은 무엇 때문에 석탑의 밑받침돌까지 원형을 알 수 없도록 부수었을까?" 싶은 의문이 일어난다. 저 무지막지한 자들에게 또 다시 35년이라는 긴 세월 노예로 살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온몸이 단풍처럼 붉게 타오르는 듯하다.

스스로 "이 좋은 가을날, 마음을 평안하게 가져야지! 이 무슨 주체못할 흥분인가?" 하고 마음을 달래면서 천천히 하산한다. 그러나 쉽사리 격정이 잦아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하산주를 한 잔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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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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