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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북부 토러스 산맥과 메소포타미아 고원에서 시작된 쿠르드족의 역사는 3000년이 넘는다. 인구 3600만~4500만여 명(2017년 기준)인 이슬람 수니파 쿠르드족은 중동에서 네 번째 큰 토착민으로 고유 언어 쿠만지와 문자도 있지만, 영토가 없다.

7세기부터 아랍인을 시작으로 여러 민족을 거치며, 13세기 후반부터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독립국 건설을 위해 페르시아, 오스만, 러시아, 영국, 미국 등 여러 세력에 협력해 목숨을 바쳤지만, 모두 쿠르드족을 배신했다.
 
쿠르디스탄 국기 - 빨간색은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 순교자의 피, 흰색은 대지의 평화와 평등, 녹색은 쿠르디스탄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경 및 민족의 생명과 활력. 중앙 21개 빛줄기의 황금 태양은 쿠르드족 국장.
 쿠르디스탄 국기 - 빨간색은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 순교자의 피, 흰색은 대지의 평화와 평등, 녹색은 쿠르디스탄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경 및 민족의 생명과 활력. 중앙 21개 빛줄기의 황금 태양은 쿠르드족 국장.
ⓒ Kurdi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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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PJ를 아십니까

공중 폭격과 포탄이 빗발치듯 쏟아지며 마을이 불타올랐다. 건물들은 파괴됐고, 거리에는 시체가 뒹군다. 터키군, 시리아 용병,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가 쿠르드 지역을 점령하면서 많은 여성이 끌려가 성노예가 되거나 학살당한다.

그러자 쿠르드 여성들은 자위권 차원에서 쿠르드 여성민병대(YPJ)에 입대한다. 딸과 아내가 입대한다니 남은 가족의 반대가 드셌다. 그러나, 누군가는 민족과 땅을 지켜야 한다는 결심을 꺾지 못했다. 2013년 창설된 YPJ는 남자들로 편성된 11만 쿠르드 방위군(YPG)과 함께 다양한 테러 세력과 싸우고 있다.

뿌리깊은 성차별과 가정폭력 때문에 YPJ에 입대하는 여성들도 있다. YPJ에 입대하며 남자에게 의존하는 사고방식이 바뀌었다. 이제부턴 여성이 앞장서서 싸우고 민족과 사회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비록 중고 중국제 소총, 열악한 장비와 낡은 픽업트럭이 전부지만 말이다.
 
IS가 점령했던 도시를 되찾은 YPJ 여전사들이 광장에 YPJ, YPG, 쿠르디스탄 깃발을 걸어 놓고 전통 춤을 추며 기뻐하고 있다.
 IS가 점령했던 도시를 되찾은 YPJ 여전사들이 광장에 YPJ, YPG, 쿠르디스탄 깃발을 걸어 놓고 전통 춤을 추며 기뻐하고 있다.
ⓒ YP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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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르는 쿠르드 관습에 따라 16세에 강제로 결혼했지만, 사회개혁으로 일부다처제와 강제결혼이 법으로 금지되자 곧바로 이혼을 선언했다. 그리고 쿠르드족 여성해방을 위해 YPJ에 입대한다. 2015년  외국 종군기자의 눈에 띄어 로자바 전투에서 IS와 싸우는 "쿠르드족의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로 지구촌 언론에 장식된다.

그러나, 안타르는 이듬해 알레포 근처 한 소도시에서 동료들과 순찰 중 IS의 자살폭탄 공격으로 19세에 전사한다. 황색언론들이 그녀의 어린 나이와 안젤리나 졸리를 닮은 외모를 앞세운 흥미 위주의 기사로 왜 쿠르드족 여성까지 싸워야 하는가 등 본질을 흐리게 하자, 쿠르드족은 여성차별과 성의 상품화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YPJ의 목표는 여성이 총을 들게 하는 게 아니라, 독립심을 부여하고 자아를 실현하게 하는 것이다. 덕분에 쿠르드 여성들이 결혼하고 출산하고 농사짓는 대신, YPJ에서 훈련받으며 여성 인권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생겼다. 보수적인 중동에서 총을 들고 테러 집단에 맞서는 쿠르드 여전사에 동조해 YPJ에 지원 입대하는 외국 여성들도 늘었다.

수십만 병력과 최신 장비의 터키군, 시리아 용병, IS 등 테러집단도 YPJ와 교전을 피했다. YPJ의 깃발이나 자그루타(북아프리카, 중동지역에서 축제, 장례 행사에 여성들이 입안에서 혀를 빠르게 앞뒤로 굴리며 내는 고음)가 들리면 퇴각한다. 중동 무슬림들은 "남자의 손에 죽으면 천국에 가고, 여자의 손에 죽으면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피하는 것이다.

전투가 계속되며 순교자도 늘어간다. 장례식은 부대원과 마을주민이 같이 치른다. 순교자는 거리의 벽보와 깃발이 돼 남은 이들을 지킨다. 도시 외곽 순교자 묘지 비석들 곁은 들풀과 꽃 등이 지킨다. 가족들은 묘지를 찾아 촛불을 켜고 꾸란을 읽으며 순교한 이의 영혼을 달랜다.
 
해 질 녘, 순교자 묘지를 찾은 어머니가 아들의 묘 비석 앞에 촛불과 꽃으로 장식해 놓은 아들 사진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해 질 녘, 순교자 묘지를 찾은 어머니가 아들의 묘 비석 앞에 촛불과 꽃으로 장식해 놓은 아들 사진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 Y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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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은 폐쇄적인 중동 사회에서 가장 먼저 여성의 권리를 향상했다. 2014년부터 69개 여성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인권침해, 가정폭력에 직면한 주민에게 심리상담과 법률 조언을 제공한다. 현재까지 수천여 건의 여성 관련 문제를 해결했다.

로자바(시리아동북부자치행정부)는 2019년 여성 보호를 위해 일부다처제, 미성년자 결혼, 강제결혼, 명예살인 등 불합리한 가부장적 관습을 법으로 금지했다. YPJ도 기혼여성과 UN과 인권단체의 요구에 따라 18세 이하 미성년자 입대를 금지했다.

그리스 신화에는 기원전 700년 전부터 흑해 주변에 활쏘기, 승마술과 전투력이 남성을 능가하는 아마존 여전사들이 살았었단다. 그러나, 달빛에 물든 신화일 뿐이고, 21세기 전투는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YPJ가 태양 빛에 역사를 쓰고 있다.

IS의 비열함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터키는 근대국가를 지위를 얻는다. 그러나, 터키가 건국하며 터키 내 쿠르드족은 권리를 거의 박탈당했다. 그러자, 터키 내 쿠르드족은 쿠르드 독립국 건설을 목표로 쿠르드노동당(PKK)을 만들어 1984년 이후 터키를 상대로 무력투쟁을 벌인다. 그러자, 터키 정부는 PKK를 만든 쿠르드 영적 지도자 압둘라 오찰란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20년 넘게 구금하고 있다.

터키는 2003년부터 전통적으로 쿠르드족 이름에서 사용하는 x, q, w를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쿠르드 자녀의 이름이 테러계획의 비밀암호라며 그 부모를 기소하는 등 쿠르드 문화 말살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또, 쿠르드, 쿠르디스탄, 쿠르드족 등 특정 단어와 교육기관에서 쿠르드어 사용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시리아내 쿠르드족이 영토와 세력을 확장해 터키 국경에 공식적인 독립국을 세우는 걸 반대한다. 그래서, 테러와의 전쟁을 핑계로 국경 너머 쿠르드족 자치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2019년 10월 터키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계 용병들이 터키군을 도와 쿠르드 점령지역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시리아 국경 근처 마을로 들어서고 있다.
 2019년 10월 터키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계 용병들이 터키군을 도와 쿠르드 점령지역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시리아 국경 근처 마을로 들어서고 있다.
ⓒ BakrAlkas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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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남동부 지역의 댐 건설을 통제했다. 급수가 제한되자 쿠르드족 지역에 물이 말랐다. 결국 쿠르드족은 농토를 잃고 떠났고, 그 땅엔 터키 농업기업들이 들어왔다.

에르도안과 러시아의 푸틴은 시라아 북동부에 터키군 주둔을 비준하고, 터키 점령지역에서 YPG를 몰아내는 10개 항 협정을 채결한다. 그러자 터키는 쿠르드족을 몰아내고 그 지역에 시리아에서 피난 온 수니파 아랍계 200만여 명을 정착시킨다.

중동계가 주축인 IS는 아주 비열한 테러 집단이다. 유럽계는 대우도 좋고 프로파간다를 이용해 외국인 지원자와 외국 여성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계는 대우도 안 좋고 대부분 성전을 핑계로 총알받이로 내몰린다. 전투 중 다쳐 불구가 되면 자살폭탄테러에 재활용한다.

대부분 성적 억압과 차별 속에서 빈곤하게 살다가 IS가 된 테러리스트들은 적과 싸우다 지하드(순교)하면 우유와 꿀이 흐르는 천국에서 신에게 보상받고, 72명의 처녀와 영원히 황홀경을 누린다는 이슬람 신화를 믿는다.

이슬람국가가 건설되면 여러 아내와 부를 누릴 수 있다고 세뇌 교육받았다. 그래서 천국행 티켓과 가족에게 돈을 보내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الله أكبر(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자폭 조끼 스위치를 누르고, 자폭 트럭의 액셀을 밟는다.

 
IS 점령지에서 휘날리는 IS 국기
 IS 점령지에서 휘날리는 IS 국기
ⓒ twitter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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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러시아와 손잡고 쿠르드족 자치정부가 있는 로자바를 시리아에 되돌려 주려고 한다. 또, 터키가 아프린 지역을 갖고, 기타 지역은 시리아가 차지해 쿠르드족이 무너지길 바란다.

많은 쿠르드인이 전쟁 통에 시리아 정부군, 터키군, IS, 러시아 공습과 대량학살 등으로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죽어 갔다. 그래서 로자바 산하에는 순교자, 안팔 대량학살 희생자, 정치범과 그 가족 및 희생자를 지원하는 안팔순교부가 있다.

배신의 연속... 독립국 건설의 꿈

IS가 괴멸되자 2019년 10월 트럼프는 에르도안과 통화 후 북부 시리아에서 갑자기 미군을 철수시킨다. 그러자 터키는 미국의 묵인 아래 쿠르드족이 점령한 시리아 북동부를 공격한다. 불과 몇 일 전까지 미국의 동맹으로 IS와 싸웠던 쿠르드족의 비명을 미국은 또 외면한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등 14개 조항을 발표하자, 유럽에서는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땅)의 국경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터키가 강하게 반대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쿠르드족의 거주지역을 터키, 이라크, 시리아에 걸쳐 분할했다.

1922년부터 2년간 이라크가 영국의 영향 아래에 있을 때 짧게나마 쿠르드 왕국을 세운 적이 있었다. 1927년 터키에 세운 아라라트 쿠르드 공회국은 3년을 버텼다. 1946년 이란에 마하바드 쿠르드 공화국이 수립된 지 1년 만에 소련의 배신으로 무너진다. 1963년 미국은 이란 바트당 군사정권을 지원해 미국을 도왔던 쿠르드족을 살상하게 했다. 1975년 쿠르드족은 사담 후세인 정권에 봉기했지만, 이란이 배신하며 봉기는 실패한다.

1988년 3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국제사회가 금지한 신경 독가스를 안팔지역에 살포해 쿠르드인 1만5000여 명을 죽거나 장애로 만들었지만 미국은 묵인했다. 그러나 1990년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조지 부시와 영국은 쿠르드족과 시아파가 후세인 정권에 대항하도록 지원한다. 미국을 돕던 쿠르드족은 꿈에 그리던 쿠르드 자치 공화국을 세웠다. 그러나 미국이 지원을 끊고 이라크의 반격에 곧 공화국은 무너졌다.

2007년 미국은 터키가 이라크 내 쿠르드 지역을 폭격하는 것을 허락한다. 2014년 시리아 내전이 발생하자 쿠르드족은 시리아 내 주요 도시들을 장악하며 IS와 대적한다. 시리아 내에서 믿을 수 있는 동맹을 찾던 미국은 공습으로 쿠르드족의 IS 격퇴를 돕고, 무기와 자금까지 지원했다. 미국 등 서방국가가 쿠르드족의 독립국 건설을 보장하는듯했다. 쿠르드족은 이제야말로 국가 건설 역사를 새로 쓰는 정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쿠르드족은 또 한 번 미국과 유럽 동맹국으로부터 배신당했고 독립국의 꿈은 깨졌다. 미국 오바마나 트럼프 모두 쿠르드족의 독립국 건설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쿠르드 지도자들은 시리아 아사드 정권과 러시아의 손을 놓지 않고 있다.

미국 철수 후, 시리아 쿠르드족은 국가 지위를 얻기보다 생존을 위해 홀로 싸우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전쟁 전 영토의 40%를 잃었다. 수년간 미국을 도운 결과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얻은 이익보다 손실이 더 컸다.

그러나 다 잃은 것은 아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오히려 쿠르드 국가 건설의 길이 보였다. 쿠르드족 대다수는 아직 지리적으로 흩어져 있지만, 그들은 항상 하나의 쿠르드족 국가의 구성원이라고 여기고 있다.

정식 쿠르디스탄 공화국은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시리아에서도 쿠르드 인민당은 자치권을 계속 추구할 것이다. 쿠르드족 2000만 명이 사는 터키에서도 온갖 정치적 압박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이기고, 터키 제3의 정당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 마을 담장의 쿠르디스탄 지지 벽화.
 한 마을 담장의 쿠르디스탄 지지 벽화.
ⓒ kecakurdan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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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집단에 맞선 용감한 민족이라 알려져 쿠르드족은 여전히 지구촌의 관심과 조명을 받고 있다. 강대국들의 토사구팽 속에서도 쿠르드인들에게 정식 국가 지위를 얻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현재, 미국, 영국, 유럽연합 등은 PKK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로자바는 쿠르드족의 실질적 자치지구이다. 그러나, 어떤 정부나 기관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쿠르드족의 친구는 산뿐이다"라는 굴곡진 그들의 역사를 정확히 표현한 쿠르드 속담이다. 중동에서 산은 수천 년간 종교적 영토적 박해를 받는 소수민족을 배반하지 않고 항상 변함없이 천연의 피난처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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