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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가족공원의 산허리에 들국화가 잔뜩 피었다. 빨간 단풍과 노란 꽃망울이 역설적으로 공존한다.
▲ 만산홍엽 인천가족공원의 산허리에 들국화가 잔뜩 피었다. 빨간 단풍과 노란 꽃망울이 역설적으로 공존한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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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에 대한 단상

단풍은 원색의 향연이다. 화려하고 강렬하다.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고 넋을 앗아가 버린다. 사람들은 단풍 비(雨)를 맞으며 홀린 듯 너울너울 춤사위를 벌인다. 단풍은 처연한 종말의 신호이기도 하다. 슬프고 장엄한 몸짓이다. 생의 마지막을 직감한 나뭇잎의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마지막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불처럼, 태양처럼.

그래서 어느 식물학자는 단풍을 "나뭇잎이 죽기 전에 치르는 장렬하고도 슬픈 예식"이라고 표현했다. "체념과 슬픔의 표현이며 가장 처절하고 긴장된 순간"이라고도 했다(이유미 국립 수목원장). 그 말인즉 단풍이란 건 온전히 나무를 위해 나뭇잎이 스스로 생장을 멈췄다는 증거이며, 그에게 제 모든 것을 주고 곧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이별의 전조라는 말이다.

나뭇잎의 삶은 짧다. 운명은 그토록 헌신적이며 그 사랑은 비극적이다. 나뭇잎은 이별이 임박해서야 그런 제 속을 보여준다. 그 사랑이 얼마나 열렬히 붉은지, 떠나야 하는 그 슬픔이 얼마나 절절하게 샛노란지. 그렇게 단풍 들어 떨구어진 나뭇잎은 또 그의 발치를 덮어줄 것이다. 그가 전하는 따뜻한 온기로 나무는 길고 혹독한 겨울을 견뎌낼 것이다.

단풍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천가족공원
 
죽은 자들의 마을로 산 자들은 나들이를 간다. 인천가족공원은 역설의 공간이다.
▲ 인천가족공원입구 죽은 자들의 마을로 산 자들은 나들이를 간다. 인천가족공원은 역설의 공간이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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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그렇게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운명의 상징이라면 그것이 이 지상에서 가장 잘 어울릴 공간은 이곳이다. 수많은 죽음이 말없이 누워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남겨진 사람들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속절없이 떠나보내는 마지막 의식이 치러지는 곳, 그 이전엔 그저 공동묘지로 불렸으나 지금은 엄연히 공원이 된 '인천가족공원'이다. 부평에 있다.

통상 '경찰학교뒷산'으로 불렸던 이 일대는 아주 오래 전부터 묘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77년 주안에 있던 시립화장장(승화원)이 현 위치로 이전해 왔고,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현대화 사업이 추진 됐다. 오래된 매장묘지와 현대적 수목장, 잔디장 등 다양한 형태의 봉안시설이 지어졌다. 공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쉼터와 편의시설 등도 잘 갖춰져 있다.

거기엔 식당도 있고 그럴싸한 커피숍도 있다. 기본적으론 유족과 추모객을 위한 시설이지만 그냥 산책 나온 분들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가격도 착한 편이다. 이색적인 볼거리도 꽤 있다. 장사문화홍보관에선 세계 각국의 장사문화를 간접 경험할 수 있다. 인천 전역에 흩어져 있던 화교들의 묘지를 수습해 조성한 외국인 묘역도 거기 있다.

그래서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매일 누군가를 기리는 추모의 제를 올리고 떠나는 이와 남은 가족은 여기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1년에 두 번 맞는 명절엔 수만 인파가 모여드는 장관이 펼쳐진다. 코로나로 작년과 올해는 오히려 명절에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럴 일이 없는 사람들도 이곳을 즐겨 찾는다. 어느덧 인천의 명소가 됐다.

봄엔 만화방창 꽃향기에 취하고, 가을엔 만산홍엽 단풍에 홀린다. 특히 가을단풍이 좋다. 본격 조성된 지 20년 남짓이기 때문에 나무들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화려하고 다양한 색감은 유명산 못지않다. 늘어선 묘비와 색색의 단풍은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럴 때의 단풍은 마치 만장처럼 보인다. 이곳의 세월호 추모관 앞에 매달려 나부끼는 노란색 리본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
 
키 큰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한 길을 걸으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 사색의 길 키 큰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한 길을 걸으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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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은 들어서면서부터 자연스레 삶과 죽음을 사색하게 된다. 키 큰 메타세쿼이아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길을 걸으면 누구라도 철학자가 된다. 그저 인생사의 덧없음 따위를 한탄하는 게 아니다. 죽음 또한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며 삶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단풍 든 나뭇잎처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을 절감하게도 된다.

가끔 장의차들과 추모객들의 자동차가 지나다니지만 길은 대체로 고요하고 엄숙하다. 오가는 차들이나 사람들의 몸가짐은 조심스럽다. 간간이 누군가의 흐느낌이 들려오기도 한다. 무덤 앞에서 홀로 흐느끼는 여인의 모습은 뒹구는 낙엽처럼 아련하고 가련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곳곳에서 떠나는 이와 남은 이들이 이별의 의식이 치러지고 있다.

두어 차례 가을비가 지나간 길엔 벌써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어느새 가을이 지고 있는 거다. 시간의 흐름은 그렇게 무심하다. 더욱이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으로 리듬을 잃은 계절의 변화는 예측이 불가능해졌다. 게으른 자들은 그게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는 채 새 계절을 맞는다. 하지만 낙엽으로 졌어도 여긴 여전히 아름답다. 오히려 가을의 정취를 더한다.

공원의 내부 산책로는 다 해야 4km가 채 안 된다. 운동 삼아 걷기에 조금 부족하다 싶을 수도 있다. 그러면 주변 등산로를 타도 좋다. 어쩌면 그게 이곳의 하이라이트일지도 모른다. 그 길로 산꼭대기에 오르면 봉분들이 사방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줄잡아 수 만기는 돼 보인다. 단풍과 어우러진 지금의 풍경은 차라리 장엄하다.

역설적 사랑의 공간
 
수많은 봉분과 묘비 사이로 붉게 물든 단풍은 마치 만장처럼 보인다. 그 광경이 장관이다.
▲ 봉분과 단풍 수많은 봉분과 묘비 사이로 붉게 물든 단풍은 마치 만장처럼 보인다. 그 광경이 장관이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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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곳의 길가와 산허리엔 노란 들국화가 지천으로 피었다. 죽어가는 나뭇잎과 막 피어오르는 꽃송이의 모습은 낯설다. 헐벗은 고목은 죽음의 그림자와 삶의 의지가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는 상징이다. 누렇게 변한 잔디 위의 화려한 원색 꽃다발은 잔뜩 도드라져 보인다. 그렇게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어우러진 이곳의 이 계절은 역설적이다.

여긴 그 자체가 그렇다. 죽은 이들이 잠든 곳이 공원이 됐다. 산 자들은 죽은 이들의 마을로 나들이를 간다.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의 개념이 여기선 그저 같은 말로 통한다. 떠나간 그에게 품었던 일말의 증오조차 이곳에선 사랑으로 승화한다. 모든 속된 욕망은 그저 한줌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모든 역설적인 것들이 전혀 역설적이지 않게 조화를 이루어 공존하는 공간이다.

단풍도 그렇다. 겉으론 더 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단풍이 품은 이야기는 기실 비극이었다. 하지만 그도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단풍은 낙엽이 되어 지지만 그저 소멸하지는 않는다. 제 몸을 썩힌 단풍은 정녕 사랑했던 나무로 다시 스며 그것의 일부가 된다. 단풍은 그렇게 위대하면서도 역설적인 사랑의 상징이었다. 적어도 인천가족공원의 단풍은.
 
가을비로 낙엽이 졌다. 낙엽은 다시 제 몸 썩혀 사랑하는 나무로 스며 그의 일부가 될 것이다.
▲ 낙엽 가을비로 낙엽이 졌다. 낙엽은 다시 제 몸 썩혀 사랑하는 나무로 스며 그의 일부가 될 것이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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